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태풍 속으로 여행 - 군산 / 부안 / 고창 / 전주
... 전편에 이어
사실, 어차피 남자 둘이 묵는 숙소... 아무 곳에서 등만 붙이고 눈만 감고 자도 되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사실 조금 특색 있는 숙소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왜 특히 남자 둘이 여행가면 좀 그렇잖아요? 굳이 트윈 베드까지는 투머치인데 그렇다고 더블 베드는 허락할 수 없는...
비바람이 치는 자정에 이르러 도착한 이 곳은 상당히 특색 있는 곳이었는데요
특히 정문에 붙어있는 현수막의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뭔가 오랜 시간 버텨온 자존심과 꼬장꼬장함이 느껴진달까...
호텔항도는 아늑한 "가족호텔"입니다.
호텔항도는 "대실"이 없습니다.
호텔항도는 "착한가격"으로 손님을 모십니다.
호텔항도는 "황토사우나"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하루 종일 일을 마치고 태풍을 뚫고 (사실, 내려오는 내내 제 친구는 운전하느라, 저는 일 관련해서 사고가 터져서 수습하느라 계속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늦은 밤에 도착하니 너무 피곤하기도 해서 간단히 편의점에서 맥주 한캔씩 마시고 잠든 것 같아요.
원래는 일찍 도착한다면 오래된 항구 근처 횟집에서 밴댕이회에 소주라도 한잔 해볼까 생각했었는데...
<중앙시장에는 반지회(밴댕이회)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했고, 여전히 태풍의 여파로 비바람이 거셌지만, 그래도 날이 밝았으니 바깥 구경도 할 겸, 찌뿌둥한 몸을 좀 노곤노곤 풀어보려 목욕도 할 겸 (투숙객 대상 사우나 무료!!!)
부스스 밖으로 나왔는데...
어렸을 때 가봤던 대중탕의 모습 그대로더라고요. 출입문에서 주인 어르신께 'XXX호입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무심한듯 덤덤히 "네~"하고 따로 확인도 안하고 들여보내주시던데...
사실 처음 뵙는 분이었는데 그냥 믿고 들여보내주신 것 같아요.
내리는 빗방울, 사람들의 정, 보여지는 낡지만 익숙함.
이 모든 게 소소하지만 하나하나가 놀랍고 정겹고..
그런데 여행이라는 게 그런 것 하나하나가 다 작은 감동이고 감사함이고 그러더라고요.
참 많이 찌들어 있었구나 싶고.
상쾌하게 목욕을 하고 나와서 잠깐 비를 맞으면서 동네를 한바퀴 산책했는데. 조용한 동네의 하루를 일찍 시작하시는 환경미화원 분들과 아침 잠에서 깨어 마실 나오신 동네 어르신들, 그리고 밤 늦게까지 한잔 하고 이제야 들어가는 젊은 친구들도 볼 수 있었네요.
날이 밝아서 본 군산의 구도심도 공동화 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제가 있는 듯 했고, 빈 집, 임대 나온 낡은 건물들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도시의 에너지레벨이 높은 편은 아니었고요. 다만 그래도 젊은 사업가 분들이 차린 중간중간 색다른 컨셉의 음식점과 주점, 카페 등이 모여 있었고, 시에서도 나름대로 도시 재생과 테마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로 등의 인프라도 비교적 깔끔하게 다시 정리했고요.
다만, 이미 앞선 길을 걷고 있는 전주 등과 비교해서 도시의 특색이 뚜렷하게 살아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모든 도시 재생을 고민하는 도시의 공통점일거라고 봐요. 각각의 도시의 특색과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의 일방적 노력으로만 되는 건 아니겠죠.
무조건 트렌디한 한 철 식-도-락으로만 뒤덮이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실 조금만 더 걷다 보니 이 곳이 군산에서도 꽤 유명한 곳이더라고요.
사진을 꽤 많이 찍어뒀는데, 이상한 일인지 많은 사진이 사라졌네요.
다음에는 군산을 떠나 부안을 지나 본격적인 태풍의 빠워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단순한 기행기로 봐주시면 더 좋지만, 기행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돌아다닌 곳도 적고 볼거리에 대한 소개도 적죠. 그냥 제 개인적인 감상과 소견, 그리고 어떠한 사회 문화적 이슈까지 담아내서 적어보고 싶은 걸로 이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