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빨강을 버무린다.
그것은 작고 단단한 양갱이 되었다
양갱 아래에서 핏빛 꽃 잎 한 장이 툭 하고 떨어진다.
떨어지는 꽃 잎을 주워 양갱 속으로 다져 넣더니
그 포를 48장이나 뜬다.
포는 무릎 사이에서 삐득삐득 말려진다.
풍자 할미가 훈수를 두자
할머니가 얼른 패를 젖혀 한 놈씩 얼굴을 본다.
아이고 유월아 오냐 구월아
니 놈은 어느 해의 유월이냐
향기 없는 모란에 나비 둘이 뭐한다냐
작고 자글자글한 손안에 수십 장의 열두 달이 겹쳐진다.
바닥에 새 한 마리 휙 하고 자빠진다.
할머니는 꽁지를 냅다 잡아
철컥철컥 장을 닫는데
성질난 풍자가 또 훈수를 둔다.
썩을 년.
할머니는 재빨리 십이월을 버리고 삼월을 데려온다.
지화자 좋다!
내 이름이 화자다!
낮에도 할머니는 빨강을 버무렸다.
시퍼런 날배추와 무를 염장해 대야에 썰어 넣고
맵고 삭힌 열두 달을 믹서에 갈기갈기 갈아
고무 대야에 쏟아부었다.
시뻘겋게 고달팠던 배춧잎의 등을 손으로 투덕이며
잘 익은 봄에 보자 했다.
만개한 빨간 꽃을.
올해도 어김없이 화자는 봄을 기다린다.
철컥.철컥.
철럭.철럭.
그러더니 잠잠하다.
그녀의 꼬부라진 등에 누가 업혀있다.
담요에 앉아 그림자를 업고 꾸먹꾸먹 조는.
초겨울 바람이 창문을 쥐고 흔드는 게 참 고약한.
화자와 풍자.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시든 꽃 하나가 툭 떨어진다.
화들짝 눈꺼풀을 제껴
풍자의 화투장을 서둘러 세어보다
잘린 열두 달을 휙 쓸어 모은다.
"어이쿠. 나가리. 나가리~"
할머니는 혼자 빨강을 버무린다.
+
밤일낮장 : (화투 놀이에서, 선을 정할 때에 패를 각각 떼어서 밤에는 그 끗수가 낮은 사람, 낮에는 높은 사람으로 정하는 방법). 밤일과 낮일이 정해져 있다는 것. 인생에서는 밤에 해야 할 일과 낮에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으므로, 모든 일은 때에 맞춰해야 함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