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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랑 Feb 06. 2023

01. 감정이 크게 억눌렸던 어린 시절이 있나요?

나를 돌보는 여정


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돌볼 줄 모른다는 건 슬픈 일이다. 

방식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면 잘 모를 수 있다.  

내가 그랬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쁘셨고 자립심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하나씩 알려주기보다 부모님은 직접 해주셨다. 

학교에서 다양한 생활에 대한 학습을 받았지만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자신을 아끼고 애정 한다는 것인데

그 모습은 부모님을 보며 그대로 보고 배우게 된다.

여유롭게 차분히 자신을 돌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세 남매를 키우는 부모에게 차 한잔 마시며 하루 속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유를 갖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거다.

우리 부모님은 우리를 키우기 위해 말 그대로 고군분투하셨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의 감정을 세세하게 공감하고 들여다보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잘 먹이고 입히는 것에 부모님은 최선을 다하셨다. 

지금은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잘 먹이고 입히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어쩌면 그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애정을 주는 일이다.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마음이 건강한 것이고 건강한 마음은 스스로를 잘 돌보는 힘이 된다.


아이들은 감정 표현을 어른들보다 잘한다. 어찌 보면 자기 스스로를 어른보다도 더 잘 돌보는 것 같다. 

아프면 나 아프다고 소리치고 울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싶다고 말한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당당히 요구한다. 


"나 저거 사죠!"

물론 어릴 때부터 일찍 철이 들어 참고 억누르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럴 땐 참 슬프다.

어른이 되면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이 발달한다. 

하기 싫어도 하게 되고 아프면 약국에서 약을 사 먹던지 병원에 간다.

하지만 감정 표현에 관해서는 막혀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은 하면서 가장 이해해 주어야 할 마음을 은 깊은 서랍 안에 넣고 닫아둔다.

자신의 외로움은 깊이 묻어둔 채 일에 몰두하거나 화가 나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참는다.

자기표현은 점점 줄어든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난 뒤 오늘 떠오른 감정을 돌이켜 볼 새 없이 피곤함에 지쳐 잠이 든다.

이렇게 쌓인 답답하고 공허한 마음을 풀고자 주로 술을 마신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술에 취하면 들뜬 기분이 들고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다.


나도 특히 20대 때 술을 정말 많이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감정 해소를 많이 했다.

너무 억눌려있었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표현, 슬퍼서 우는 것도 맨정신에는 잘 하지 못했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취한 적이 있다.

나는 친구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어보라고 권유했다.


"얘들아. 이 아이스크림 한입만 먹어봐. 진짜 맛있어." 

친구들은 '효은이 취했나 봐.' 하면서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일부러 더 크게 리액션을 해주었다.


"음~ 진짜 맛있다. 너무 맛있어~!" 

내가 기뻐하며 웃으면 친구들도 덩달아 재밌어했다.


술을 마시면 눈물도 쏟아져내렸다. 사람들 있는 앞에서는 여전히 꾹 참았지만 혼자 방에 들어와서 펑펑 소리 내 울 수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이렇게 속 시원히 울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과정도 내게 필요한 과정 중 하나이지 않았나 싶다.


감정은 보통 어린 시절 크게 억눌리고 성인이 되어 억눌린 감정이 어떤 계기를 맞아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었거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제대로 된 감정 표현이나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고 꾹 억눌려있을 경우

성인이 되었을 때 가까운 사람의 상실에 제대로 회복하기 힘들어하고 어린 시절 기억이 되살아나 도저히 혼자 감당하기 힘든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거의 모든 감정이 마찬가지다. 


어른이 되어 '어?, 내가 왜 이러지. 난 이런 사람이 아닌데. 왜 이런 감정이 들지. 왜 힘들어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억눌린 감정은 언제든 다시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늦게 마주할수록 시간만 늦춰질 뿐이다. 

눈덩이가 점점 크게 불어나듯 늦어질수록 더 큰 감정을 마주해야 할 일이 생기게 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폐렴에 걸린 적이 있다. 

단순 감기였을 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고 당시 부모님 다툼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

큰 싸움 끝에 엄마는 짐을 싸서 집을 나갔고 아빠는 일을 다녀와서 쉬어야 했다.

기침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는데 밤이 되면 더 심해졌다. 하루는 기침을 계속하자 아빠가 화를 버럭 냈다.

아빠가 처한 현재 상황에 대한 답답함으로 인한 짜증도 차지하고 있었겠지만 나는 무서운 마음에 기침을 안간힘을 다해 참아냈다.

기침을 참는데 배에 너무 힘을 줘서 알이 배길 정도였다. 


열은 더욱 심해지고 결국 폐렴으로까지 발전되어 나는 도저히 스스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축 늘어진 상태가 되었다. 우연히 집에 들른 작은아빠에게 발견된 나는 그대로 작은 아빠가 둘러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엄청 아픈 주사를 맞고 링거를 4~5번을 갈아 끼우며 맞았던 기억이 난다. 


마음 착한 간호사 선생님이 미안해하던 기억, 병원 선생님이 다리까지 병균이 내려가서 걸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설명하던 기억, 내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찾아와 간호를 해주는 엄마의 기억, 병문안을 와주던 초등학교 친구들, 가래를 뱉어내주는 기계 소리와 나보다 어린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또한 폐렴으로 고생하며 회복을 위해 힘쓰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엄마의 보살핌에 회복되어갔고 다시 걷고 뛸 수 있게 되자 간호사 선생님은 정말 다행이라며 밝게 웃었다.


어린 시절 참았던 기억은 가슴에 응어리가 된 채 억눌려있었다.

나는 항상 혼자만의 공간을 꿈꿨다. 기침을 마음껏 할 수 있고 숨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했다. 비록 1평짜리 공간이라 해도 괜찮았다. 


지금 나는 자취를 하고 있는데 주방 분리형에 친구 두 세명 초대해서 자면 다 차는 크기의 방이지만 마음은 훨씬 편안해졌다. 나만의 공간에서 내 마음을 오롯이 느끼는 것만으로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요즘 술을 먹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안 난다. 

술을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조절이 잘 안되던 때가 있었다. 

온갖 고생을 하고 수치스러운 기억까지 만들고 나서도 조절이 어려웠는데 이제는 금주하겠다고 선언하고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은 마음 자체가 안 든다. 내게는 정말 놀라운 변화다.


혼자 지내다 보니 올라오는 감정을 충분히 느껴주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방에서는 눈치 볼 일이 없이 울고 싶으면 울고 속상해하고 웃고 춤추고 싶으면 춤을 췄다.

나 스스로에게만큼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했기 때문일까. 

속에 쌓이는 게 없어서 인지 술을 먹으며 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것 같다.

술을 마신 이유 중 하나는 들뜬 기분과 분위기의 영향이 컸다. 

술을 마시면 더 막힘없이 이야기를 술술 잘 할 수 있었다. 친구들도 재밌어했고 나도 그런 분위기가 즐거웠다.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왜 그렇게 술을 마시는지 알 것 같다.

나도 일을 하다 보면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가 더 커졌는데 아무래도 직장 내에서는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 없고 많은 표현을 억눌러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술로 풀려고 하는데 사실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술에 취해 표현한 감정은 술의 힘을 빌린 것이기 때문에 온전한 정신에서 표현한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여 풀어낼 순 있지만 알아차림 상태에서 표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억눌릴 수 있다. 정 힘들면 가까운 사람과 한잔하며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힘이 될 수 있지만 과하게 마시는 건 뇌에도 간에도 좋지 않다.


나는 방치당한 아픈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참고 억누르는 답답하고 슬픈 마음도 안다. 

치유를 위해 긴 여정을 걸어가고 있고 조금씩 마음이 전보다 편안해지고 있다.

내가 겪은 아픈 마음을 비슷하게 겪고 있을 모든 소중한 존재들이 편안해지길 바란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지만 자기 돌봄의 여정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경험을 나누며 함께 감정을 탐구하고 치유하며 나아가고 싶다.






스스로를 돌보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소중히 여기는 여정을 향해 걸어간다. 

앞으로도 수십 번은 더 넘어졌다 일어나겠지만 오늘은 한 걸음 나아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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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별의 마무리 말


저는 마음에 대한 탐구를 꾸준히 하고 있어요. 

심리상담사 자격증, 연애상담사 자격증, 자존감 코칭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답니다. :)

공부를 하며 더욱 감정과 마음에 대한 이해가 커졌어요.

부러운 삶도 있지만 지금의 삶이 내가 선택한 것이고 책임져야 할 삶이라 생각해요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여정에서도 배울 것이 많으니까요. 

지금 무사히 살아가고 있고 주어진 것에 감사합니다. 

내 방을 산뜻하게 해주는 초록이와 따듯한 이불, 작업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 노트북, 예쁜 조명, 

포근한 분홍 수면양말, 담요, 좋아하는 머그잔과 간식, 

소소한 것들을 더 소중히 여겨봅니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한 주 시작 화이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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