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리를 바꿀 거야, 너네에게 짝꿍과 모둠 선택의 기회를 줄게. 대신 남학생과 여학생이 짝꿍이 될 거고, 서로 친하지 않은 친구들끼리 만나 친해질 기회를 갖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친한 친구는 어차피 쉬는 시간에 계속 만나 이야기할 거잖아.
자리를 바꾸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남-여가 짝꿍이 될 것, 평소 친하지 않은 친구와 같은 모둠을 만들 것이라는 큰 가이드라인을 주고 스스로 결정해보게 하였습니다.
스스로 결정하게 해도 학급의 모든 아이들이 만족할만한 결과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 정도는 괜찮다, 할만한 자리배치가 정해졌으나 여학생 소희는 이 상황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나 봅니다. 소희는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의 깊은 골을 전혀 해소하지 못하고 헤매는 중이었습니다. 남학생들이 1학기보다 조금 변화했다 해도 마음에 들지 않은 남학생들과 짝이 될 의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자리를 바꾼 후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소희네 모둠이 소란스럽습니다. 소희가 짝꿍과 책상을 붙이고 싶지 않다며 교실 저만치 책상이 끌어당기고는 혼자 시위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함께 정한 사항이니 일단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이야기에도 전혀 듣지 않습니다.
교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가만 보니 남학생들은 과연 선생님이 여학생들에게도 공정하게(?) 화를 내는지 저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학기 담임선생님에게 가장 큰 불만이자 2학기 담임선생님에게 바라는 요구사항 중에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선생님이 그냥 넘어간다면 남학생들의 폭언이 쏟아질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여학생들은 이 정도 수준의 반항을 선생님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관찰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선생님이 소희를 혼낸다면 쉬는 시간 다 같이 몰려가 소희와 함께 선생님 험담이 시작되며 여학생들과 선생님의 기싸움으로 번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저는 1학기 담임선생님과 다른 선택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함께 정한 일은 혼자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집을 부리는 아이는 가르쳐주고 배우려고 학교에 왔으니까요.
그날 6학년 7반에서는 더 이상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면 더 이상 수업을 할 수 없다 주장했고 선생님의 단호한 모습을 본 친구들이 그냥 책상 붙이라며 소희를 설득했으나 소희도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교실은 숨소리 하나하나 서로를 확인하며 조용히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30여분이 지나갔습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오랫동안 수업을 안 할 거라 생각 못했던지 결국 소희는 짜증을 내며 책상을 붙였습니다. 조금 미안해진 저는 조용히 소희 옆으로 가서 국어책도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하였습니다.
- 국어책도...
- 제가 알아서 할게요!
소희의 꽥하는 소리와 함께 그 어딘가에 숨어있는 씨.. 와 같은 불쾌한 소리들이 교실을 날아올랐습니다.
그날 국어시간 이후 저는 조금 바빴습니다. 아이들이 모여 뒷담화를 하기 전 다른 여학생들의 기운을 쏙 빼야 했으니까요. 몇 번의 수업시간과 몇 번의 쉬는 시간,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교실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저는 소희에게 진심 어린 사과메시지도 받았습니다.
메시지만 보면 선생님에게 욕하고 소리 지르며 고집부리는 친구는 어디 갔나 싶습니다. 역시 아이들은 겉으론 강한 척해도 여전히 어린이입니다.
선생님의 권위를 찾은 교실은 아주 평화로워졌습니다. 선생님이 억지로 만든 권위가 아니라 아이들이 존중으로 모아 만들어준 권위라서 더 평화롭습니다. 선생님이 정해준 큰 가이드라인에서 자유로운 아이들은 더 안전하게 자신의 세계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제 소희는 아침이면 교실에 들어와 선생님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졸업하고 보고 싶다고 가장 먼저 메시지를 보내는 친구도 소희입니다. 한 학기밖에 같이 못 보내 아쉽다고 말해주는 친구도 소희입니다. 중학교에 간 후 어느 날은 비타 500 하나 사들고 선생님을 만나러 오는 친구도 소희입니다.
다행입니다. 소희가 제 편이 되어서요. 바르게 잘 가르치고 잘 배워가서요.
참고로, 아이의 이름은 다른 이름으로 사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