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복도를 따라 걷는 발걸음은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낯선 냄새와 삑삑거리는 기계음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나는 매일 정해진 면회시간을 기다렸다.
그 짧은 한 시간이 내 하루의 전부였다.
손을 소독하고, 마스크와 가운을 입은 뒤
신생아 집중치료실 안으로 들어가면
빛나는 모니터와 투명한 인큐베이터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안에는 너무 작고 조용한 생명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앞줄, 번호표가 붙은 인큐베이터 속에 내 아이가 있었다.
태어난 지 며칠이 지나자 1020g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의료진은 개방형 인큐베이터에서 산소와 온도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박스형 인큐베이터로 옮겨 주었다.
투명한 뚜껑이 닫히는 순간, 나는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제 조금은 괜찮아지겠구나.”
하지만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담당 의사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아기 뇌에 출혈이 조금 있습니다.
아직은 심하지 않지만,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그 한마디에 다리가 풀렸다.
‘출혈’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울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날의 기억은 흐릿하다.
그저 병원 복도 벤치에 앉아 두 손을 꼭 쥐고 기도했던 장면만 선명하다.
“제발, 이 작은 숨이 꺼지지 않게 해주세요.”
며칠 뒤 체중표에 적힌 숫자를 보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450g.
태어날 때의 절반이었다.
의사는 수분이 빠지고 몸이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지만
그 숫자가 너무 작고, 너무 무서웠다.
가느다란 발목에 꽂힌 주사관, 작은 몸에 연결된 산소관.
아이의 온몸이 선처럼 얽혀 있었다.
그런데도 아이의 가슴은 미세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한 번의 움직임이 내게는 기적이었다.
면회시간은 길지 않았다.
매일 정해진 30분, 그 시간 동안만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숨소리 하나라도 더 새겨 넣으려 애썼다.
인큐베이터 뚜껑 위에 손을 올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엄마가 왔어. 오늘도 버텨줘서 고마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길었다.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산후조리 대신 나는 병원 시간을 기준으로 하루를 살았다.
면회가 끝나면 마음이 텅 비었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기도처럼 속삭였다.
“내일도 보자. 꼭 보자.”
그 시절의 나는 늘 불안했지만, 그럼에도 병원에 가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인큐베이터 속 아이는 너무 작았고,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지만
마음만큼은 닿을 거라고 믿었다.
아이의 상태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좋아지고 있었다.
간호사가 말했다.
“오늘은 아기가 조금 더 힘을 냈어요.
산소량이 줄었고, 체온도 안정됐어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아직 손끝조차 만지지 못했지만, 그날따라 아이의 가슴이 조금 더 힘차게 움직였다.
나는 인큐베이터 위에 손을 얹고 말했다.
“잘하고 있어, 우리 아기.
그 한숨, 그 한 번의 숨이 엄마한테는 세상 전부야.”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불안과 사랑이 뒤섞인 시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매일 그곳에 가서 아이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그 시간이 길지 않아도, 그 몇 분의 만남이 내 하루를 지탱했다.
아이는 내 시선을 먹고 자랐고, 나는 그 아이의 숨을 들으며 다시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