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월 Oct 04. 2021

그때의 나처럼 떠날 수 있기를

_ 아이폰이 알려 준 9년 전 오늘, 나는 여행자였다.



똑똑이 아이폰 덕분에 알게 된 9년 전 오늘,

나는 첫 배낭여행을 떠났었고 마지막 도시 스위스 취리히에 있었다.


2013년 9월, 추석 연휴를 끼고 생애 처음 혼자 배낭여행을 그것도 해외로 떠났었다.

이 여행을 떠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언하며 호기롭게 떠났던 여행이었다. 며칠 밤낮을 샜고 그 사이 맘고생 탓인지 떠나기도 전에 3kg가 빠졌던 속사정까지 추억이 된 지금, 그렇게라도 떠났던, 떠날 수 있었던, 그 시절을 작은 휴대폰으로 보고 있자니 마음이 울컥해진다.


외국은 고사하고 여행 자체가 조심스러운 요즘,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길을 걸어 다니고 처음 본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서로 초대하며 저녁 식사를 함께 할 수 있었던 시절의 배낭여행이었다. 이젠 전설 속 신화처럼 꿈꿀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열심히 다닐걸 그랬다.)




9년 전 오늘 속 내 모습은 너무 젊다. 얼굴이 어리다. 20대를 마무리하는 여행이었기에 29살에 떠나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현재 37살이 된 내가 바라본 그때의 나는, 너무 앳돼 보였다. (벌써 눈물 나는 건 기분 탓이겠지..ㅎㅎㅎ) 혼자 배낭 메고 떠난, 캐리어 하나와 함께, 스스로 교통수단을 예약하고 숙소를 잡고 동선을 잡아 여행 계획을 세웠던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떠날 수 없었던 무모한 여행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여행을 다녀 본 적이 없어 그냥 가고 싶은 대로, 그때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여행을 떠났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에서만 보던 유럽, 그 유럽 땅을 밟고 싶었다. 그중 에펠탑을 가장 보고 싶어 파리를 필두로 서유럽여행을 계획했고 어렵게 떠난 만큼 열심히 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영국-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 4개국을 다녀왔다. 버스를 잘못 타서 공항에 간신히 도착하고 비행기 지연으로 이후 일정을 포기할 만큼 위태로웠었고 예약한 숙소가 내부 공사로 인해 오롯이 혼자 지냈던 아찔한 경험이 있다. 말 한마디 하지 못해 10분이면 가는 길을 1시간이나 걸려 도착했고 유명 전망대에서 경찰이 소매치기를 잡는 현장을 의도치 않게 1열에서 직관했으며 기껏 예약한 패러글라이딩은 비가 와서 취소되어 길거리를 떠돌기도 했다. 이런 에피소드야 밤을 새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으면서 이렇게 적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고 즐거웠고 그립기 때문이다. 미술관 투어를 하며 만난 사람과 다른 도시에서 우연히 또 만나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지하철 역에 잘못 내린 나를 달래러 초콜릿을 건넨 행인과 꿈에 그리던 에펠탑 야경을 함께 보며 아무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던 설레는 공기까지 정말 너무 그립다.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만큼 너무 행복했다. 꿈같았다. 꿈같은 현실에 내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첫 여행은 상세하게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어디에 갔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누구와 어떻게 만났고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다 말할 수 있다. 그날의 날씨와 공기를, 그때의 분위기를, 그 당시 나의 감정을 지금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내가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 떠난 여행이었기에 모든 순간이 여전히 소중하다.




지금의 나는 그때처럼 무리하게 여행 계획을 잡지 않는다. 이젠 여러 도시보단 하나의 도시에서 최대한 충분히 그곳을 느끼고자 한다. 여유롭게 차 한잔하며 풍경을 바라볼 줄 아는 여유가 있고 여행 가방은 가볍고 적게 뚝딱 쌀 수 있는 스킬도 생겼다. 좁은 골목길을 거닐 수 있는 수줍은 용기도 있고 서툴게 하고 싶은 말을 건넬 정도의 씩씩함도 갖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서툰 여행을 경험했기에 얻어진 결과라고 생각하면 또 뿌듯하다. 


가고 싶고 먹고 싶은 것도 이렇게나 많은데 무작정 떠날 수 없게 된 요즘 너무 속상하다. 연휴도 길었고 중간중간 대체공휴일까지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많았음에도 작년부터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여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무리 대신할 무언가를 찾는다고 해도 내가 가서 직접 느끼고 경험한 것만 할까! 

그 누구도 탓할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걸 알지만 그래도 답답한 요즘이다. 9년 전 오늘의 사진 덕분에 추억이 떠올라 웃음 짓다가도 문득 지금이 안타까워 쓴웃음을 보이는 오늘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