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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 Oct 16. 2019

전화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할미텔레콤

" 예... 아... 아하~~ 음.. 껄껄 "


할머니가 거실 쇼파에서 누군가와 다정하게

통화를 나눈다.   

존대를 하는 거 보니 모르는 사람인데 짧지 않은 통화에 호기심이 생겨 할머니 효도폰의 스피커 버튼을 눌러본다.

  

" 아 어머님 저희 어머님도 유방암에 걸리셨는데 3기셨거든요. 수술 다 보장받았어요."

" 아이고. 저런.."

" 아버님도 작년에 갑상선 암 판정받고 수술부터 완치까지 보험에서 전액 보장해주었고요 "

" 저런... 저런.."


들어보니 보험 권유 전화다. 전화 속의 '딱한 여자'는 지금 보험을 들이밀기 직전

공감대를 쌓아 친밀도를 높이는 중이다.   

할머니는 방청객처럼 '아, 오, 음, 저런, 아이고' 같은 리액션을 하며 전화를 듣고 있다.

갑자기 여자가 속사포로 말을 건다.   


 " 우리 어머님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과거 수술이나 질병 이력 있으세요?

이번에 '노후 실손보험' 상품이 좋은 게 나왔는데 이게 75세 이전에 빨리 가입하셔야 해요.

그 이후에는 아예 가입을 못해요. 월 납입 금액은 질병 이력 넣어봐야 아는데

딱 10년만 납입하면 당연히 100세까지 보장되고요."

 

" 구십사요! "


할머니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두 눈을 반짝이며

대답을 한다.

갑자기 전화기 너머의 여자가 잠잠하다.


" 아.. 우리 어머님이... 정말 할머님이시구나. 아... 할머님! 그럼 아드님은 있으시죠? "  


"예~~ 몇째 아들? "


"어.. 그 치아보험... 음.. 아니~ 할머님 지금 누구랑 사세요? "


할머니가 잘 받아주니 꽤 긴 시간을 공들인 것 같은데..

이 분 멘탈이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내가 하도 어이가 없어 스피커폰에 대고 잘못 거셨다고 외치며 끊어버렸다.

아니 할머니는 뭐 이런 전화를 그리 오래 받냐 이런 전화는 대출이나 보험 가입하라는 광고 전화니

모르는 전화는 받지 말아라. 마치 보이스피싱이라도 당했던 사람의 어투로 나무라자  

자기도 다 안다며 그냥 심심해서 받았다고 하신다.


"얘네들 가끔 이 시간대에 전화와~~ 껄껄"


할머니의 목소리가 60대처럼 카랑카랑하다.

그나저나 가끔... 이 시간대라니... 고단수다!

앞으로 할머니에게 밖에서도 틈틈이 전화를 해드려야겠다.


다음날

"할미 ~~~~~뭐해? "
"응. 앉았지. 왜? "
"아니~~ 그냥. 노인정 아직 안 갔네?"

"응. 올 때 두부랑 알배기 좀 사 와. "

"응~"


다다음날

"할미~~~ 뭐해? "

"응. 앉았지~~ 안 바빠? "

"에휴.. 바쁘지~~ 이따가 금방 올라갈게 "

"응. 올 때 갈치 있으면 갈치 좀 사 와 "

"... 갈치? "


'아.. 갈치가 어딨더라...'

갑자기 책상에서 펜을 찾으며 서류를 뒤적거려본다.

뭔가 할머니의 요구가 더 많아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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