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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Sep 05. 2022

익숙해지는 중입니다.

_ 지금의 나와 친해지길.




올해 여름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고 바닷속에 있는 듯 습한 날의 연속이었다.

이런 날엔 반곱슬의 숙명으로 머리카락들이 미친 듯이 솟아오른다. 부스스한 머리 사이로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딱!!! 손 씻고 세수하며 거울에 비친 잠깐의 모습에서도 흰머리카락이 떡하니 보인다. 예쁜 카페에 들러 뒷모습으로 감성 사진을 찍어봐도, 핀 조명을 비춘 듯, 내 눈에는 흰머리카락만이 눈에 띄게! 아주! 잘! 보인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미용실을 갔다. 헤어롤을 감는 와 중에 쭉 삐져나온 흰 머리카락, 그 한가닥이 눈엣가시다. 쭈뼛거림과 부끄럼 그 사이 나름 자연스러운 말투로 생애 처음 흰머리 염색에 대해 물었다. 나도 이런 질문을 하는 날이 오는구나.. 헤어디자이너가 답하길, 일반 염색 약과는 성분이 다르고 흰머리 염색약이 훨씬 강해 이후 일반 염색은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흰머리카락이 보일 때마다 주구장창 뽑고 있다고 하니, 손님은 아직 염색할 정도는 아니니 걱정 말라며 신경이 계속 쓰이면 일반 염색을 하고 뽑지는 말라며 나를 어르고 달래셨다.


요즘 자꾸 흰머리가 난다. 아니 예전부터 있었겠지만, 유독, 눈에, 자주 띈다.
스트레스로 생기는 '새치'라고 위로의 말을 전하기엔 분명히 '흰 머리카락'임을 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당연히 있을 법하지만,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임을 당연히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하고야 마는 내 모습에,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지금껏 염색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내 머리카락 색은 브라운에 가까운, 그 비슷한 색을 띤다. 

어렸을 때는 검은색이 아닌, 짙은 색은 아닌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색이 바래지더니 끝쪽은 노란기가 도는 갈색으로 밝아졌다. 미용실을 가도 염색 언제 하셨는지 당연한 듯 물었고, 원래 머리 색깔이라고 답하면 흠칫 놀라며 여러 번 되묻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20살이 넘어도 딱히 염색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염색 안 해서 편하겠다"라는 말에 스스로도 긍정의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은 돈 주고 시간 들여 정기적으로 염색을 하는데 나에게 이런 장점도 있구나 생각하며 내심 맘에 들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 주신 헤어디자이너 분이, 딱 한 분 계셨다. 

"아 머리색이 밝으신 편이네요. 맨 위, 중간, 끝 쪽의 머리색도 다 다르고.. 아래쪽은 진짜 밝네요. 

 정수리에 새로 나는 머리카락도 갈색인데 끝쪽은 이보다 더 밝죠?

 혹시 계속 색이 밝아진다면, 그건 머리카락에 있는 색이랑 영양이 빠져나가는 것일 수 있어요.

 모발이 가늘고 약한 편인데 더 건조해질 수 있고 음... 색이 다 빠지면 흰머리가 되는 거예요.

 펌 자주 하지 말고 효과 없어 보여도 두피관리랑 영양 꾸준히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의 관리는 나이 들어서 티 나는 거 아시죠."


스타일 잡기 전 꼼꼼히 머리통을 눌러보시더니 납작한 뒤통수에 양쪽이 레고처럼 각이 져서 헤어스타일 잡기 어려운 두상이라고 팩트 폭력을 날리셨던 분, 머리색이 많이 빠져서 흰머리가 빨리 생길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진단 결과를 내려주셨던 분이다. 처음에는 미용실에서 의례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시려나보다 하고 크게 집중하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듣는 이야기만 쏙쏙 골라하셔 흠칫 놀라면서도, 그땐 나중 일이라 여기고 흘려 들었는데 이제 그 '티'가 나는 나중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햇빛에 타버렸는지, 뜨거운 바람에 날아가버렸는지 붉은색을 내던 정열의 머리카락들이 이젠 마른 갈색, 노란색, 황토색, 검은색, 빨간색이 모두 섞여 오묘한 색을 띤다. 풍성하고 윤기 좔좔 흐르는 찰랑대는 머리카락이 아닌 건조하고 얇은 마치 볏짚 같은 머리카락을 나는, 갖게 되었다.


반곱슬의 부스스한 머리 덕분에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회 초년생 때 스트레스성 탈모로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진 이후 눈에 띄게 머리숱이 줄어 다양한 펌을 이용하여 볼륨을 유지하는 나에게 이제, 흰 머리카락까지 얹어지고 말았다.




숨길 수 없는 노화현상이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 하나가 익숙해지면 새로운 하나가 등장한다.

매일이 새로운 나와, 그런 내 삶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애써 진지하거나 가볍게만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중이지만 자꾸 새어 나오는 낮은 탄식과 함께

꽤나 씁쓸해지는 비 오는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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