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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Jul 18. 2020

부부끼리 이러는 거 아냐

忍 忍 忍

자고로 부부끼리 뭔가를 가르쳐 주다가는 사달이 난다.


이 년 전쯤 남편이 “이제 너도 골프를 슬슬 배워야 나이 들어서 나랑 같이 필드도 나가고 재미있게 놀지” 하길래 부담 없이 연습장 가서 6개월 정도 레슨도 하고 열심히 연습했다.

그러다 이 일 저 일 생기다 보니 자연스레 안 하게 되고 손 놓고 있다가 올해 들어 다시 시작했다.

남편은 이제 더 나이 들면 머리도 안 돌아가고 몸도 안 돌아가서 영영 못하게 될 거라는 것과 부부가 공통된 취미가 있어야 나이 들어 즐겁게 지낸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사실 나는 세상의 모든 공과 그리 친하지 않다.

초등학교 때 피구를 극도로 무서워해 체육 시간이 있는 날이면 먼저 조퇴를 했고 중, 고등학교 때도 체육 시간에 배구나 발야구 등을 하면 그날이라 하고 빠지기 일수였다. 공 공포증이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난 믿는다.


그런데 결혼 후 일만 열심히 하던 남편이 어느 날 골프를 배우면서 즐거워하고 골프 이야기를 할 때면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게 아닌가. 뭔가에 집중하는 모습도 일 이외에 오랜만이고, 코치에게 레슨 받을 때 생소한 골프 용어에 답답하자 골프 용어는 모조리 다 외워버리는 열정이 멋있었다. 그래서 나도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 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공을 바라보며 운동을 한다는 것이 다른 구기종목보다 덜 공포감을 주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공에 맞을까 봐 겁이 났었던 듯...


하지만 역시 나는 몸치.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내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올해 다시 시작한걸 몹시 후회 중이다.

그냥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나이나 들어 버릴 것을 이제는 골프레슨도 잘하는 남편에게(여럿 친구들을 이 세계에 발 내딛게 도움) 덜컥 다시 배우겠다고 했으니 빼박이다.


함께 일을 해서 사무실에서 틈틈이 배운 스윙 동작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스크린골프장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 온몸에 땀이 삐질삐질, 안 그래도 경직된 팔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고 허리는 안 돌아가고 백스윙 탑은 요동치고 발사각은 안 나오고 뒤땅에...

엉망진창이다.

나도 갖고싶다. 남편의 저 스코어 ㅜㅜ


남편은 처음엔 인자한 시어머니처럼 우아하게 잔소리를 하다가 9홀쯤 되면 점점 말이 없어진다. 그러나 눈빛에서 알 수 있다. 내가 심각하게 잘 못 친다는 걸.

아예 오래된 친구사이면 자존심이고 뭐고 막 욕하고 생떼도 부리고 재미있게 놀면서 배우고 같이 게임처럼 골프도 할 텐데. 왜 남편 앞에서는 더 주눅 들고 더 긴장하고 더 눈치 보일까? 나이가 일곱 살 차이 나서? 괜한 자격지심 때문에?

원인은 나도 잘 모르겠다.


힘 빼라고 하는데 더 힘드는 건 참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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