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달은 모든 것이 낯설고 버거웠다. 환자 한 분, 한 분을 맞이할 때마다 인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나는 늘 긴장했고, 사소한 실수에도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기구 이름을 헷갈려 원장님이 원하는 것을 제때 찾지 못하는 순간도 많았다. 다행히 선생님께서 그때마다 차분히 알려주셨다. 모르는 점을 물어보면 “집에 가서 찾아보고 내일까지 알아와라.” 하시며 숙제를 내주시기도 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수첩을 꺼내 그날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대학교 전공책을 펼쳐 다시 공부했다. 처음에는 속도가 느리고 실수도 많았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달라지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원장님과 선생님들께서 자연스럽게 진료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갔다. 퇴근길 버스에 앉으면 늘 같은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만큼 내일은 더 나아지고 싶다는 다짐이 함께했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어느 오후, 진료실에서 낯익은 이름을 보았다. 흔치 않은 외자 이름이라 곧장 뇌리에 스쳤다. 딱 10년 만이었다. 순간 ‘이런 게 인연이구나, 내가 치과위생사가 되어 이 병원에서 일하길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내가 초·중·고, 대학교를 다니며 수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지만, 단연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선생님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좋아서 선생님이 맡으시던 악기 연주반에 들어가 지휘를 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선생님께 ‘지휘자’라고 불리며 존중받았고, 따스한 기억만 남아 있었다.
나는 먼저 성함을 불러 체어에 모신 뒤 검진과 스케일링을 했다. 내가 말을 건네면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실까?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스케일링을 마친 뒤 간단히 설명을 드리고 마스크를 벗은 채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 저 알아보시겠어요?”
선생님은 나를 잠시 바라보시더니 곧 다녔던 학교와 내 이름을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를 기억해 주신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다. 수많은 제자들 가운데서도 나를 떠올려 주셨다는 사실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더 놀라운 건, 내 기억 속 모습 그대로이셨다는 것이다. 내가 제자인 줄 모르고 진료를 받으실 때조차, 사람 대 사람으로 나를 존중해 주셨다. 마치 초등학생이던 나를 존중해 주시던 그때처럼.
진료 후 연락처를 주고받았는데, 곧 선생님께서 메시지를 보내 주셨다.
“내 사랑하는 제자 수진아. 거기서 널 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얼마나 기쁘던지. 넌 세월이 흘러도 생각나고 보고 싶은 제자다 너는.. 유림에서도 착하고 이쁘고 똑똑하여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정말 이쁘고 곱게 자랐구나. 넌 언제 어디서나 성공할 줄 알았다. 늘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건강하고 행복해라. 한 번씩 치과에 갈게. 우리 집사람도 치과에 다닌다. 잘 지내라." "지휘도 정말 잘했고. 공부도 잘했고..”
문자를 읽는 내내 가슴이 뜨겁게 벅차올랐다. 그해 선생님은 한 학교의 교장선생님이셨고, 내가 2년 차가 되던 해에 정년퇴직을 하셨다.
돌아보면, 그 세 달은 실수투성이였지만 배움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특히 존경하는 선생님을 다시 만난 일은 내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나를 기억해 주신 그 순간, 내가 걸어온 길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느꼈다. 그 만남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어디서든 잘할 줄 알았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나를 일깨웠고, 내 마음속에 작은 불꽃을 피웠다. 그 후로 나는 매 순간 더 진지하게, 더 정성스럽게 환자를 대하고, 선생님들과 함께 배우며 성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인연이란 이렇게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첫 직장에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매일의 배움과 만남이 모여, 오늘의 내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