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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11. 2021

취미가 있는 사람이고 싶다.

_ 난, 내 삶이 조금은 풍성해지길 바래.






[취미]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출처:네이버 어학사전)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도 직업으로 삼은 일 외 취미생활을 즐기고 시간을 내서라도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가꾸는 사람들을 우린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퇴근 후, 어학수업을 듣거나 주말마다 등산, 골프, 축구 등 운동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난다. 그림, 독서, 요가 등 친목도모와 심신안정을 위해 꽤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도 한다. 또 투잡(Two-jobs)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가르칠 정도로 실력을 쌓는 경우도 많다. 꽃꽂이·외국어·악기 연주 등 즐기는 것을 지나 전문 자격증을 따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사회생활 12년 차, 나름 열심히 일하고 꽤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코로나 시국을 맞이하며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내 생활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여유시간이 생겨 좋아하다가도 어떻게 놀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나만 그런가 싶어, 옆을 둘러보니 회사 동료는 커피를 좋아해 향만 맡고도 원두를 맞춰 내더니 결국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친구는 꾸준한 연습으로 악기를 능숙히 다룰 수 있었고 독서를 좋아하는 친구는 한 달마다 6-8권씩 책을 읽고 에세이를 블로그에 남기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난, 남들을 가르칠 만큼 기술·재능·특기가 없었고 내세울만한 그 흔한 취미생활 하나 없었다. 


문득, 삶에서 일을 빼고 나니 '난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활에 일이 전부라니.. 속상하고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요즘 취미를 찾기 위해 약간의 모험심을 발휘하는 중이다. 새로운 곳에 가면 울렁증이 올라오고 낯도 가리고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안 하는 나지만 그 선을 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지금, 일단 저질러보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용기내기 더 어려워지기 전에,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자고 이번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직장 근처에서 부담되지 않은 가격으로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전시회를 즐겨가고 그림도 좋아하지만 그림솜씨엔 영 소질이 없다. 미술학원 한번 다녀본 적 없어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던 미술학원을 성인이 되고 나서야 찾았다. 왕초보라 따라 그리기 바빴지만 왠지 모를 설렘과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드로잉 클래스를 여러 번 찾았다.



여행 가면 예쁜 컵을 사 오고 빈티지 그릇을 좋아해 단순한 호기심으로 도예공방을 갔다. 흙을 꾹꾹 눌러 평평하게 모양을 만들었고 손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물레를 돌렸다. 욕심낼수록 모양이 뒤틀리고 마음을 비우고 집중할수록 다듬어지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도 정돈되는 거 같았다. 이후 몇 번 더 도예 클래스를 갔고 비록 꾸준히 하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1:1 수강신청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만족했다.


디자인보다는 정성과 마음을 가득 담아 가죽공방에서 카드지갑을 만들어 나도 쓰고 선물도 했다.

가구를 만드는 영화 주인공이 멋있어 무모하게 도전하여 목공 공방 초보자 클래스에서 원목 도마를 만들었다.

읽지도 않은 책이 침대 옆에 쌓여있지만 책 사는 것이 좋아 한 달에 꼭 2권씩 책을 사고 있다.

짧게 캘리그래피도 배워봤고 미술로 보는 인문학 강의도 찾아들었으며 피아노 학원도 석 달이나 다녔다.


그리고 요가를 신청했다. 올 초 허리 디스크가 터져 고생한 후, 병원에서 살기 위해 운동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강압에 못 이겨 결국 요가를 끊었다. 운동이라고는 학창 시절 체육시간을 제외하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워낙 먹을 것 좋아하고 누군가와 땀 흘리며 하는 운동은 부끄러웠기에 운동은 나와 상관없는 영역이었다. 큰 맘먹고 운동을 끊어도 헬스는 1번 가고 땡! 필라테스도 5번 가고 땡! 또 포기할 수 있지만 속는 셈 치고 몸도 움직이고 마음 훈련까지 할 수 있는 요가로 등록했다.


직접 해보니, 낯설지만 재밌었다. 신이 났다. 다음이 궁금해졌고 안 해 본 것을 또 해 보고 싶어졌다.

마치 새로운 여행을 떠난 듯, 그 새로움이 가슴을 설레게 했고 단조로웠던 일상에 생기가 돌고 있음을 느꼈다.


비록 그림은 강사님의 수정 작업으로 새로 재탄생하고 피아노는 적정 수준에서 결코 늘지 않았으며 그릇들은 쓰임새가 무색할 정도로 수납장 위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지만 말이다. 이런 나를 보고 웃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고 운동복 사다 끝날 거라는 친구들의 애정 어린 조언이 이어졌지만 말이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 없는 끄덕임이 아닌 그곳에 직접 발을 내딛고 어색함에 마주 서서 끝까지 했다는 뿌듯함과 만족감이 나를 힘나게 했다. 짧지만 그래도 해봤으니까! 예전 같으면 그냥 부러워하며 지나쳤을 텐데 나름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해 봤으니까! 생각만 했던 것을 실행했다는 그 자체가 스스로에 힘을 불어넣고 단단히 내 안을 채우고 있었다.





예전처럼 자유롭지 않은 요즘이지만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여전히 찾는 중이다.

한 달에 한 권은 책을 읽어 SNS에 기록을 남기고 있고 유일한 운동, 요가도 10개월째 꾸준히 다니고 있다. (한 달에 한 권이라 비웃어도 나름 엄청난 노력이라는 거!) 비록 비용이 많이 드는 건 조금 부담스러워 원하는 걸 다 할 순 없지만 틈틈이 다방면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찾다 보면 하나는 제대로 만나는 때가 오지 않을까? 


훗날, 살아가다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올 때,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었으면 한다. 

삶이 버겁고 무거울 때, 가벼운 마음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을 꼭 가졌으면 한다.


스스로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들로 일상이 풍요로워지면 소중한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을 테니

그렇게 평안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난, 내 삶이 풍성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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