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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Feb 19. 2018

'갑질'을 모르는 체육회를 위한 설명서

세상은 더 이상 수직적이지 않아요

유교 사상에 기반한 우리 사회는 지난 반세기 비약적인 성장과정을 거쳤다. 직책에 따른 서열과 그 서열에 의존하는 국민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번 정해진 서열은 쉽게 뒤바뀌지 않았으며, 그래서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아랫것으로 대하기를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최근 들어 세상이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윗것 아랫것의 구분이 터부시 되며, 직책의 남용이 사회적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감투는 '단체 내 서열'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복종하길 좋아하지 않았고, 수평적인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 받고자 했다.


이제 우리 현실을 깨달아요

본문은 아직 변화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대한체육회를 위해 내가 적은 설명글이다. 앞으로도 국민들을 짊어져야 할 텐데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나 싶어서. 지금부터, '대한체육회 갑질 논란'의 시작과 현재까지의 과정을 하나씩 짚어 보도록 하겠다.


http://v.sports.media.daum.net/v/20180216142355524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IOC가 예약한 OF(Olympic Family)석에 앉아 자원봉사자의 제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 회장은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오면 일어난다"고 고집을 부렸다. 대한체육회 관계자(후속 기사로는 수행원)는 자원봉사자에게 세 차례 고함을 치며 "머리를 좀 쓰라"고 비난했고, "IOC 별 것 아냐, 우리가 개최국이야"라며 오만을 뽐냈다. 그들은 한동안 앉아있다가 자리를 떴고, 을로서 모욕을 견딘 자원봉사자에겐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이 기사에서의 '갑질'은 반말과 폭언, 그리고 무시다. 회장은 감투에 걸맞지 않은 품격으로 자원봉사자에게 모멸감을 줬고, 수행원 또한 자신이 회장 오른팔이라는 감상에 젖어 남의 지적수준을 하대했다.


내가 '위'고 네가 '아래'임을 보여주는 행동의 전형이었다. 여담이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갑'과는 대등해지고자 슬그머니 하극상을 보였는데, "우리가 개최국이야, IOC 별 것 아냐"라는 말이 바로 그랬다. 모처럼 특별해진 지위로 자신들의 '갑'에게 도전하고자 한 그들. 그러나 그들은 IOC측 관계자가 도착하자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http://v.sports.media.daum.net/v/20180217090935706


갑질 논란이 일자 대한체육회는 나름의 해명을 내놓았다. 회장의 AD카드는 OF석에 앉을 권한이 있으며, 예약석 표시도 없어 앉은 것이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던 자원봉사자와의 오해를 불렀다는 것. 그러면서 마지막에 "자원봉사자가 기분 나빴던 건 오해를 풀 생각이지만, 갑질이라고 하기엔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고 항변했다.


대한체육회는 갑질의 핵심을 '잘못된 이유로 자원봉사자를 꾸짖은 점'으로 판단했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그 자리에 앉은 건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갑질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이제 자칫하면 똥방귀로 들릴 수 있다. '착석 여부의 정당성'은 갑질에서 논외다. 논란의 핵심은 '을'의 기분이 나빴다는 점에 있었다.


진짜 해명을 하려면 "나는 이 말을 하지 않았다"가 됐어야 하는데, 사상 자체가 다르니 갑질의 핵심조차 제대로 짚어내지 못 하는 게다. 국민들은 행동의 원인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행동 그 자체를 지적하고 있는 거다.


http://v.sports.media.daum.net/v/20180218044801532


'오해를 풀었다'는 말은 그 자체로 자신들의 사과가 단순한 사태무마용이며, 그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실책을 깨닫지 못 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들이 과연 피해 당사자의 바람대로 자원봉사자들과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비출까. 높으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한체육회는 여전히 수직관계에 기대 사람들에게 을이 되길 요구한다. "IOC 별 것 아니다"라는 말을 봐서는 애초에 답이 없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지만 그냥 기분 탓으로 치려 한다. 하대를 당연시 여기는 체육회에게 묻고 싶다. 토마스 바흐 위원장과 오해가 생겨 "머리를 쓰라"는 폭언을 들었다면 그 언행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을 것인지. '을'이기 때문에 가만히 고개 숙이고 외교적 결례 따위 무시해 버릴 것인 지.


'반성을 요구한다'느니 '사퇴를 촉구한다'느니 입에 발린 표현은 쓰지 않겠다. 단지, 국민들은 이제 체육회와 자원봉사자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생각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국민들에게 대한체육회는 별 게 아니다. 이제는 높으신 분이 높으신 짓을 하면 욕을 먹는 사회가 됐다.


대한체육회에게 변화한 사회의 모습을 귀띔해 주고 싶다. 어서 머리를 써서 이 변화를 깨닫길. 이제는 갑질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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