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저한테 컨텐츠 제안 좀 해주세요
벌써 서른 개의 글, 백 명의 구독자를 기록했다. 읽어주신 분들께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브런치라는 존재가, 내게 이 정도의 위로와 선물이 되어 줄 줄은 전혀 몰랐다. 그래서 가볍게 지난 기록을 되짚으며, 앞으로 무엇을 쓸지 고찰하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했다.
브런치의 존재는 작가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게 어머니가 알려주신 게 시작이었다. 이러이러한 플랫폼이 나왔는데, 작가신청 받는 것 같으니 한 번 해보렴. 아 그래요? 하고 말았는데, 이게 카카오에서 밀어준다기도 하고 인스타 친구 분이 작가 됐다고 자랑도 하시는 통에 결국 손이 근질근질해졌다. 남이 하면 나도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었다. 희대의 레이트 어댑터, 그는 그렇게 브런치의 문을 똑똑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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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을 거쳐 작가가 된 이후, 내게는 한달 반의 공백이 있었다. 블로그가 우선이기도 했고, 2년 반 만에 호주로 돌아온 시기라 챙길 게 많았기에. 어차피 둘 다 글 쓰는 건데 크게 다를 게 있을까, 맨날 공연후기나 끄적거렸는데 여기서도 그러겠지 뭐. 그 때까지만 해도 브런치에 별 감흥이 없었고, 그냥 흔히 지나가는 플랫폼 중 하나가 되리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 브런치에 차별화를 두자고 결심한 게 작년 9월이었다. SNS에서 여자연예인 프로필 사진 쓰다가 대쉬 받은 경험을 문득 풀어놓고 싶었는데, 블로그는 이모티콘 좀 덧붙여서 가볍게 써야할 것 같은 느낌이라 브런치를 고른 것이다. 한두 시간 투자해서 가볍게 글을 적었고, 혼자 낄낄대기도 하며 브런치를 추억 되짚는 용도로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https://brunch.co.kr/@stevenmovie/5
그런데 이 글이 대박이 나버렸다. 글 쓴지 일주일인가 지났을까, 이번엔 사이비 종교와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이 글 조회수가 2천씩 늘어나는 것이었다. 일주일 전에 쓴 글이 왜 이제? 브런치 사용법도 모르던 나는, 유명인이 이 글을 공유했나 싶어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링크를 검색하는 등 갖은 헛고생을 했다. 누군가 공유까지 하며 내 글을 돌려 본다, 그 때는 그게 상당히 낯선 경험이었다.
댓글로 물어보니 카카오톡 메인에 걸렸다고 했다. 메인의 힘은 위대한 지라, 그 전까지 한 자릿수에 그치던 조회수가 결국 3만 가까이 도달했다. 늘어나는 구독자와, 공감을 표하는 댓글들은 더 이상 내 브런치를 혼자만의 공간으로 놔두지 않았다.
관심에 취한 나는 점차 블로그의 비중을 줄이고 브런치를 애용했다. 블로그는 다소 가볍게 쓰는 공간이었는데, 브런치는 한없이 무거워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좋았다. 일주일에 한 편씩 써야겠다! 는 다짐은 한 달 만에 깨졌지만, 어쨌든, 글감이 있으면 이제는 브런치부터 꺼내게 되었다.
사람들이 내 글을 돌려 보는 게 이렇게 큰 기쁨인 줄 몰랐다. 그래서 일부러 글감을 쥐어짜기도 하고, 시류에 맞는 글을 써서 메인에 가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내 썰 풀기. '덕혜옹주' 보고 분노한 기억을 되살린 글이, 브런치 대문에 올라가며 다시 한 번 좋은 반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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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도 다 아끼고 있지만 나는 유독 이 글에 애정이 간다. 이게 가장 '나다운', '내 방식대로 쓴'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계속 이렇게만 글 쓰면 구독자도 늘고 행복해 마지 않을 것 같았는데 중요한 건 내가 고작 스물의 약관이라는 것. 글을 위해 기억을 조작 할 만한 깜냥은 아니었다. 기억을 만들어 낼 수준이라면 차라리 소설을 쓰는 게 나았다.
내 진심을 반영할 글감이, 그래서 점점 사라져 갔다.
칼럼으로 보일 만한 글에도 내 경험을 덧씌워 수기에 가까워지고자 노력했다. 나는 수기를 쓰고 싶었다. 남들은 쓸 수 없는 독창적인 글을 쓰고 싶었기에. 요즘도 웬만하면 나의 이야기를 쓰려 노력하고 있고, 그래서 아직 남아 계신 구독자 분들은 '내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 구독버튼을 친히 눌러주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언제나 감사하다. 덕분에 글을 쓸 힘이 난다.
수기와 반대로, 나는 칼럼 쓰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칼럼으로 의견을 표출할 만큼 배운 것도 아니고, 한 분야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 글을 쓰려다가도 반대쪽 의견을 보며 조용히 백스페이스를 누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가끔씩 칼럼 비슷한 글을 쓰곤 하는데, 그런 때는 아마도 내가 확실한 의견을 가지고 있고 생각이 바뀌지 않으리라 자신하는 때일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욕 먹는 거 한순간인 칼럼보다는, 확실히 내 이야기를 바탕으로 생각을 풀어놓는 수기가 편하다. 굳이 링크하진 않겠지만 욕으로 브런치가 터진 적이 한 번 있어서, 내 글로 욕 먹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 지 명확하게 아는 편이다.
그 날은 내가 '확실한 의견'을 가지고 있고 생각이 바뀌지 않으리라 자신하는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그 날 하루는 버티기 좀 '빡셌다'. 보통 메인 갈 때도 최종 조회수가 2~3만명대였는데, 그 글은 시간당 조회수가 2만이었으니. 댓글은 실시간으로 들끓었고 공유는 50번을 넘겼다. 얼굴이 시뻘개져 도대체 어디 올라갔나 확인해 보니 카카오톡 채널 맨 위에 있었다. 다른 쟁쟁한 유력 뉴스들 모조리 제치고 맨 윗자리. 그 날은 내가 아주 훌륭한 욕받이가 되어 모든 분노를 받아냈다. 이게 옹호와 비난이 반반이라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비난만 주목하게 돼서 전혀 이성적으로 바라 볼 수가 없었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 같던 불길도 시간이 지나니 꺼지긴 하더라. 한 사흘 진정하고 난 뒤에야 모든 댓글을 취사선택 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격려와 건설적인 비판은 여전히 내가 글을 쓸 때의 위로와 참고로 남아있지만, 소수의 악플들은 금세 맘속에서 다 지워졌다.
좀 시간 지나고 보니 악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다행이었다. 브런치 하면서 멘탈도 두어 단계 성숙해진 느낌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런 이유로 칼럼보다 수기를 선호한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떠오르는 게 아니라서 문제. 요즘이야 글감이 있다 싶으면 메모를 해두지만, 옛날의 다사다난 했던 기억은 지금 대부분이 지워져 후회로만 남았다. 이 때 미리 정리 좀 해둘 걸, 일기라도 좀 써둘 걸. 마지막 일기장이 초등학생 시절인 자신에게 뭘 바라나, 싶기도 하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스포츠 관련해서 글을 써볼까도 했지만 내 지식이 다른 전문가들보다 앞서는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딜레마다. 내가 쓸 만한 글이 뭐가 있을까? 오직 나만 쓸 수 있는 주제가 어디 없을까? 글감을 찾는 하이에나의 두뇌여행은 오늘도 계속 된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혹시 제게서 보고 싶은 글이 있으면 추천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