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부터 내 wish list 0순위는 서순라길이었다. MZ들에게 그렇게 야장 맛집으로 핫하다고 하고 사진으로 봐도 갬성이 너무 좋아서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5월에 두번이나 실패했다. 5월에는 너무 날씨가 좋아 오픈런을 해도 웨이팅을 해야했다. 혼자 웨이팅을 하기에는 뻘쭘해서 두번이나 발길을 돌려야 했다.
두 번이나 실패한 그 서순라길 방문을 드디어 성공했다. 그것도, 가장 핫한 바로 그곳, <비틀스 타코>에 갔다왔다
물론 웨이팅을 했다. 얼마나 했냐고? 3시간... 4시 15분에 웨이팅 등록하고, 7시 30분에 자리에 앉았다. 우와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노오란 가로등불이 비치는 궁궐 돌담을 바라보며 맥주와 타코를 먹어 보니, 3시간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 우하하하하!!! 너무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은 수준이 아니라, 인생이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같이 간 A가 물었다.
"이제 첫사랑의 행복을 빌어주면 안되나요?"
2.
A가 첫사랑 질문을 한 이유는 이러하다.
서순라길에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17분이었고, 비틀스 타코에 웨이팅을 등록했다. 우리 대기순서는 113번... 여기가 4시 오픈인다. 즉, 오픈하고 17분 사이에 112팀이 웨이팅하고 갔다는 거다. 우와.. 정말 핫플 인정!!!
웨이팅을 하고 근처 맥주집에 갔다. 그곳은 아트몬스터라는 수제맥주집인데, 맥주 이름이 특이했다. 넘사벽, 청담동 며느리, 첫사랑의 향기, 금사빠 등
A와 B는 청담동 며느리와 넘사벽을 주문했고, 나는 '첫사랑의 향기'를 주문했다. 그러자, A가 뜬금없이 질문했다.
"첫사랑이 언제였어요?"
첫사랑? 고1 때인가, 고 2 때인가? 30년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첫사랑은 내 찌질함 때문에 실패했다고 말하자, A는 '그 사람은 지금 잘 살겠죠?'라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난 아직도 그 사람이 불행하기를 바래요. 단 한 순간도 그 사람의 행복을 기원한 적이 없어요."
A와 B는 깜짝 놀라며, 이제는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절대 불가'라고 말했다. ㅋㅋㅋ. 내가 그 사람 행복을 빌어줄 이유는 1도 없으니까.
그 때 창밖에 소나기가 주르르륵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가 오면 비틀스 타고는 야장인데 어떻게 가나 싶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웨이팅 순서는 오지 않고 아직도 95팀이 앞에 있었다.
나는 맥주 한잔을 더 주문했다. 이번에는 '금사빠'... 금사빠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솔로 20기> 영호의 인사말이 생각난다.
"저는 금사빠지만 금사식은 아닙니다."
나도 영호처럼 금사빠이면서 금사식은 아니지만, 영호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는 한가지가 있다.
'날티!!!'
어쩌면 그 날티를 내 영혼에 담아보려고, 여기 서순러길 와서 3시간 웨이팅을 하고 있을지모 모른다.
드디어, 웨이팅 알람이 왔다.
"매장 앞으로 이동해서 기다려 주세요."
3.
"아~~~ 이 느낌이구나!!!"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낮과 밤에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었고, 그 사이에 가로등불이 노란빛으로 비춰주면서 종묘 담벼락이 따스하고도 정감 있고 도시가 아닌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여기에서는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인생 사진이 나왔다. 그 흐릿한 조명과 여름밤의 운치, 그것모두가 사진에 스며 들었다.
거기다가 타코가 맛있었다. 여기 타코는 약간 매콤한 맛이었다. 멕시코의 오리지널맛이 어떠한지는 모른다. 그러나,한국에서도 매콤한 타코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코로나를 먹으면서 가만히 있는 너무 행복했다
그때 A가 다시 물었던 것이다.
"이제 첫사랑의 행복을 빌어주면 안되나요?"
그래, 오늘 기분이다. 이제 그 사람의 불행을 기원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러나, 행복을 빌어주지는 절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힙하고 멋진 공간에 왔는데, 내가 그 정도 너그러움은 보여줄 수 있지. ㅎㅎㅎ.
4.
타코 한 입과 맥주 한 모금이 이렇게 행복한 적은 없었다. 이 행복한 느낌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내일이면 또다시 현실에 시달릴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순간의 서순라길 행복으로 내 몸에 달라붙은 분노와 증오를 툭툭 털어낼 수 있다. 지금은 기억도 희미해서 생각도 안나는 첫사랑의 불행을 기원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ㅋㅋㅋ
이래서 핫플에 와야 하나보다. 핫플은 뭔가 엣지가 있다. 여기처럼 말이다. 그 엣지 있는 아름다움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나 보다.
여기는 혼자 올 수 없는 곳이었는데, 같이 와 준 A와 B에게 고맙다. 내가 뻔뻔하게 용기를 낼 수 있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