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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랑 Jul 25. 2022

불안과 두려움 너머

                                                                  

 불안과 두려움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감정이었다. 최초의 기억은 아기 때 기억인데 아직 걸음마를 떼기도 전 기억이다. 지금 생각하면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였던 것 같은데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나고 있었다. 공포에 질려 주변을 두리번거려보았는데 낯선 아주머니들이 놀라 우는 나를 보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빠는 어디에 계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번째 기억은 4살쯤 지하 방에서 깼는데 혼자 너무 무서워 서럽게 엉엉 울고 있던 기억이다. 우리 집은 민박을 하고 있었는데 여자 손님이 들어와서 물도 먹여주고 달래주었던 기억이 난다. 아주 어릴 때부터 혼자 남겨졌던 적이 많았다. 오빠와 쌍둥이 언니도 있지만 왜인지 혼자 남겨져 두려움과 불안으로 얼룩진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초등학생 때는 밝은 어린이였다.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지만, 기질적으로 낙관적이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타고났다. 일기 쓰기와 그림 그리기, 음악, 체육 시간 등 주로 예체능 과목을 좋아하고 바다와 산을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는 건강한 아이였다. 중학생이 되자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배가 자주 아팠다. 나중에서야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었다. 정서적으로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쌓여 신체적인 증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 억눌러놓았던 감정이 비집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누가 쫓아와 도망가는 사람처럼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기에 앞서 불안과 두려움이 올라왔다. 사소한 행동을 하는 것에도 많은 에너지가 들어갔다. 사람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자리에 쓰러지듯 눕기를 반복한 나날들이 많았다. 장을 볼 때조차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 두려웠고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위축이 됐다. 심지어 연애할 당시 데이트하기 전에도 엄청난 두려움에 떨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버스 안에서 눈물을 쏟기도 했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야 할 시간에 왜 그렇게 불안과 두려움의 늪에 빨려 들어갔던 걸까?


 불안과 두려움으로 타인과 항상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었고 그래서인지 늘 외로웠다. 떼어버리고 싶은 감정들이었다. 이 감정들이 내게 많은 시도와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글쓰기, 명상, 감정 알아차리기, 심리상담 등 다양한 경로로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들숨 날숨 호흡하며 감정을 알아차리고 수용하는 연습도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비 오고 난 뒤 흙과 풀냄새가 뒤섞인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기, 일정하게 출렁이는 바다 보기, 부드러운 모래 밟으며 걷기, 하늘 보기, 등산하기 등 자연과 리듬을 맞춰가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혼자 시간을 보내며 내면의 목소리도 들어주었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는 또다시 버려질까 봐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가까워지기 겁이 났던 이유는 상처를 주거나 받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올라오면 피하는 대신 느껴주기 시작했다. “그래, 또 왔구나. 불안하구나. 두렵구나. 너무 두려워.” 이렇게 실컷 느껴주고 나면 폭풍우가 몰아치고 날이 개듯이 마음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았다. 감정이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하자, 이런 나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진다는 것은 때론 상처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는 걸, 웃는 일과 울 일이 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나를 버렸던 누군가를, 누군가를 내가 버렸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축복받은 생명이 아니라는 믿음으로 죄책감, 자책감으로 얼룩진 마음을 이제는 내려놓고 다른 누가 아닌 스스로를 버리고 방치했던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요즘의 나는 주짓수라는 운동을 시작한 지 3개월쯤 되었고 1년 7개월간 일한 직장에서 퇴사하게 됐다. 조금씩 마음을 여는 존재를 만나게 되면서 누군가를 믿고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의 손힘찬(오가타마리토) 작가님 책 목차 중 <단절됐던 세상과 다시 연결되어라>라는 구절이 있다. 정말 그렇다. 나는 지금 단절됐던 세상과 다시 연결하는 중이다.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운 일들 투성이지만 조금은 더 즐기게 된 것 같다.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날 힘이 생겼다. 자연과 내게 손 내밀고 웃음을 보내준 존재들이 얼음장 같던 마음을 녹여주었다. 고마운 별들에게 나도 그런 따듯한 존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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