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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Mar 13. 2018

페이스북 친구를 고찰하다

당신은 초면인 사람들과 '페친'을 맺나요?

대학생인 나는 지난 주 신입생 환영회를 갔다. 사람을 알고 싶은 신입생들과, 신입생을 알고 싶은 재학생들이 한데 어우러져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불타는 금요일을 만끽했더랬다. 70명이 넘는 참가자 중, 족히 스무명은 되는 사람들과 한 번은 통성명을 하고 학교생활을 고찰했는데 그런 대화의 마지막은 언제나 이랬다.


"페이스북 하세요?"

"아, 네! 제 페이스북은요..."


그리고 우리는 등을 돌렸다. 다른 사람, 새로운 인연을 찾아 테이블을 유랑하며 말을 걸었다.


 

출처 thatsnonsense.com

이 날 나의 페이스북 친구는 스무 명 가까이 늘었다.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된 마냥 "연락하며 지내자"는 말을 반복했지만, 사실은 그러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3년 전에도 그랬다. 그 때는 신입생의 입장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는데, 개중 아직까지 연락하는 친구는 단 한 명이다.


페이스북 친구는 상호간 연결을 증명하는 매개체 이상이 되지 않는다. 뉴스피드엔 광고와 찌라시가 판을 치고, 사람들은 예전처럼 페이스북에 근황을 전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친구목록에 올라 있는 이름 하나 뿐. 그나마도 대부분의 담벼락은 오래 간 흔적 없이 비어 있는 마당이다.


그렇다면, 페이스북 친구를 맺는데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가능성'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페북 친구를 맺은 이상, 언제든지 나는 상대방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메신저는 카톡의 대용이다


페이스북은 더 이상 이전처럼 깔끔한 플랫폼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친구 사이를 연결하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자체 메신저와 훌륭한 연동 기능, 그리고 그룹 메이킹까지. 사실상 자기PR의 장이며, 좀 더 사적이기도 한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에 비해 페이스북은 조용한 연결고리 역할만 취할 뿐 그 이상을 해내지 않는다.


지금은 서먹해서 내 사적인 공간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언제든지 그럴 여지를 남겨두며 '나는 너와 친해질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수단. 나는 그게 페이스북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실제로도 나는 매일 만나는 사람과는 페이스북 친구가 아닌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친구추천에 이름이 뜰 때도, 초면의 상대와는 다르게 추가 버튼에 손도 대지 않고 스크롤을 내리기가 일쑤였다. 페이스북은 이미 연결된 사람과는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카카오톡을 할 수 있었고, 서로의 인스타그램을 볼 수 있었으며 여차하면 그룹 메이킹도 할 수 있었다.


3년 전, 나와 신입생 환영회에서 친해진 유일한 친구는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날 때까지도 친구가 아니었다.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공인 받았지만 막상 만나면 어색한 그런 관계. 그런데 휴학 이후 언젠가, 그 친구가 페이스북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고 꾸준히 근황을 물어 관계를 발전 시켰다. 나는 군복무를 끝낸 뒤 학교로 돌아가 그 친구와 약속을 잡았고, 결국 지금은 몇 개월에 한 번씩 보며 친근감을 느끼는 사이가 되었다. 그 친구를 보며 난 이런 생각을 한다. 페이스북은 '가능성'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으며, 결국 내게 좋은 친구 한 명을 선물해 소임을 다 했다고.


초면에 인스타그램 맞팔을 하긴 힘들지만 페이스북 친구를 맺기는 쉽다. 상술했듯, 내게 페이스북은 '급격한 진전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남겨주는 여지'다. 페북에서의 '친구'는 표면적인 우정과 가능성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가 아닐까.


잠이 오지 않는 밤, 지금도 추가 되는 '친구수락' 알림을 받으며 가볍게 가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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