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에 현대미술 갤러리 한 곳이 새롭게 오픈했다. 에스더쉬퍼(Esther Schipper)라는 독일 쾰른에서 시작해 현재 베를린을 기반으로 동시대미술 작가들 작품을 선보이는 갤러리다.
2022년 서울 이태원에 에스더쉬퍼 코리아를 개장한 후 올해 3월에 한남대로 쪽으로 확장 이전했다.
요즘 한국 작가 이수경에 관한 글을 쓰면서 검색하다가 때마침 전시 소식을 듣게 되어 부리나케 달려갔다.
에스더쉬퍼 코리아는 한남동 번화가가 아닌 모퉁이에 자리잡았다.
건물 전체를 갤러리로 새로 지었는데 높은 층고와 탁 트인 시야, 계단으로 이어지는 나선형의 곡선이 인상적인 곳이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오픈한 후 두 번째로 선보이는 전시인데 이수경의 도자기와 인도 작가의 회화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이수경의 작품만 집중했다.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이수경 작가(b.1963)는 도예가가 아니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조각, 설치, 영상, 회화, 드로잉, 퍼포먼스 등 여러 매체와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남다른 상상력으로 전통과 현대, 미술을 통한 치유의 기능도 제시하며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2002년부터 깨어지고 버려진 도자기 파편들로 서로 다른 도자기에서 나온 파편들을 이어 붙인, 변형된 도자기 시리즈를 선보였다. 번역된 도자기는 2006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후 그를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려 놓았다.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버린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가는 일본서 유래된 도자기 수선기법인 '킨츠키'를 이용했다. '금'이 간 부분을 '금(金)'으로 잇는 수공집약적 방식으로 레디메이드 조형물이 탄생했다.
이수경은 도예공방에서 장인들이 완성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깨버린 백자나 청자 조각들을 가져다가 이어 붙인 것인데 이 과정을 '번역'으로 개념화했다. 각각 다른 파편들이 모여 이질적인 결을 이루며 둥글고 부푼 형태를 지닌 유기체가 탄생했다. 살아 꿈틀대는 것처럼 기이하고 혼성적인 돌연변이 도자기는 다산을 상징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이불 작가의 '사이버 전사'도 연상시킨다.
2020년 이후부터는 크리스털, 유리, 거울 등의 소재로 '왕관'시리즈를 선보였다고 하는데 아직 못봤다.
언제 어느 곳에서 봐도 작가의 '번역된 도자기'시리즈는 매체의 확장과 레디메이드의 새로운 경지라는 점에서 감탄하게 된다.
각각 다른 탄생의 기원을 지닌 부서진 도자기들이 만나 과거와 현재, 동서의 장벽을 허물고 재탄생하며 도약한다는 발상은 감동을 준다.
특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상처받고 삶이 무너진 여성들이 예술을 통해 각자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한다는 여성 서사로도 읽힌다.
작품 수는 많지 않았지만 새로운 기법과 실험을 통해 여성미술의 새 경지를 이룬 작가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며 전시장을 나섰다.
인도 작가 프라브하바티 메파일과 한국작가 이수경의 2인전 'conversation II'의 전시는 7월 1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