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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Mar 09. 2018

외국에 있는 우리 학교를 소개합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우리 학교의 풍경, 그리고 추억

브런치에 삶을 올린 적은 많았는데 정작 유학생활에 관한 건 없었다. 2010년 1월 호주에 도착한 이후 어언 8년째. 군대를 빼도 5년 반의 시간 동안 남는 기억을 되짚자니 별 시덥잖은 낄낄거림과 징징거림 밖에 없었다. 이렇게 허송세월 하면 안 되는데, 내가 타지에 있는 동안 끊임없이 복습한 성찰이었다.


브런치는 나의 경험과 생각을 적는 곳이다. 그러니 유학생활에 관련한 경험과 생각을 소상히 적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현재 멜버른에 있는 모 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시티 바로 옆에 조그맣게 딸린, 16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가 바로 우리 학교다. 그래서, 이 기회를 빌려 내가 다니는 캠퍼스의 풍경과 추억을 간략히 소개해 보고자 한다.


내 글이 외국 대학을 향한 많은 분들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갈할 수 있길 바라본다.


웰컴사인

'Wominjeka'는 '환영한다'는 의미의 원주민 단어다

캠퍼스 정문 입구에 있는 웰컴사인은 언제나 관광객들의 표적이 된다. 캠퍼스 진입의 신호탄, 그래서 대학의 상징과도 같은 웰컴사인. '웰컴사인 앞에서 사진 찍기'는 이미 신입생들 사이에서 암묵적 통과의례로 꼽힌다. 오래간 지켜 본 바, 대학을 위해 바다를 건넌 외국 학생들이 더욱 그런 증상을 보였다.


신입생이 트럭으로 들어오는 매년 1학기 첫 주는 언제나 사람으로 붐빈다. 그런 인파를 보며 나와 친구들은 자조적으로 몇 마디를 나눴는데, 그 내용은 대부분 같은 내용으로 시작해 같은 내용으로 매조지 됐다.


"올해도 시작이구먼"

"왠지 숨이 막히는 것 같더라니"

"저거 딱 2주 본다. 2주 지나면 쟤네들 다 집에서 배때지 긁으면서 자"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 학교는 강의 시스템이 일반 강의와 튜토리얼(tutorial)로 나눠져 있어, 강의는 사후에 녹화본이 제공돼 넘겨도 무방하며 튜토리얼만 필참하면 된다. 그러나 신입생들은 모든 현장에 함께하며 같은 공기를 마시려는 열의를 보이는데, 이런 현상은 개강 첫 주부터 약 2주간 지속 된다.


인파가 절반이 되고, 강의실이 여유로워지는데 필요한 시간은 단 보름이면 충분하다. 나 또한 첫 2주간은 렉쳐 하나하나를 느끼며 교수님과 호흡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강의시간에 집에서 배때지 긁으며 낮잠을 잔다.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대학은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존재였다. 갓 성인이 된 이들이 그 이름에 갖는 자부심은, 매년 확인해 왔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올해도 한 친구와 내기를 했다.


"야, 올해는 1학년 강의 끝나고 애들 박수 친다? 안 친다?"

"설마 올해도 치겠냐?"

"응~ 기립박수 쳐~"


그리고 이틀이 지나 친구는 "네가 옳았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아츠 웨스트

아름다우면서도 이질적인 신구조화


160년 째 같은 부지를 지키고 있는 대학교인 지라 건물 간 편차가 심하다. 좌측 사진은 Old Arts Building이고, 우측 사진은 약 2년 전 개장한 Arts West Building이다. 100미터도 안 되는 자리에 위치한 건물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련 된 모습이다.


나를 비롯한 유학생들은 새 건물 Arts West에 매일 같이 들어가 단물을 뽑아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계단과 승강기, 기둥 하나하나가 우리 부모님의 피땀이고 등골이기 때문이었다. 매정한 학교는 건물 지분의 극히 일부조차 분할해 주지 않았고, 우리는 새 건물의 강의실과 스터디룸을 시험기간 내내 점거하며 냉정함에 보답했다.


 

단물까지 빨아먹고 다시 우려내던 작년 시험기간의 모습

마땅한 공부방을 찾지 못 하던 우리에게 새 건물 Arts West는 축복이자 은총이었다. 완전폐장이 없는 이 공간에서, 새벽 내내 강의실을 빌려 대형 스크린으로 가수들 라이브를 봤다. 최고급 디스플레이와 음향시설을 보유한 자체 홈시어터가 따로 없었고, 우리는 저 강의실 안에서 서로의 신청곡을 틀어가며 시험공부를 했다.


이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던 지 시험이 끝나고도 몇 번 찾아 왔다는 후문. 한 번은 '월래스와 그로밋' 시청 도중 경비원에게 적발 되기도 했다. 모두의 초점이 선명해지고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 하는 순간이었는데, 경비원은 그 기색을 읽고서는,

"나 배틀그라운드 좋아하는데 다음엔 배그 틀어줘"

라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사라졌다.


시험기간 야밤의 주인공은 진정 우리였다.



사우스론


위에 첨부된 Old Arts Building의 앞에는 사우스론(South Lawn)으로 불리는 잔디밭이 있다. 개강 직전의 오리엔테이션 위크(Orientation Week)부터 사람으로 북적대는 곳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모든 동아리가 부스를 열어 홍보활동에 나서는 곳이 바로 이 곳 사우스론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케이팝의 높아지는 위상을 확인하기 좋은 곳이다. 날이 갈 수록 커져가는 케이팝 동아리의 크기가 체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제는 방탄소년단과 워너원을 메인으로 자기 동아리를 홍보하길래, 조심스레 다가가 "젝스키스 춤도 가르치냐"고 물어봤다가 사과 당했다.


(필자는 젝스키스의 팬이다)


케이팝과 발맞춰 다른 동아리도 회원을 모집하기 바쁜데, 개 중엔 한인회 같이 국가를 대표하는 동아리들도 상당수 포함 된다. 한인회를 비롯한 일본인 동아리, (만다린과 광둥어를 기준으로 나눠진) 중국인 동아리, 말레이시아인 동아리 등 여러 국가대표 단체가 있다. 상기 할 점이라면 타 아시아 국가와 달리 일본인 동아리는 유독 외국인이 많다는 점. 일본인 친구 만나려고 동아리 갔다가 중국인만 사귀고 온 일화는 내 마음 속 조그만 해프닝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다.


여기서 또 신입생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옛날의 나를 비롯한 신입생들은 아직까지도 심혈을 기울이며 모든 부스를 관찰하고 가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여섯 개의 가입상품을 양손에 주렁주렁 들고 부스를 기웃거리는 신입생들을 보면 아직까지 귀여운 마음이 크다. 나는 속으로 조언한다.


너희, 몇십 개 가입해봤자 2주 지나면 한두 개 밖에 활동 안 해. 경험에서 우러 나오는 말이었다.



세 가지로 간략하게 나의 대학생활을 되짚어 봤는데, 막상 해보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도 많고 쓸 것도 점차 생겨 다행이었다. 다인종 다문화 시대에 걸맞게 차별없는 글을 쓰고자 했는데, 언젠가는 각 나라 사람들을 향한 솔직한 인상과 느낌도 적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조만간 2편을 쓸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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