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온 작은 손
26주 3일, 너무 이른 만남

by 햇살이 머문 시간

그날 새벽,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가 묵직하게 아프고, 피가 비친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급히 새벽 응급실로 향했다.
의사는 초음파를 확인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미 자궁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살리기 어렵습니다.”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숨이 막혔지만, 아직 아기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그 마음 하나로 남편과 함께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

두 번째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이 깊어 있었다.
의사들은 서둘러 진찰을 하더니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기를 낳으면 인큐베이터가 필요한데,
우리 병원에는 신생아 집중치료실이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료진이 곧바로 여러 대형 병원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26주 조산이 임박한 산모입니다. 받을 수 있습니까?”
전화기 너머의 대답은 대부분 같았다.
“여유 인큐베이터가 없습니다.”
몇 번의 거절 끝에야 한 곳에서 “받겠습니다.”라는 답이 들려왔다.
그 순간, 모두가 동시에 움직였다.

나는 곧바로 구급차에 실렸다.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모두 있는,
그나마 엄마와 아기를 함께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이었다.
사이렌 소리가 새벽 하늘을 가르며 울렸다.
창밖의 불빛이 번질 때마다
나는 배를 감싸 쥐고 아이에게 속삭였다.
“조금만 더 버텨. 제발.”
그 짧은 이동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의료진이 곧바로 폐활성제 주사를 준비했다.
“26주는 아직 아기의 폐가 스스로 숨을 쉴 만큼 자라지 않았어요.
엄마가 약을 맞고, 그 약이 아이에게 전달된 후 출산하는 게 더 안전합니다.”
그 설명을 듣는 동안에도 배는 계속 뭉쳤다.
세 번의 주사를 맞고 잠시 안정을 취하기도 전에,
갑자기 진통이 심해지며 의료진이 서둘러 움직였다.
“아이 심박수가 불안합니다. 지금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마취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배 위로 차가운 소독약이 흘러내렸다.
눈부신 수술등 아래에서 들려온 의사의 목소리.
“시작합니다.”
그 말과 함께 배를 가르는 느낌이 생생히 전해졌다.
통증이 몰려왔지만, 울면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26주 3일.
너무 이른 시간에,
1020g의 작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호흡이 약합니다. 바로 집중치료실로 이동합니다!”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나는 아이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아기를 품에 안을 새도 없이 내가 마취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의료진의 손에 안겨 사라졌다.

마취에 깨어난 나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남편은 아기는 먼저 나와 집중치료실로 이동했는데

수술실에서 나오지 않는 나를 걱정하며 안절부절이었다.
짧고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를 끝으로 나는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눈을 떴을 때, 아이는 이미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있었다.
처음 집중치료실로 아기를 보러 갔는데, 팔이 아니라 작은 발에 주사관이 여러 개 연결되어 있었고,
투명한 관을 통해 미세한 약들이 흘러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개방형 인큐베이터 안에 누워 있었다.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서 바로 볼 수 있도록 집중치료실의 정 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작은 몸이 바람이라도 닿을까 봐 의료진은 손끝으로만 조심히 다가갔다.

나는 아이를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었다.
모유를 먹일 수도 없었다.
의사는 말했다.
“산모는 먼저 퇴원하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무너졌다.
아이는 병원에 남고, 나는 혼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산후조리 대신, 나는 면회 시간을 중심으로 하루를 살았다.
매일 정해진 시각, 병원의 집중치료실 면회시간에 맞춰 아이를 보러 갔다.
몸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상처가 아물지 않아 걷기도 힘들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어떻게든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아이는 내 품 대신 인큐베이터 안에서 버티고 있었고, 나는 그 유리벽 앞에서 조용히 기도했다.
“오늘도 잘 버텨줘서 고마워.”

돌아보면 그날의 출산은 두려움과 기적이 함께한 시작이었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찾아왔지만, 그 아이 덕분에 나는 더 단단해졌고,
세상 어떤 고통도 사랑으로 버틸 수 있다는 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