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ision To Leave. 2021. Movie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기억하고픈 작품을 남깁니다.
다른 이를 통해 듣는, 분명한 그 한마디에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던 그 순간을.
저만의 긴 여운을 가득 담아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짧은 기록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그동안의 필모와 화려한 수상내역이 보여 주 듯 현재, 가장 영향력 있고 거장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전 작품들이 아쉽게도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었다. 멜로와 드라마 장르는 좋아하는 나에게는 너무 잔혹하고 괴기하고 영화의 의도를 알아가는 재미보단 보는 내내 섬뜩하고 불편한 영화였다. 올드보이,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박쥐, 설국열차 등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작품성 높은 영화지만 내가 본 영화라고는 공동경비구역 JSA, 아가씨 이렇게 2편뿐이었고 이조차도 공동경비구역 JSA 만이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개봉 전부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해일-탕웨이의 앙상블이 궁금했고 전작보다는 떨지 않고 편안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영이 끝나고 '한 번 더 봐야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도 흠칫 놀랐다. 피식 웃게 되는 유머러스함에 편하게 다가갔던 이야기는 기대했던 것보다 설레고 미묘했으며 놀랍도록 섬세한 영화였다. 감각적인 장면들과 인물들의 눈빛, 대사들에 어느 순간 매료되어 다시 보면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아니 깊게 이해하고픈 감정에 짙은 여운이 남았다.
여긴 혼자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곳이라 평가하고 해석한다기보다 그냥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난 꽤 재밌었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분명한 사랑이라기보다 뿌연 안개처럼 내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어디쯤에 서 있는지 헷갈리게 되는, 알 수 없는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배우의 섬세한 연기력이야 단연 최고였고 감독의 미장센은 돋보였으며 단정함과 자부심을 뚫고 나오는 감정의 동요 가운데 있음이 관객으로 꽤 흥미로웠다.
당신의 미제 사건으로 남아 영원히 당신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서래(탕웨이)의 이야기가 이기적이지만 솔직한 욕망의 표현이었고 핸드폰을 깊은 바다에 빠뜨리라는 해준(박해일)의 대사가 사랑한다는 말임에 충분히 공감했다.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하나. 학창 시절, 난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 잊히지 않는 단 하나의 사랑, 죽음으로 평생 기억될만한 사랑처럼 아무나 경험해 볼 수 없는 그런 사랑을 갖고 싶었다. 사랑으로 완전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절대로 잊힐 수 없는, 평생 단 하나의 가슴 아픈 사랑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철없이 했었다. 사춘기 시절의 허세였으려나..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왠지 이런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미제 사건으로 남아 그의 방 한 켠에 사진으로, 기억으로, 영원의 사랑이고 싶다는 서래(탕웨이)의 말에 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은 전혀 아니다. 사는 것도 힘든데 사랑까지 힘들어야 하겠는가.. 편안하고 다정한 사랑을 바라면서도 왠지 누군가에게 평생 가슴에 사무치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추천곡: 송창식, 정훈희 <안개> (뮤직비디오 with 모니카)
나는 당신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요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다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 해준의 대사 중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
- 서래의 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