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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댄서 Aug 23. 2023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은다면... (2)

[점심을 먹으며 뻔뻔함을 충전합니다.] "너 T야?"

1.


내가 한가지 인간관계 테스트를 했다고 했잖아. 그 테스트는 모든 지인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는 거였어. 결가는 처참했어. 한달 반동안 1명 빼놓고 아무도 연락 안 하라고. 예상은 했지만, 너무 충격적이있어. ㅜㅜ


그래서,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 1명에게 만나자고 했어. 그 얘기를 오늘 해볼께.



2.


그 친구와 두 달 만에 만났어. 어색했어. 어색한 이유는 간단해. 내 마음에 그 친구에 대한 서운함이 깊게 물들어 있었으니까. 그 친구도 그것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런 저런 얘기를 했어. 자기 회사 돌아가는 얘기, 하트시그널 얘기, 키우는 강아지 얘기... 모든 대화 소재가 서로의 감정이 하나로 실리지 않은 그냥 남의 얘기였어. 뭔가 어색한 공기가 흐르른다는 것을 알지만, 누구도 그 어색함의 원인을 얘기하려 하지 않았지.


그렇게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헤어졌어. 각자 자기가 타야하는 지하철로 갔지. 그는 1호선, 나는 3호선.. 그렇게 엇갈린 길을 갔어.


나 홀로 3호선으로 가면서 생각했지. 이 친구를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라고.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 내 서운함은 입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내 마음 속에서 단단한 돌이 되어 버렸어.


그 친구는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느꼈을까? 느꼈을 리가 없지. 사람 관계는 말하지 않으면 모르거든. 그것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정말 몰라.




3.


그 친구를 만난 다음 날, 생각해봤어. 지금 내가 하는 생각과 느낌을 그 친구에게 얘기해줄까, 말까... 얘기해줘봐야 바뀔 것은 하나도 없는데, 이런 얘기하면 나만 쪽팔리잖아. 쪽팔리기는 싫단 말이지. ㅋㅋㅋ

 

그런데, 한번 얘기해 보기로 마음을 정했어. 그래서, 카톡으로 이렇게 말했지. (이런 얘기 카톡으로 하지 말라고 유튜브 연애 채널에서 그렇게 많이 강조하던데 ㅋㅋㅋ)


있잖아. 한가지 엉뚱한 얘기할 게 있어.
뭐냐 하면, 7월부터 한가지 테스트를 했어. 모든 지인들에게 선톡을 하지 않기로 했어.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거든.
그런데, 정말 아무도 연락 안하드라. ㅋㅋㅋ


아마도 내가 쓸모없고 매력이 없는 것 같아.
너에게도 나는 쓸모없고 매력 없는 사람이 된 것 같고.. 그렇게 나는 fade-out 되고 있는 것 같아.
인생이 그런거잖아. ㅎㅎㅎ


그러자, 그는 대답했어.


이번 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비도 많이 오고 지리했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조용하게 보낸 것 같습니다.

 

헉.. .이런 놀랄만한 대답이 돌아올 줄은 정말 정말 몰랐어. 좋은 쪽의 놀랄만한 대답이 아니라, 황당한 방향으로 놀랄만하잖아.


   첫째, 경어체 사용


평소에 말하던 대로 말하지 않고, 경어체를 사용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나 기분 나뻐. 왜 이런 얘기를 나한테 하니?'라는 의미잖아. 역시 이번 인간관계 테스트 결과는 정확한거 같아.


   둘째, 너 T야?


저 대답은 MBTI의 완전 T 유형의 모범 답안이잖아. 우선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잖아. 보통은 '내가 이번 여름에 덥고 비도 많이 오고 해서 지쳐 있었어.'처럼 '나'를 주어로 할텐데 T답게 3인칭인 '모든 사람'이라고 표현을 하네.


나, 완전히 서운하고 쪽팔렸어. 굳이 이 얘기를 왜 했나 싶더라고. 이런 말 안해도 이미 팩폭을 당한 상태인데 말이야.




4.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조금 친한 사이라면 이렇게 지 않을까?


"그런 기분이었구나 ㅠㅠㅠ"


조금 더 친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할 것 같아.


"그런 기분이었구나 ㅠㅠㅠ
내가 좀더 자주 연락하고 그랬어야 했는데.
너무 서운해하지마."


여하튼, 인간관계 테스트 결과처럼, 나는 조금씩 fade-out 되어가고 있어. 솔직히 말하면, 내가 fade-out되기로 결심했다라고 말하는 게 맞겠지만... ^^  


오늘도 "원래 인생은 그런거야." 라는 1도 도움 안되는 말로 나 자신을 토닥토고 있어.


역시 세상은 뻔뻔해져야해. 뻔뻔하게 말 할 때 진실은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라는 것을 알았어.


나 참 서운하고 속상해요..

하지만 서운함 때문에 사람 마음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받아들여야죠 ㅜㅜㅜ


[참고] 1편

https://brunch.co.kr/@lovewant/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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