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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 Oct 17. 2019

금지된 책

엄마가 감추었던 책 한 권

1999년 겨울,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엄마는

 책을 홱 닫아 서랍 속에 감추었다.

눈처럼 새하얀 표지의 책.

살짝 당황하는 기색에 더 궁금해졌다.     


“엄마 그거 뭐야?”


“아냐. 아무것도”     


엄마가 나간 후 서랍을 열어보니

그건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이었다.     

‘무. 소. 유’     


흥미로운 게 눈곱만큼도 없는 그냥 .

실망한 나는 돈이라도 껴있는지 털어보다

다시 서랍 속에 툭 던져 놓았다.      

     



엄마와 성북동 '길상사'에 왔다.

청초하고 맑은 공기에 풍경 소리,

새소리, 목탁 소리가 섞여있다.     

영험한 기운에 취했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산 바위에 목석 같이 앉아 있다.

이 곳은 원래 '대원각'이라는 최고급 요정이었다.

요정 주인인 '김영한'이 법정스님의 ‘무소유’ 글에

감명받아 건물 40채, 대지 2만 3140㎡,

당시 천억 원 상당의 대원각을 부처님께 시주한다.

그 여인의 초연한 삶이 향기롭게 녹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흰 눈이 푹푹 나린다'라는

좋아하는 글귀의 시도 연상되고! 난 이 곳이 참 좋다.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속 '자야'가

바로 '김영한'이다.)

  


거대한 정원 같은 절을 한 바퀴 둘러보다

법정스님이 잠들어계시는 곳까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올라온다. 우리는 진영각 툇마루에 앉아 법정스님에게 마음의 인사를 건넨다.

눈 앞의 주홍 능소화들이 여기 앉은 이들이 쏟아내는 구구절절한 사연들에 제 귀를 활짝 열어준다.

물 오른 능소화 향이 이렇게 고혹적이었나. 

세상에.. 늦여름이라는 조향사는 장인이다. 

나는 능소화가 내쉰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문득 그때가 떠올라 엄마에게 묻는다.     


“그때, 그때 말이야. 내가 중 2 때였나...

 엄마 법정스님의 무소유 책 읽고 있었지?”      


“무소유? 있었지. 왜?”     


그 책 보다가 나한테 감췄어?”     


그녀가 툇마루 바닥을 어루만지며

강인 어조로 담담하게 말한다.     


"네가 읽을까 봐"


"왜? 정말 좋은 책이잖아..."


“무소유라니. 소유해야지! 넌 가져야지.

  같이 살면 안 되니까.”     


?”     


"꿈도 갖고 돈도 갖고 집도 갖고 해야지.

 한창 자랄 어린애가 저 책 휘뚜루 보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겠다면 어쩐다니...

 큰일 나겠다 싶더라고.

 자라나는 들이 무소유 잘못 알면 우리나라 망해~"


그녀는 이 정도면 되었다는 듯 내려갈 채비를 한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은‘케바케 (case by case) ’였나.

인생의 깨달음도 타이밍이 있던가.


엄마는 '나'라는 존재를 소유하지도 않았으면서

나로 인한 근심을 떠안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책 속의 법정스님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난초가 걱정되어 가던 길을 급히 되돌아온다. 

소유의 집착이 괴로움으로 온다는 것을 안 스님은

난초를 친구에게 줘버리고서야 홀가분해진다.


그녀는 내가 잡초같이 강하게 커주길 바라면서

난초를 돌보는 마음으로 나를 대한다.


 하루아이러니한 그녀의 마음을 이해해간다.

내 손이 옆에 놓인 낡은 의자 쓰다듬는다.

생전에 직접 만들고 여기 앉아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했다던 법정스님의 나무 의자가

정말 간소하고 소박하다.


엄마와 나는 능소화 길을 토끼처럼 내려와

대웅전으로 향한다.       

우린 합격 기원, 사업 번창, 건강이라고 쓴 초를 놓고

몸을 작게  머리를 조아리고 두 손을 비우며

부처님께 절을 올린다.      

무언가 하나를 더 소유하기 위해.     

법정스님의 진리를

미천한 중생은 여전히 알 길이 없다.

... 마음이 푹푹 나린다.



- 길상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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