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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댄서 May 31. 2021

종로 5가에서 탈모약과 깨달음을 처받받다!

[1일 1 S.O.M.E.] 10년간 외면해오던 탈모에 당당하게 맞서다

1.


내가 멋진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내 심장은 소심하게 콩딱콩닥 두근거립니다. 처음해 보는 일을 하러 가는 길이거든요. 어떤 대단한 일이냐고요? 탈모약 처방 받으러 병원으로 가고 있어요. 그리고, 집 근처 익숙한 병원이 아니라, 종로 5가 낯선 병원에 가고 있어서 심장이 더 쫄깃해져 있고요.


나는 유전 탈모입니다. 그래서, 이미 20대 후반부터 탈모가 시작되었어요.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제대로된 치료를 하지 않았어요. 즉, 탈모약을 먹으면 되는데 이런 저런 핑계를 만들어서 회피하고 있거든요. 


왜 그랬을까요? 아마 나는 탈모라는 내 콤플렉스를 드러내기 두려웠나 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보면 이미 탈모라는 것을 아는데, 나는 모르는 척 감추려 했어요.


그런데, 지난번 제주에 가서 찍은 사진 한 장에 나는 충격을 받았어요. 바로 이 사진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찍었는데 정수리 부분이 휑하니 비어 있었어요. 솔직히 나는 내 정수리를 본 적이 없습니다. 당연하죠. 거울로 보면 앞머리만 보이니까요. 앞머리도 탈모는 진행되고 있지만, 머리 손질로 일부는 커버가 되잖아요. 그런데, 정수리는 커버할 수가 없으니 사진에 휑하니 나와요. 흑 흑 흑...



2.


병원은 종로 5가 큰 길가에 있는 건물 3층입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 버트을 누르는 내 손이 살짝 흔들렸어요. '내가 굳이 여기까지 와서 탈모약 처방받아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나, 난 왼손으로 오른손을 찰삭 때렸어요. 그제서야 오른손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꾸욱 눌렀습니다.


으악... 병원 오후 진료가 2시부터이고 지금 시간은 2시 5분인데 이미 병원 대기실은 만원이었어요. 두리번거리다가 데스크에서 '초진' 종이에 이름을 써서 접수했습니다. 그러자, 간호사 분이 당연한 질문이지만 묻는다는 표정으로 "탈모 때문에 오셨지요?"라고 말했어요. 난 "네~"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대기실 빈자리를 찾아 어정쩡한 자세로 앉았습니다.


대기실을 둘러보니 손님 대부분이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어요. 놀라운 일이었어요. 탈모약 처방이니까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40대 이상이 많을 줄 알았거든요. 아~ 요즘 젊은 친구들은 M자 탈모가 시작되는 초기부터 탈모관리를 하는구나... 맞아요. 머리카락이 하나라도 많을 때 치료를 시작해야 그 수준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의사 선생님 진료는 3분만에 끝났습니다. 내 정수리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이 사진 지우지 말고 나둬요. 5개월후에 비교해볼 테니까.' 5개월 후에 꼭 머리카락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병원을 나와서 약국에서 약을 받고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가방 속에 든 5개월치 약이 무척 든든했어요. 하루에 한 알만 먹으면 머리카락이 많아진다니 너무 기분이 좋아요. 음하하하하.


그런데, 마음 한 편에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렇게 간단한 탈모약 먹기를 왜 미루어왔을까?


이유는 두가지인 것 같아요. 첫째, 내 탈모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그냥 머리 숱이 부족한 정도로 위안을 삼으려고 했나봐요. 둘째, 탈모약 부작용인 그거를 두려워했어요. 그 부작용 자체를 두려워한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볼까 셀프 소심해진거였어요.




3.


오늘은 왠지 어설픈 교훈을 쓰고 싶어집니다. 탈모약 처방 이야기를 통한 교훈이라고나 할까. 나는 탈모라는 문제를 알면서도 무려 10년간 그냥 놔뒀어요. 아직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나 자신을 세뇌시키며 말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탈모약 먹는 나'를 어떻게 볼까에만 신경썼어요. 다른 사람들이 내 탈모에 1만큼이라도 관심이 있겠어요?


나처럼 이렇게 문제를 알면서도 그냥 놔두면, 이상하게 내 삶 전체가 권태롭게 변해요. 이상하죠? 문제를 알아채는 순간, 뭔가 해야해요. 그래야, 권태와 루즈함에 빠지는 나에게 에너지 뿜뿜할 수 있거든요.


- 문제를 알면서도 그냥 놔두면 해결되지 않느다.
- 하루 1%씩 악화되어 불어터진 짜장면이 되고 만다.
- 결국, 그 1%가 쌓여 내 삶 전체를 좀비처럼 만든다.


이제 10년재 묵혀왔던 탈모 이슈는 해결했어요. 그러면, 내가 외면하고 있는 문제는 또 무엇이 있을까요? 음.... 다이어트, 세컨드 커리어, 회사 일 잘하기 프로젝트...


생각만 해도 모른척하고 얼굴을 돌리고 싶어요. 그렇지만, 회피하지 않으렵니다. 그래서, 주 2회 화요일/목요일에 '진실의 순간'을 10분씩 하려고요. 그리고, 짝수달 30일에 체크해 보렵니다. 이제 도망가지 않고 웃으면 당당하게 맞서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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