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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Nov 17. 2017

수능 특집 덕질로 대학 간 이야기 방출

세상의 모든 덕후 수험생들이여 힘을 내요

전무후무 수능 연기 사태에 수 많은 수험생들이 방황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쯤 자유의 몸이 되었어야 하는데 갑자기 일주일을 더 기다리라 하다니. 자연재해엔 답이 없다. 급작스레 우리 땅을 흔들고 간 변수를 그저 원망할 수 밖에. 피해가 빨리 복구 되길 빈다. 다음 주가 되면 모두가 공정한 여건에서 수능을 볼 수 있길 바란다.


'정말 성적 잘 나오는 친구들은 지금 이 시간에 휴대폰 안 본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한 번 깨진 리듬이 쉽게 되돌아오기 힘든 건 공부 못 하던 내가 너무 잘 안다. 풀어졌어야 할 하루를 꽉 조이며 보낸 수험생들이, 머리를 식히며 가볍게 볼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한다. 나 고3 때 이야기다. 내 글이 많은 수험생들에게 한순간의 재미가 되길. 그리고 덕후 수험생들에게는 어떠한 동기가 되길.



내 글을 이전부터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학길에 올랐다. 다양한 경험,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마음의 양식을 한껏 넓히고 있었는데 역으로 성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졌다. 학원에서 벗어나 자유의 맛을 맘껏 즐기다보니 일어난 불상사였다.


물론 이엔 나의 선천적인 게으름도 한몫했다. 한국에서도 특출난 성적을 얻지 못 했었는데, 나라를 바꾼다고 뭐가 달라질까. 밴드도 해보고 특별활동도 겪으며 '외국물'을 먹었지만 본성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내가 꼽는 나의 대표적인 본성은 두 가지다. 바로 게으름과 덕질이다.


타지에 살면서도 남 덕질하는 게 그렇게 좋았단다. 원더걸스 선미로 시작한 나의 덕질은, 그녀의 활동중단으로 잠시 휴지기를 가졌다가 하이킥 한 번에 그 대상을 바꿨다.


이 실루엣은 실제 인물과 관련이 없다. 출처 pixabay

본디 다른 여배우에 관심이 있어 보기 시작한 하이킥인데, 나는 거기 나오는 다른 인물한테 확 가버렸다. 얄미울 땐 얄밉지만 속에는 우주를 담고 있는 천진한 여고생. 굳이 실명은 밝히지 않겠다. '그 분'한테 꽂힌 나는 시트콤 중간부터 '그 분'의 분량에 따라 회차의 흥망여부를 구분했다. 그 분이 속한 그룹의 노래를 하나하나 들어보고 익히며 그 매력에 급속히 빠져들었다.


나는 덕질에 한 번 빠지면 그 대상을 거의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종영 뒤에도 그 분이 속한 아이돌 그룹의 신곡을 꾸준히 따라가며 덕질에 열을 올렸더랬다. "야 그 분 성형했대" "헐 진짜?" "날개 떼는 수술" 따위의 유치한 농담은 그 시기가 최절정이었다. 그 분 그룹 노래 중에 파란 제트기 타고 날아가는 노래가 있는데, 집에서 그 춤 추다가 홈스테이 맘한테 걸리기도 했었다. 나는 웃음이 많지 않은 홈맘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안겨준 것으로 괜스레 민망함을 달랬다.


그러나 당시 덕질과 반대로 내 성적은 내리 하향곡선을 찍었다. 시니어에 돌입하면서 커리큘럼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한 게 결정적이었다. 이전에도 학업을 게을리 하던 내가 그런 어려움을 감당할 리 만무했으며, 그간의 나태함은 결국 B 하나를 뺀 올C라는 참담한 성적표로 보답 받았다. 인생 최악의 성적에 나나 부모님이나 큰 충격에 빠져 한동안 말을 잇지 못 했다. 마침 방학에 짬을 내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간 터라 죄책감이 훨씬 더 했다.


이 죄책감이 결국엔 내 운명을 바꾼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부모님께 좌절감을 다시 안겨드리기 싫다. 이제는 공부를 하자. 나는 이 다짐이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고 자부했으나, 결국 새학기가 시작할 때까지도 끊임없는 의심과 싸워야 했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이 다짐 또한 작심삼일에 그칠 수도 있었다.


새학기를 앞둔 출국 날, 어머니는 내 속내를 간파했는지 '그 분'에 관련된 당근을 던지셨다.


"너 이번 학기 올A 맞으면 그 분 만나게 해줄게."


터무니 없는 당근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내게는 그 말을 믿을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첫째는, 이전에 어머니가 연예계와 관련된 직종에 근무하신 바 있었고, 둘째는 어머니가 자신의 지인이 '그 분'이 광고하는 화장품 회사 직원이라고 귀띔하셨기 때문이었다. 진짜죠? 진짜 A 받으면 그 분 볼 수 있는 거죠? 그 말에 어머니는 A나 받아오라고 껄껄대며 응수하셨다. 그 때부터 나는 미쳤다. 그 분 보자는 문구가 적힌 A4용지를 프린트 해서 책상에 붙여 놓았고, 한 학기 내내 불타올랐다. 그 결과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원래 주어진 과제도 골골대며 반쯤 해오던 열등생이 갑자기 시키지도 않은 과제까지 풀어와 선생님께 채점을 요구했다. 이전 학기까지만 해도, "다른 선생님이 D 주자는 거 내가 C-로 협상했다"며 생색을 내던 선생님이 "You're on fire"를 연신 외치셨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라고. 자신의 기분이 너무 좋다며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내게 용기를 주셨다. 다른 선생님들 또한 내게, 왜 이렇게 달라졌냐, 도울 수 있는 만큼 돕겠다고 말씀하시며 나의 올A 프로젝트에 참가하셨다. 그리고 그 학기에서 나는 A 세 개를 받게 되었다.


어머니, 이건 올A가 아니긴 합니다.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었지만 내가 억지를 부릴 길 또한 없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쇼. 제가 해내 보이겠습니다. 고3에 접어든 시기였다. 그러나 이 때부터 나는 진짜 그 분을 만난다는 생각보다 약속 자체를 즐기고 있었는데, 이는 결국 내게 도움이 되는 약속이니 실제로 못 만난다 하더라도 덕질로 뽕이나 뽑자는 생각에서 비롯 되었다. 어머니가 다시 내거신 조건은, "내가 있는 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 가기"였다. 내가 볼 땐 어머니도 이 상황을 즐기고 계셨다. '그 분'을 팔아 학력을 얻겠다는 모자지간 무언의 다짐과도 같았다.


고3이 되었고, 나는 제일 좋은 대학 입학을 목표로 또 땀내나게 공부했다. 선생님들의 지원도 여전했고, 성적도 나름대로 현상유지는 됐으나, 4월에 접어들자 이 약속도 슬슬 머리에서 잊혀지는 것이었다. 이건 생각할 수록 현실성이 없었다. 이성이 점차 머리를 지배하며 공부도 멀어져갔다.


그런데, 아마 4월말이었을 거다.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는 엑스박스가 있어서 마음대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방과후 도서관에 가겠다고 책은 있는 대로 집어넣고서 정작 축구게임에 열중하는 중이었는데, 그렇게 한창 다른 친구들 플레이를 구경하던 와중 휴대폰이 한 번 울리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을 켠 내가 본 내용은 긴 건 아니었고 사진 한 장이었다.


'To. Love That님♥

공부 열심히 하세요♥

한국 오면 촬영장 놀러와요♥'


멘트와 함께 그 분의 싸인이 박혀있었다.


그 순간 나는 도서관 안에서 발리 조인성처럼 입을 떡 벌리고 새어나오는 소리를 참기 바빴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나는 기쁨을 참았다는 점. 기쁨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광희. 희열. 소름. 뭐 이런 극단적인 단어들 몇십 개가 붙어야 겨우 당시의 기분이 수식 될까말까 한 정도다. 게임기 앞에서 방방 거리며 머리칼을 쥐어뜯는 내게 친구들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사진을 한 장 보여주었다.


와 이건 진짜 미친 거 아니냐? 이렇게 말하는 나를 친구들은 영 한심하게 밖에 바라보지 못 하는 눈빛이었다. 바로 게임현장을 떠나 책상에 책을 펴는 내 모습이 참으로 신기해 보였을 테다. 그 사진에 이어 도착한 어머니의 메시지는, '나는 약속은 지킨다'는 득이양양한 선언이었다. 약속은 더 이상 허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나는 불타오른 이전 해보다 제곱은 더 불타올랐다. 얼음공주로 불리는 그 분의 싸인을 모두 구글링 해보았으나 하트 세 개가 들어간 싸인은 전무했다. 멘트 끝자락마다 붙여준 하트가 얼마나 아련하고 따뜻한가. 그 분은 얼음공주가 아니었다. 필시 이전의 진부한 싸인과는 달리 정성을 담았으리라. 혼자서 그렇게 생각하니 불타오른 몸이 과열되어 터질 지경이었다.


4월에 싸인을 받은 나는, 마지막 시험이 있던 10월까지 2개월에 하나 꼴로 하트를 소비했다. 한국 가면 놀러가야지, 한국 가면 촬영장 놀러가야지... 그 일념 하나로 나는 시험 끝난 직후의 보충수업까지 가고 매일을 도서관에서 책과 함께 보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연중 발매된 그 분 그룹의 신곡 애청은 잊지 않았다. 첫사랑니를 빼는 건 누구에게나 특별한 경험이다. 내게는 하트 세 개가 첫사랑니와 같았다.


그리고 다음해 1월, 나는 지원한 대학에 전부 합격했다.


나는 어머니께 합격통지서를 들고 그 분과의 대면을 요청했고, 어머니는 "아 내 친구 회사 관둠"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나는, 결국 그 분을 보지 못 했다. 그 분 그룹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 단독 콘서트에 참석해, 그 분의 실물을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 영접이었다. 나를 대학 보내주신 분인데 이 정도 지출은 당연하지. 그 생각을 하면 콘서트든 뭐든 돈 나가는 게 아깝지가 않았다. 내 사례는 아마 덕질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용한 사례 중 하나가 아닐까. 그 분은 콘서트장에서도 그랬고, 여전히 얼음공주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4월에 받았던 그 싸인만큼은 나를 얼리지 않고 불태웠다. 그 분이 없었다면 내가 과연 전대학 합격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내 다음 목표는 이거다. 유명해져서 TV에 나와 이 썰 풀기. 그리고 실물과 대면해서 이 썰 풀어주기. 과연 그 분은 내 썰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억도 못 할 가능성이 크겠지만 감사하다는 말은 내가 꼭 대면해서 전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그 분에게 고맙다. 그 분이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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