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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14. 2021

당신의 안부를 물어봅니다.

_ 난, 네가 뭉클했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몇 안 되는 친구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임산부인 친구는 운전대를 잡았다. 해 질 녘, 차 안은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만나 어느덧 20년 지기가 된 친구와 시간이 참 많이 흘렀음을 자연스레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친구가 말을 꺼낸다.

"그러고 보면 재수했을 때, 병원에 입원했을 때, 시험 준비했을 때,

 그리고 지금 결혼하고 신혼집까지..

 네가 항상 찾아와 주었더라. 나는 항상 네 뒷모습을 바라봤고.. 

 생각해보니 그 뒷모습이 너무 고맙고 또 미안했어.. 그리고 왠지 모르게.. 좀 짠했어." 


갑작스레 꺼낸 얘기에 난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당연히 갔어야지. 공부하고 있었고 또 병원에 입원할 만큼 아팠잖아.

 근데 내 뒷모습이 짠했어? 왜지.. 히히"


친구가 말한다.

"그냥.. 헤어질 때 매 번 내가 너의 뒷모습을 봤더라고.. 마음이 좀 그랬어..

공부한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잘 못했잖아. 돌이켜보니까.. 

때마다 네가 항상 찾아왔었어. 그게 참 고맙고 미안했어.. 또 이상하게 뭉클했고.. 

난 네가 어디 있든 편안했으면 좋겠어!"

양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고 앞을 응시하며 친구는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말을 이어나간다.

"그래서 난 널 데려다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이거라도 해 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데려다주는 거 미안해하지 말라고!!"


어둑해진 하늘, 감성 짙은 음악, 적당한 바깥소리와 자동차의 흔들림, 친구의 나지막한 목소리

어느새 눈물이 차곡차곡 차오르더니 결국 뚝! 뚝! 떨어진다.  

느닷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스스로가 부끄러워 운전석을 쳐다볼 수 없었지만 친구도 애써 마음을 누르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렇게까지 진지한 이야기였던가! 잘 놀고 오다가 폭풍눈물이라니! 이런 코미디가 있을까! 다급히 인사하고 집으로 도망친 그날 밤, 오랜만에 하염없이 울어버렸다.

새벽 어디쯤, 마음을 가득 담아 문자를 보냈다.


"나를 지켜봐 줘서 고마워. 고맙게 여겨줘서 내가 더 고마워.

 우리 앞으로도 오래 이야기 나누자."




뜬금없는 이야기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던 이유를 안다. 요즘 나의 고민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나 다수보단 소수가 편해 오래 알고 지낸 몇몇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왔다. 단지 인맥을 쌓기 위해 여러 사람을 형식적으로 아는 것보단 깊은 관계를 바탕으로 연결된 믿음직한 사람들이 곁에 있음에 난 만족했고 그렇게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왜인지 모를 슬럼프가 왔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쓸데없는 고민이 많아졌다. 모든 일에 확신이 없었고 모든 행동에 의심이 들었다. 불안한 인생이 두려웠고 남은 삶이 버거워 몸도 마음도 힘든 시기였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러나 나에겐 전부였던 고민을 다른 이와 나누고 싶었다. 어깨를 토닥여 줄 무조건적인 위로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때 내게 먼저, 연락 온 사람이 없었다. 원래 가족들과 고민을 나누는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고 기혼인 친구는 가정과 육아에, 미혼인 친구는 연애와 회사생활에 한창 치여있던 걸 알고 있다. 가깝다고 생각한 회사 동료도, 매주 만나는 지인들도 곁에 있었지만 업무 외에, 나에 대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한 달이 지났지만 내가 연락하지 않으니 아무도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안부를 묻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오롯이 혼자였다.


이럴 때 웃프다는 말을 쓰는 건가! 내가 가깝다고 여긴 사람들은 과연 어떤 관계였던 것일까? 나만의 착각이었나? 나만 붙잡고 있던 인연이었나? 결국 난 누구에게도 의미 없는 사람이었나? 우스갯소리로 '헌신하다 보면 헌신짝 된다'는 예전 과장님의 말씀이 자꾸 떠올랐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 인간관계는 나만 애쓰며 근근이 이어가고 있었던 거다. 상대가 먼저 날 챙긴다거나 연락을 한다거나 안부를 먼저 물었던 적이 없었음을, 멍청하게도 하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시기였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자기 연민이 최대치를 향하고 있던 때라 치사하고 쪼잔한 생각들을, 분노에 찬 억울함과 자기혐오를 자신에게 마구 쏟아내고 말았다. 스스로가 한심하다가도 애처로워 보이기를 끝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도 나를 바라봐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때, 내 존재가 어떤 이에게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그때에, 친구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건드렸다. 퍽퍽하고 메말랐던 마음을. 진심 어린 애정과 인정에 위로를 얻었던 것이다.


"너의 배려있는 행동과 따뜻한 말들을 기억하고 있어"

"어느 곳에 있든 네 마음이 편안했으면 해"

"너를 언제나 지켜보고 있어"


당신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나를 지켜보고 있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

당신의 안부를 묻는 이가 있다는 것

예외 없이 지금 이 순간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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