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복도에 들어서자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날은 평소보다 햇살이 부드럽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다.
몇 달 동안 익숙해진 기계음 대신
간호사들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아기가 2kg을 넘었어요.
퇴원해도 괜찮습니다.”
의사의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다리던 순간이었지만,
그 말이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정말… 지금 나가도 괜찮을까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체중도 안정됐고, 스스로 호흡도 잘합니다.
이제 집에서도 돌볼 수 있어요.”
하지만 마음은 쉽게 따라가지 않았다.
아직 손바닥만 한 아이를 집으로 데려간다는 게 두려웠다.
남편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조금만 더 병원에 있으면 안 될까요?
혹시라도 집에서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면…”
우리는 의료진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2kg에서 2.2kg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조금 늘었다가 다시 줄기도 했고,
체온이나 호흡이 불안정해져 다시 장치가 연결되기도 했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조금만 더’라는 말의 무게를 매일 새롭게 배웠다.
아이는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이름을 가졌다.
의료보험 등록을 위해 서둘러 출생신고를 했다.
그 이름을 적어 내려가던 순간,
아직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이가
진짜로 세상 안에 존재한다는 게 실감났다.
이름은 작았지만, 그 이름은 우리 가족의 희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태어난 지 98일째 되는 날 —
병원에서 퇴원을 허락했다.
그날은 아이의 백일을 이틀 앞 둔 날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가슴 깊은 곳이 뜨거워졌다.
“이 아이가 거의 백일을 채워서 집으로 온다니…”
그건 단순한 퇴원이 아니라,
기적의 완성이었다.
그동안 출산 준비는커녕
기저귀 한 팩, 젖병 하나조차 없었다.
너무 일찍 태어난 탓에
“아기 맞이”는 미뤄진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퇴원 통보를 받은 날,
나는 남편과 함께 아기용품 가게로 향했다.
아기침대, 기저귀, 젖병, 손수건, 카시트…
그 작은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담을 때마다
마음이 울컥했다.
“이제 정말 집으로 오는구나.”
그날의 쇼핑은 단순한 준비가 아니라,
‘엄마로서의 현실’을 처음 맞이한 시간이었다.
퇴원하는 날,
나는 직접 준비한 아기 옷을 챙겨 병원으로 갔다.
작고 부드러운 내의,
손톱보다 작은 양말 한 켤레,
그리고 속싸개와 겉싸개.
인큐베이터 앞에서 간호사가 조심스레 말했다.
“이제 엄마가 입혀 주세요.”
손끝이 떨렸다.
그동안 의료진의 손을 통해서만 움직이던 아이를
내 손으로 처음 만지는 순간이었다.
팔을 살짝 들어 옷소매를 통과시키고,
싸개의 끈을 묶어 나갔다.
그 끈 하나하나마다
내가 견뎌온 시간이 스며 있는 것 같았다.
작은 몸에 새 옷이 입혀지고,
손목띠에는 그 이름이 적혀 있었다.
환자로만 불리던 아이가
이제 이름으로, 가족으로 세상에 나왔다.
병원을 나서며
햇살이 얼굴에 닿았다.
그 빛은 처음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다.
98일 만에 처음 느낀 ‘자유로운 공기’.
차 안에서 아기를 안고 집으로 향하며
나는 천천히 속삭였다.
“우리 집으로 가자,
이제 정말 가족이 시작되는 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