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악의 시대를 건너며

12.21일 광화문집회 현장에서

by 이선


어제 야광봉을 들고 나 홀로 광화문 집회에 다녀왔다. 2016년 이맘때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이제 한겨울에 광장에 나와 촛불 들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기원했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나?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 내재한 부조리와 불공정의 연쇄를 근원적으로 끊어내지 않으면 이 지루한 싸움은 몇 년 간격으로 고개를 든다는 사실을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문구는 우리 헌법 조항이기도 하고 2008년부터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 왕이 없다고 해서 그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란 뜻은 아니다. 왕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대통령을 한국 현대사에서 여럿 만나봤지만 윤석열처럼 사악하고 무능한 작자를 50 평생 본 적이 없다.


최근 전 세계에 K-집회의 역량을 보여주며 감동의 물결을 이끌어 낸 시민들. 그들은 왜 광장에 나섰을까?

제왕을 꿈꾸는 대통령과 명분 없는 계엄령 그리고 김건희와 그 측근들의 국정농단 때문만은 아닐 것 같다.

"공화국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마저 잊어버리고 오로지 공화국을 위해 헌신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시민의 의무*"임을 상기시키려고 나온 게 아닐까?


*출처; 조승래, <공화국을 위하여> , 도서출판 길


대부분의 자원과 권력을 상류층 혹은 기득권층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2030 여성들은 먹이사슬 낮은 곳을 차지하는 부류일 것이다. 이들이 집회의 주요 구성원이란 사실은 무얼 말해줄까?

끓어오르는 분노와 좌절 속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여성들이 많았는데 이젠 악의 연쇄를 인간적인 연대로 끊어내기 위해 그들이 거리로 나섰다.


"나라가 어두우면 집에서 가장 밝은 것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사람들"이라고 최근 한 외신 기자가 말했다. 형형색색 응원봉과 K팝을 비폭력 시위의 무기로 착안한 건 바로 2030 여성들이었다.

이렇게 젊은 세대들이 공화국의 불침번이 될 때 민주주의는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하의 추위에 중무장을 하고 나갔어도 거리에 장시간 서있는다는 건 고난의 행군이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영롱한 응원봉과 마스코트를 흔들며 재기 발랄한 깃발을 준비해 온 젊은 여성들 무리에 둘러 싸이니 추위를 비롯한 모든 고통이 즐거움과 놀이문화로 환원되었다.


어제 광화문 집회에서 사회를 단지 자신들의 욕망과 이익을 실현시키는 도구라는 인식을 넘어, 이 비정한 시스템에 말려들기를 거부하고 모두를 위한 공동체로 만들려는 젊은 의지를 보았다.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야전침대 역할을 하는 게 이 땅의 2030 여성들이라고 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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