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그대에 관한 이야기
나는 언제나 대중교통을 사랑해 왔다. 어릴 때 급정지한 버스 덕에 제일 뒷자리에서 뒷문까지 굴러갔던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다행히도 다치지는 않았었지만 어린 마음에도 꽤 부끄러웠던 기억이 남아있긴 하다.
어쩌면 그런 격한 만남이 내 대중교통에의 사랑이 시작이 아니었을까. 어릴때 가지고 놀던 레고는 언제나 버스나 기차였고, 자전거를 탈 때에도 아파트 단지를 종횡무진하며 가상의 노선을 만들어서 다녔더랬다.
자동차가 편한 것도 많지만 대중교통이 주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느낌을 사랑한다. 물론 기차나 비행기도 좋아하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우리네 생활과 너무나도 밀접한 버스를 더욱 좋아하는 듯 하다.
누군가 가끔씩 나에게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하기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곤 한다.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지루하지도 않냐고. 그 때마다 나는 항상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곤 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부터 버스를 타고 통학해 왔고,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매번 타는 버스일지라도 다니는 차들이 다르고, 타는 사람들이 다르며 또한 어제와 오늘의 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가 버스를 타는것을 즐기기 때문이 아닐까.
해가 가면 갈수록, 학년이 어느덧 대학교 3학년이라는 고학번이 되면서 점점 버스에서 조는 시간이 늘어나서 아쉽다. 보통은 내리기 직전에 깨곤 하지만 가끔씩은 내릴 곳을 지나치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2학년 때엔 밤새워 과제를 한 끝에 버스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셨더랬다. 정신을 차려 보니 종점 너머 차고지 가스충전소였다. 내가 재빨리 상황판단을 하려고 노력하는것과 동시에 기사님도 내 존재를 알아차리고는 당황하셨었다.
이 때를 계기 삼아 커피 한잔씩 하면서 잠깐 얘기를 나눴더랬다. 운행 시간 사이 버스를 회차할때 주어지는 시간은 10분에서 15분 남짓. 자칫 예상치 못하게 운행시간을 넘겼을 경우에는 담배 한 개피 허겁지겁 피우고는 다시금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던, 그러나 학생 같은 서민의 발로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간에 쫓긴다는 기사님.
그 때를 기점으로 버스를 탈 때에는 무조건 "수고하십니다 "하고 인사를 드리는 습관이 들었다. 카드 단말기에서 나오는 무미건조한 "안녕하십니까?" 보다는 기사님께 올린 인사에 반갑게 답해주는 그들의 인사가 더 정겹기 때문에. 서로 기분 좋은 일이기에 나는 인사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버스에 타서 요금을 내며 인사한 후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인 제일 뒤에서 한 칸 앞의 1인석, 그 중에서도 진행 방향의 오른쪽을 보통 노린다. 오른쪽에 앉는 까닭은 반대편보다는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쉬울 뿐더러 주변을 더 보기 쉽다는 것이 그 이유이며 뒤에서 한칸 앞을 선택하는 이유는 혼자 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편하기도 하거니와 엔진의 가랑가랑한 소리와 그 떨림이 가장 잘 전달되는것 같아서다. 누군가는 이 소리가 소음이고 불편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스 제조사마다, 버스의 상태마다 조금씩 다른 소리와 떨림을 느끼다 보면 버스는 하나의 기계라기보다는 약동하는 강철 심장을 가진 하나의 유기체이자 생명체와도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제껏 그래왔듯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에 몸을 푹 파묻는다. 오늘은 책이 별로 땡기지 않으니 이어폰을 꽂고 음악이나 들으면서 밖이나 바라볼까 한다. 귓가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고 엔진은 우렁차지만 지나치지 않게 포효한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이 밤 거리에는 차가 많지 않아 버스는 경쾌하게 달린다. 집 앞 정거장에서 멀찍이 달아나는 버스의 뒤를 보면서 가끔은 느낀다. 사랑이라는 건 살아있는 것에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