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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Sep 01. 2017

SNS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

기회를 노리는 남자는 언제나 있다

거창한 제목만큼 거창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쯤 정리하면 좋을 것 같은 이야기라서 적어본다. 이 글은 말 그대로, SNS에서 여자로 살아간 경험을 소상히 풀어놓는 나의 회고록이다. 물론 고의는 아니었다. 모든 사건은 우연찮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1.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려던 2010년의 일이다.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타지로 떠난 내게는 친구도 뭣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한국 바깥에서 새롭게 뿌리 박고자 갖은 노력을 했고, 그 중 하나가 페이스북이었다.


랭귀지 스쿨에서 만난 친구들은 내게 페이스북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한국에선 여전히 싸이월드가 득세였기에, 나는 이것 또한 적응의 일환이라 생각하며 내 이름으로 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다. 영어이름을 설정하고, 다니는 학교를 추가함과 동시에 사는 곳도 업데이트 했다. 랭귀지 스쿨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속속들이 친구를 맺었다. 싸이월드와 비슷했지만 간편함에 있어 페이스북은 비교도 되지 않게 편했다.


그 시절 나의 프로필 사진은 원더걸스 선미였다. 왜 하필 선미였냐하면, 내가 텔미 때부터 선미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고, 그녀가 원더걸스를 잠정탈퇴한 시기가 내가 유학간 날과 절묘하게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2010년 1월 23일, 나는 학업을 위해 연예활동을 중단한 그녀의 모습을 내게 투영했다.

당시 프로필 사진. 이 사진 다시 찾는데만 20분 걸렸다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지금은 내 사진이 프로필이다. 그러나 그 때는 이 사진이 나를 대변했다. 나를 아는 친구라고는 고작 대여섯이었기에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입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중국인이 나를 친구추가 했다. 같은 도시에 사는 중국 유학생이었나 보다. 친구가 고팠던 나는 그를 흔쾌히 수락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랭귀지 스쿨을 졸업한 내가 진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이제 곧 현란한 영어를 마주하리라, 나는 그런 두려움을 페이스북에 적어 올렸다.


'벌써 다음주부터 고등학교라니... 내게 힘을 줘!!'


이미 고등학생이던 몇몇 친구들은 '별 거 아니야!'라며 나를 격려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던 중국 친구 카이 씨(18, 가명) 또한 그 글을 보자마자 나를 위로하기 위해 혈안이었다.


'힘 같은 건 필요없어ㅎㅎ 예쁜이ㅎㅎ'


?


댓글 끝에 붙은 '예쁜이'라는 말이 상당히 거슬렸다. 친구추가를 둘러싼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단지 의문은 내 계정의 남자이름을 보고도 나를 여자로 생각한 것. 얼굴에 미쳐 이름이 보이지 않는 병 같은 거에 걸린 걸까. 나는 그에게 조용히 '오마이갓, 나는 남자'라고 일렀다.


'그럼 쟤는 누구야'

'원더걸스에 미미라는 애야' (선미의 미국 활동명은 Mimi였다)


실망한 기색이 가득한 그에게 순수했던 나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리 미안했는 지는 모르겠다. 그는 계속 이어지는 댓글에 허허 웃고는, 네가 미안할 게 뭐 있냐, 괜찮다며 마음 넓게 응수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서로 얘기하면서 지내자.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내게 그는 그래 그러자며 기분 좋게 응답했다.


그리고 우리 둘이 다시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었다.



2. 두 번째 사건은 내가 타지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한 2011년 말의 일이다. 선미의 활동이 없자 상심한 나는 그 즈음 새로 시작한 하이킥 시리즈의 백진희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반두비 때부터 시작된, 나름 유서 깊은 시선이었다. 하이킥에 그녀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매일을 하이킥에 빠져 다시보기로 전편을 챙겨보곤 했다.

당시의 프로필 사진. 이건 좀 쉽게 찾았다

나의 프로필 사진은 자연스레 백진희로 바뀌었다. 덕질을 숨기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친구들은 모두 이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그 중국 친구 또한 이런 나를 보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러나 이 때 새로운 친구추가가 들어온다. 한국에 거주하는 아저씨 제임스 씨(33, 가명)였다.


제임스 씨는 내가 가입한 페이스북 야구 그룹에서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당시 드라마틱한 추락을 겪던 LG야구임에도 희망을 놓치 않던 나는, 그 그룹 또한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었다. 영어로 KBO 소식을 접하는 그 곳에서, 간혹 어색한 영어로 모습을 드러내던 제임스 씨를 나는 기억했기에 그저 친해지고 싶다는 의미로 또 한 번 받아들였다.


내 이름은 남자이름이니까! 난 카이 씨 같은 남자가 다시 나타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 했다. 제임스 씨는 친구가 된 내게 사적으로 말을 걸어왔다. 어색한 영어와 함께.


여유가 있었지만 순진함이 다소 남아있었던 나는, '오늘은 무얼 했냐', '혼자 유학 간 거냐. 대단하다'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 아저씨의 속내를 호의라고 생각했다. '난 영어공부 하고 있으니까! 영어로 대화하다가 틀린 게 있으면 알려줘!'라고 어색하게 영어로 말하는 모습에서는 갭 모에가 물씬 묻어났다. 아저씨 페이스북에 올라온 아저씨 사진들은, 아재 그 자체였는데 그런 귀여운 면모도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제임스 씨가 '얼굴도 예쁜데'라는 문구를 채팅창에 삽입하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깨닫고 말았다. 이 아저씨도 내가 여자인 줄 알았다. 남자이름을 엿 바꿔 먹은 게 아님에도, 나는 1년에 한 번씩 이런 사람이 나온다는 사실이 민망하고 수치스러웠다. 


완전히 달라진 나는 이번엔 안절부절 하는 대신 그를 갖고 놀았다. 갖고 놀았다기 보다는 그 어색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아이고ㅎㅎ 그러셨어요' 영어로 힘겹게 그의 대화를 받아들인 나는 대화가 끝난 뒤 조용히 프로필 사진을 업데이트 했다. 그 민망한 대화는 굳이 다시 들여다보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났을까, 오랜만에 제임스 씨의 페이스북을 들어가 봤더니 친구가 끊겨 있었다.


제임스 씨는 잘 살까 궁금해서, 오랜만에 당시의 대화기록을 찾았는데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살아있는 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근황을 알 수 있었다. 야구교실을 한다며 자신을 능력있는 중년으로 소개하던 제임스 씨의 모습이 아른거렸는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의 사업이 번창하길 바란다.



이 두 번의 해프닝은 나로 하여금, 예쁜 여자로서 SNS를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지를 대충 깨닫게 했다. 남자이름도 이 모양인데, 여자 이름에 예쁜 본인 사진을 프로필로 해놓으면 얼마나 많은 대화가 쏟아지려나. 그 횟수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다. 그런 관심을 즐긴다면 SNS처럼 좋은 공간이 없겠지만, 부담스럽다면 SNS를 운영하기 참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요즘도 인스타그램을 보면 'DM 안 봐요', '사적인 메시지 답 안 해요'라고 못 박는 프로필 문구가 자주 보인다. 혹자는 그걸 두고 유난스럽다고 하지만, 나는 그 고충을 맛보기 정도로 겪어봐서 절반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SNS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온라인 세계를 떠도는 남자는 언제나 있다.


아, 나는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여자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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