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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Mar 04. 2018

공연장 비매너 총집합

퀸 공연에서 또 한 번 사투를 벌이다

일전에 '영화관 비매너 총집합'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단 하루의 기억으로 1천 자 짜리 수기를 만들어 제법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나는 이 기록을 '비매너 시리즈'로 묶어 연재할 계획이 없었다. 그만한 경험이 없기도 했고, 써봐야 억지로 끼워 맞춰 초심을 잃을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https://brunch.co.kr/@lovethatwriter/18


그런데 신이 내게 또 한 번의 글감을 주셨다. 진심에서 우러나와 모든 분노를 집약해 쓰는 비매너의 총집합. 오늘 내가 간 공연은, 두 쌍의 관객들로 빛을 잃었고 그 가치를 낮췄다. 일전에 내한한 바 있는 퀸(Queen)과 아담 램버트(Adam Lambert), 그들의 호주공연이었다.


웰컴사인 떼라 기분 나쁘니까

감동의 도가니라는 지인들의 평가에 주저없이 공연을 예매했다. 프레디 머큐리의 빈자리가 어떻게 채워질까, 궁금함을 담으면서도 섣불리 판단하지는 않았다. 셋리스트와 공연 연출 등 감동이 깨질 수 있는 스포일러 또한 최대한 피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공연영상이나 실컷 볼 걸 하는 후회가 막심하다.


일단 좌석부터 시야제한의 극한을 보여줘 날 불안하게 했다. 오늘 공연 쉽지는 않겠어... 스케줄 때문에 한 번 취소했던 공연, 스케줄이 취소돼 다시 급하게 예매했기에 저 정도 시야는 감수해야만 했다. 옆자리엔 학생 듀오 에이미(16, 가명) 씨와 제인(16, 가명) 씨가 착석했고, 내 앞자리엔 그레이 아나토미 나올 것 같은 여의사 듀오 페넬로페(40, 가명) 씨와 제시카(40, 가명) 씨가 앉았다. 네 명을 중심으로 한 신인류의 비매너와 나의 사투는 오프닝과 함께 막을 올렸는데, 먼저 이 글엔 어떠한 비하적 의도와 악의가 없음을 밝히는 바다.


 구슬픈 기대의 흔적

스냅챗


'We Will Rock You'와 함께 공연의 막이 오르고, 아담 램버트가 힘찬 목소리로 시작을 알렸다. 신인류는 본격적으로 휴대폰을 들어 모든 광경을 담았는데, 나도 이해심과 아량이 있는 관객인 지라 벌써부터 화가 치밀어 오르지는 않았다. 단지 문제는 두 시간 동안 한 게 영상 찍기 밖에 없었다는 것.


분명 스테이지에 고정돼 있던 휴대폰 카메라는 어느새 셀카모드를 왔다갔다 거리며 사방으로 쉼없이 움직였다. 좋은 각도를 찾기 위해 옆 관객 목덜미까지 휴대폰을 내밀고 영상을 찍는 그 참혹함이란. 그 중 여의사 듀오 주변에 앉은 할머니 도나(65, 가명) 씨 또한 불쾌감을 은연 중 내밀며 그들을 뻔히 쳐다보곤 했는데, 내가 할머니를 도울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학생 듀오부터 신경 써야했기 때문이었다.


에이미 씨 휴대폰에서 끊임없이 소환된 건 바로 스냅챗이었다. 15초 짜리 영상을 찍어 친구들과 공유하는 SNS인데, 나는 공연 도중 에이미 씨 스냅챗에 올라간 영상만 두 자리 수를 가뿐히 넘으리라 감히 확신한다. 이는 에이미 씨의 동료 제인 씨도 마찬가지여서, 자기 셀카와 공연영상을 확인한답시고 공연 중 휴대폰 사운드를 만땅으로 키우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퀸의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가 음악 없이 계속 멘트를 던지며 분위기를 잡던 순간, 제인 씨는 휴대폰 소리를 최대로 키워 스냅챗 영상 확인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침묵 속 오직 들려야만 할 브라이언의 음성이 묻히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피해자였던 제임스(25, 가명) 씨와 지니(23, 가명) 씨가 그들을 노려 보았고, 나 또한 하다하다 못해 볼륨 좀 낮추라고 일갈해야만 했다.


제인 씨가 볼륨을 낮추며 날 노려보는데 마음 속 격식이 사라지고 시옷이 튀어 나오려는 걸 교양인의 자제력으로 막아냈다.


돌림노래


내가 저 정도의 비매너에 치를 떤 이유는 바로 이 돌림노래에 있다. 돌림노래로 한 번 사람을 고깝게 보자 모든 것이 고까워 보이는 마법 같은 일이었다. 고로, 이 돌림노래가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퀸의 주옥같은 명곡들이 쉴틈 없이 이어지고, 네 명의 신인류는 지속적으로 휴대폰을 들고 SNS를 이어갔다. 그런데 'Don't Stop Me Now'와 함께 에이미 씨가 휴대폰을 거두었다. '역시 명곡 중 명곡은 촬영 없이 즐기는 거지...' 이따금씩 거슬리던 휴대폰이, 마침내 사라졌다는 생각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내 생각은 완벽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에이미 씨는 'Don't Stop Me Now'의 전주부터 후렴구를 모두 따라불렀다. 우리가 흔히 '떼창'이라고 부르는 이 행위에 나는 평소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장려한다. 즐겁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있다보면 나 또한 즐겁고 자유로워지는 기분이니까. 그런데, 어린 에이미씨의 떼창은 일반적인 '떼창'의 범주와 그 궤를 달리 했다.


감정이입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무산 되고

뒤통수만 보이는 스테이지의 유일한 장점은 보컬인 아담 램버트를 프레디로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퀸 곡을 들으며 감정이입을 준비하는데, 둘이 듣다 셋이 죽어도 모를 환상의 피아노 전주에서부터 집중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에이미 씨는 돼도 않는 음정과 박자로 가사 한 음절 한 음절을 정성스레 분탕했는데, 특히 돌림노래 부분이 그랬다. 노래를 어정쩡하게 아는데 부르기는 다 따라 부르고 싶던 에이미 씨가 빚은 참사였다.


아담:      "Tonight, I'm gonna have myself a real good time"

에이미:       "Tonight, I'm gonna have myself a real good time!"


워드로 치면 Tab 기능이었다. 이 파트가 아닌가? 싶다가 아담이 구절을 시작하면 뒤늦게 반박자 늦게 치고 오던 에이미 씨의 떼창. 그 박자는 결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할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한번 늦게 시작한 노래는 끝까지 늦어야 제맛이라는 듯 제 페이스를 유지했다.보컬 아담을 덮는 데시벨로 멱 따기에 가까운 소리를 내고, 심지어 매번 반박자 늦게 치고 들어오던 에이미 씨의 목소리였다. 본인은 신이 나서 매 구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달이었지만, 그보다 더 퀸을 좋아하고 바라오던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에이미 당신의 떼창은 맞는 가사 하나 없이 엉망이었으며, 박자 또한 개판 오분 전이었다는 걸.


옆자리가 아델이어도 화가 났을 상황이지만 에이미 씨는 그조차도 못 하는 학생이었다. 에이미 씨는 'Don't Stop Me Now'가 끝나자마자 다시 휴대폰을 치켜 올렸는데,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에이미 씨의 머릿속엔 SNS용 노래와 떼창용 노래 두 종류 밖에 없다는 걸.


새삼 앞으로도 계속 영상을 찍어주길 바랐다. 그게 떼창보단 나았다.


노이즈


에이미 씨를 위시한 네 명의 신인류는 완전체의 모습을 여러 방면으로 선보이며 주변에 현기증을 일으켰다. 관객들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넷에게 살벌한 눈빛을 보냈으나, 그 넷은 눈빛과 상관없이 본인의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했다.


내가 예민한 건가 싶어 지난 25년을 되짚는 시간도 가져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의 매너가 유달리 특별한 것이었고 이전에 공연장에서 마찰을 빚은 적은 없었다. 나는 언제나 불만이 있어도 속으로 썩혔지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런 내가 오늘만 두 번의 사자후를 이용했다. 관객이 잘못했음이 분명했다.


물론 말만 사자후였지 사실은 나름 젠틀한 동양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괴성을 지르는 게 나았나 하는 회한도 드는데, 이는 신인류가 마침내 낄 때 안 낄 때 구분 못 하고 TV 앞 가정집 마냥 수다를 떨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피해자는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였다. 기타솔로로 분위기를 잡으며 Radio Gaga로 넘어가, 공연에서 아주 중요한 문턱임에 틀림 없었는데 이 신인류가 이제는 큰소리로 기타 톤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죽여줘"


동전으로 기타를 친다는 브라이언의 기타솔로는 들을 가치가 넘쳤고 놓쳐선 안 될 귀중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신인류 네 명은, 보컬 없는 반주는 엿가락이나 바꿔 먹어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가진 모양이었다.


앞자리의 페넬로페 씨와 제시카 씨가 본인들의 인스타그램 피드로 시시덕거릴 때, 에이미 씨와 제인 씨는 알아먹지도 못할 자신들의 주제로 사담을 나누었다. 아주 큰 소리로, 이 곳이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미용실 계모임 장소인 것처럼. 또 다른 관객이었던 도나 씨가 신인류 전체를 빤히 쳐다봤지만, 그 정도 눈빛에 굴할 그들이 아니었다. 외롭게 기타를 튕기는 브라이언의 뒷모습이 한없이 슬퍼 보였다.


이 세 가지의 진상이 골고루 겹쳤을 때가 바로 'Under Pressure'였다. 드러머 로저 테일러의 화려한 드럼 솔로 도중, 그레이 아나토미 듀오는 플래시를 터뜨리며 셀카를 찍었고, 학생 듀오는 각도를 이리저리 옮기며 영상 촬영에 바빴다. 유명한 베이스 전주가 나오자 반박자 늦은 떼창으로 스테이지를 외롭게 만들었고, 노래 도중엔 본인들의 사담으로 손난로를 한껏 덥혔다.


플래시


'Bohemian Rhapsody'는 이 모든 비매너의 집약체이자 결정판이었다. 일전부터 유명한 노래만 떼창하며 망치던 그들의 간사함을 목격했기에 보헤미안 랩소디가 두려울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밴드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 나오는데 그게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다니.


옆자리의 관객에게 '적당히'를 촉구하는 건 항상 조심스럽다. 행동에도 용기가 필요할 뿐더러 자칫하면 내가 진상이 될 위험 또한 있으니까. 사진촬영과 미친 떼창, 사담 등 지적할 건 한두 개가 아닌데 모두 지적하면 내가 예민보스가 되는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찬스를 한 번 더 써야 되나, 내가 고민하는 도중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퀸 최고의 명곡이자 프레디가 남긴 최대의 유산. 퀸의 영혼이자 심장과도 같은 곡. 촬영만 해주길 바랐으나 휴대폰을 내리는 순간부터 나는 직감했다.


망했구나.

오케스트라 파트가 떼창하라고 있는 게 아니야


에이미 씨는 이젠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반박자 떼창을 시작했고, 이젠 제인 씨까지 끌어들여 함께 즐기는데 정신이 없었다.


아담:       "Mama... just killed a man..."

에이미:        "Mama!! just a killed a man!!"


사람을 죽였다는데 죽인 기쁨에 젖어 포효하는 철면피 에이미 씨의 떼창이었다. 가사를 몰라 옹알이 했음은 물론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선, 내 100불이 더 나은 곳에 쓰일 수 있었을 거라며 한탄했다. 이게 따지고 보면 자리를 잘못 잡은 탓이었다. 원래 좌석을 취소하는 게 아니었어... 주변 관객의 고통으로 구역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앞자리의 페넬로페 통하는 게 있었는지 에이미 씨에게 사소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양손을 번갈아 치켜올리며 분위기를 만끽했는데, 그 모습이 흡사 스탠딩 구역에서 "손 들고 소리 질러"하는 모습을 보는 듯 했다.


그런데 페넬로페 씨가 손을 뻗다 말고 그 자리에서 얼음동작을 취했다. 다시 한 번 직감했다. 저거 또 사진 찍으려고 컨셉 잡는 것 보소. 나는 즐기고 있다, 티를 팍팍 내는 설정샷으로 보헤미안 랩소디 도중 사진을 다섯 차례 넘게 찍었다. 사진촬영은 제시카 씨의 몫이었다.


30년 전 웸블리 공연, 프레디는 피아노와 보컬을 병행하며 웅장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멤버들의 오케스트라는 그 애절함을 더했다. 아담의 보컬은 결코 프레디를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그 분위기는 30년 전 못지 않게 웅장했고 애절했다. 아니, 웅장할 '뻔' 했고 애절할 '뻔' 했다. 페넬로페를 찍기 위해 여섯 번의 플래시가 터졌고, 이는 모두 클라이막스 직전의 오케스트라 파트에서 벌어진 참사였다. "플래시 좀 그만 켜면 안 돼?" 내가 다소 교양 잃은 모습으로 제시카를 살벌하게 노려보았고, 제시카 또한 지지 않으려는 듯 나를 경멸스럽게 쳐다보며 "놉!"이라고 대답했다.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며 나는 얼굴을 감싸쥐고 말았다.


차라리 엘리베이터에 속옷이 끼어 찢어지는 게 더 즐거운 경험이리라...



마지막 곡 'We Are the Champions'가 나오자, 나는 모든 걸 포기한 심정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마른 세수를 했다. 선량한 제임스 씨가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았고, 그 와중에 에이미는 고독한 소나무처럼 다시 돌림노래 중이었다. 모든 시야를 차단하고 소리만을 받아들이자, 해탈한 싯다르타처럼 사리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제가 저 신인류 뚝배기 때리고 경찰서 가도 되겠습니까? 학교 퇴학 당해도 되겠습니까? 신에게 물었지만 신이 안 된다고 대답했다. 교양은 참는 자의 몫이었다. 나는 끝까지 참았고, 돈을 잃었지만 명예를 지켜냈다.


공연 후기와 이 글을 분리해 쓸까도 생각했는데, 이전 영화관 편처럼 이 비매너 내용을 빼니 공연 기억은 남는 게 없다. 열렬한 퀸의 팬이라 감동에 젖어 모든 곡을 따라 부르면 차라리 이해라도 했을 텐데, 그들의 태도는 그저 SNS에 자랑 한 번 더 하기 위해 퀸을 이용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고통의 140분이었다. 그들을 볼 다시 없을 기회가 허무하게 날아갔다.


이제는 강해질 수 있길. 다음부턴 그들에게 사자후를 터뜨리며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 본다.

문화공연 덕후, 이런 날 두 번 겪었으니 이제는 충분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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