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평 돼지비계'를 새우젓에 찍으면서

[갑자기 떠오른 시] 장마철, 인부들의 걱정을 생각하며

장마


신경림


온 집안에 퀴퀴한 돼지 비린내

사무실패들이 이장집 사랑방에서

중돋을 잡아 날궂이를 벌인 덕에

우리들 한산 인부는 헛간에 죽치고

개평 돼지비계를 새우젓에 찍는다

끗발나던 금광시절 요릿집 얘기 끝에

음담패설로 신바람이 나더라도

벌써 예니레째 비가 쏟아져

담배도 전표도 바닥난 주머니

작업복과 뼛속까지 스미는 곰팡내

술이 얼근히 오르면 가마니짝 위에서

국수내기 나이롱뻥을 치고는

비닐우산으로 머리를 가리고

텅 빈 공사장엘 올라가본다

물 구경 나온 아낙네들은 우릴 피해

녹슨 트랙터 뒤에 가 숨고

그 유월에 아들을 잃은 밥집 할머니가

넋을 잃고 앉아 비를 맞는 장마철

서형은 바람기 있는 여편네 걱정을 하고

박서방은 끝내 못 사준 딸년의

살이 비지는 그 양말 타령을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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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 다가오는 상황, 비계와 살이 섞인 머리고기를 순대국집에서 먹으며 이 시가 떠올랐다.

돼지를 잡은 날에도 인부들은 비계를 겨우 얻어먹고, 장마철이라 일을 공친 이들은 걱정이 한가득이다.

한가득의 걱정. 그래도 살아가야하는 이들. 그 삶은 정말 힘겹기만하다.


그 삶의 한가닥 위로라고 전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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