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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 뮤비촬영지 대구 계성중학교

대구 3.1 운동의 성지에서 영화 촬영지로 각광받는 학교 건물

by 이선
1931년 건립된 핸더슨관. 건물 공사는 중국인 벽돌공과 일본인 목수들이 도맡아 했다.

대구광역시 계성중학교에 들어가게 된 건 뜻하지 않은 우연과 행운 덕분이었다. 지난가을 군위 답사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대구 서문시장에 들렀다가 서문시장 바로 옆에 학교가 있다는 사실이 특이하게 다가왔다. 여행지기 한 명이 저곳이 바로 뉴진스가 뮤직 비디오 <Ditto>를 찍은 곳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솔깃했지만 평일 오후에 학교랑 아무 관련이 없는 일반인이 교내에 진입하는 건 금기사항이라고 알고있어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날은 ‘고교입시 설명회’가 있던 날이어서 학교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덕분에 우리 일행은 아무런 제지 없이 교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계성중학교는 계성학원 학교법인 산하의 학교로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한 교정에 함께 있다. 원래 계성고등학교도 근처에 있었는데 서구 상리동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계성학원은 대구에서 제일 긴 역사를 지녔다. 무려 1906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오랜 전통과 아름다운 학교 건물로 인해 드라마 <겨울연가>에도 등장했던 서울 북촌의 중앙고등학교와 비교해 보고픈 생각도 들었다.

계단을 하나씩 오르자 단풍에 가려져 있던 본관 핸더슨관이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망국의 그림자가 짙어가던 대한제국 시절에 지어진 서양건물의 아름다움은 이율배반적으로 다가왔다. 한국이 아닌 영국 캠브리지나 미국 보스턴 한복판으로 시간여행을 한 느낌마저 들었다.

1931년 고딕풍으로 지어진 계성중학교 핸더슨관과 내부


핸더슨관은 1931년 계성학교 4대 교장이던 핸더슨(Handerson)이 미국에서 모금한 자금으로 건립한 학교건물이다. 2003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느껴질 만큼 원형이 잘 보존된 고딕풍 건물이다. 정면 중앙에 현관 포치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룬 근대 건물이다. 벽면의 세로로 길쭉한 수직창으로 인해 가로로 넓게 펼쳐진 건물에 수직적인 이미지를 가미했다.

처음에는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이었지만 1964년 3층으로 증축하면서 철근 콘크리트 기둥과 슬라브 바닥으로 리모델링했다. 내부도 건물만큼 인상적이었다. 당시 유행했던 아르데코 양식을 가미한 현관 입구와 계단 난간 그리고 창틀에서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격조가 묻어 나왔다. 왜 이곳이 다양한 영화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애용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3.1운동의 요람이었던 아담스관

건물 오른편은 아담스관으로 이어진다. 아담스관은 계성학원 내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서양식 건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양식 외형을 띤 핸더슨관과 달리 동서융합형 건물로 서양식 몸통에 기와지붕을 쓰고 있다. 1908년 아담스 선교사가 설계하고 공사를 진두지휘 했다. 유리와 난방시설은 미국에서 가져왔다. 아담스관의 벽체를 보면 벽돌 재질이 아닌 커다란 돌들이 섞여있다. 처음엔 장식용 목적인가 했는데 안내문을 보니 대구읍성을 철거할 때 나온 성돌을 사용한 거라고 한다.

1906년 친일파가 파괴한 대구읍성 성돌과 벽돌로 섞어 지은 아담스관

원래 대구는 조선중기부터 '대구읍성'이 있던 곳이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2년 후인 1907년 친일파 경상도 관찰사 서리 박중양이 솔선수범해 성벽을 허물어 170년 동안 대구를 지키던 읍성은 사라졌다. 허물어진 성돌은 여기저기 흩어져 새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되었다. 청라언덕 위의 선교사 사택들도 당시 허문 성벽돌을 주춧돌로 삼아 지어졌는데 그 흔적을 계성학원 아담스관에서도 발견하니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아담스관 지하실은 대구 3.1만세운동의 성지였다. 1919년 3.1 운동 당시 계성학교에서는 교감 김영서, 교사 백남채, 최경학, 최상원 등이 3.1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학생 김삼도, 이승욱은 아담스관 지하실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등사했다 3.1 운동 때 영남 지역에서 형을 받은 사람 77명 중 44명이 계성학교 전, 현직 교사와 재학생이었다고 한다. 그 후 학교는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아 예배, 성경 과목이 잠시 폐지당했다.

서구 건축과 한국 건축양식이 혼합된, 1913년 지어진 맥퍼슨관

아담스관 맞은편에는 계성교회라는 간판이 붙은 맥퍼슨관이 보인다. 맥퍼슨관은 아담스의 친척인 맥퍼슨에게 지원금을 받아 계성학교 2대 교장이던 라이너 선교사가 1913년에 완공한 2층 벽돌 건물이다. 여기에도 대구읍성 성돌이 사용되었고 지붕은 아담스관처럼 기와지붕이다. 한국전쟁 때 2군 사령부 건물로 쓰이기도 했다.


계성학원 체육관 건물, 1955년 지어진 Shattuck Hall이다.

계성학원 내에는 고풍스러운 옛 건물뿐 아니라 20세기 중반에 지은 듯한 모던한 교사도 보이는데 체육관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계성학교는 체육 명문교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학교 밖으로 나오면 바로 옆에 서문시장이 있는데 인근에도 좌판이 펼쳐져 혼잡스럽기 그지없다. 미술관 옆 동물원처럼 학교 옆 시장이라는 점이 독특하게 다가온다. 그런 연유로 자사고인 계성고등학교를 서구로 이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검색해 보니 2015년 새로 지은 계성고등학교는 핸더슨관을 최대한 참조해서 비슷하게 지었다. 한때 3.1 독립운동의 중심축이자 대구에서 제일 긴 역사를 가진 학교인 만큼 불의에 항거하는 진보적인 시민들을 많이 배출하기를 희망하며 교문을 나섰다.

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대구 서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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