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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랑 Feb 10. 2023

02. 슬픔아, 네가 거기 있었구나


2~3살 정도 어린아이일 때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울고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다.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언니가 인형을 가지게 되었고 좋아하는 물건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엉엉 서럽게 울음이 터진 것이다. 언니는 미안한 표정을 짓고 옆에서 우는 나를 부모님이 찍어주셨다.


눈물을 흘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직 언어를 배우기 이전의 아이에게는 유일한 의사소통 신호인지도 모른다.아이는 배가 고파도 울고 졸려도 울고 대소변을 보고 나서도 울고 몸이 아파도 운다. 무언가 불편함이 오면 울음으로 표현한다.


아이가 울 때 "뚝 그쳐. 그만."이라고 말하면 아이의 감정을 억눌린 채 자라게 된다.

"우리 아기가 어디가 불편할까? 맘마 줄까?" 하면서 세심하게 살펴보고 아이의 요구사항을 잘 파악해서 해결해 주면 아이는 금세 잠잠해지고 마음도 안정적으로 자라게 된다. 안아주기 등 스킨십을 많이 해주는 것도 아이의 안정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3세까지 이 과정이 잘 이루어지면 독립적이고 마음 편안한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 또래 남자아이 중 눈물이 많은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은 그 친구를 '울보'라고 부르며 작은 것에도 운다고 놀리곤 했다.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의 눈물에 어른들은 더욱 관대하지 않았다.


"뚝 해야지. 남자가 울면 못써. 사내대장부가 이런 일로 울면 안 되지!"라고 훈육을 하거나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말로 어린 나이에서부터 슬픈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한 남자들이 많다. 여자아이, 남자아이가 슬픈 상황에 있을 때 감정을 느끼는 것은 오히려 남자아이가 감정에 도 예민하고 풍부하게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후천적인 학습으로 인해 어른이 될수록 억제되는 것이다.


 요즘은 다양한 육아 서적과 매체를 통해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감정 표현을 자유롭게 인정하는 것이 아이 양육에 긍정적이라는 것을 잘 알 수도 있다. 감정 억누르기를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금씩이라도 바뀌길 바란다. 왜냐면 이렇게 억눌린 감정은 언제가 되었든 다시 올라오게 되고 해결해야 할 시기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감정이 억눌린 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을 살아가며 느껴야 할 다양한 아름다움을 놓치고 살아갈 수도 있다.


강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과 울면 약한 사람, 감정적인 사람 취급을 하며 서럽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꾹 참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되어 간다. 무뎌지는 것이다. 정말 슬픈 상황이 와도 눈물이 나오지 않고 슬픈 감정도 들지 않는다. 나 자신의 마음에도 건조해지고 누군가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의 마음에 공감도 잘 할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사랑하는 주변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상처를 주게 될 수도 있다.


점점 성인이 되어갈 무렵엔 나도 모르게 눈물을 참게 되었다. 특히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울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에 빠졌을 때는 눈물을 흘리지만 내가 힘든 일을 겪고 슬픈 일을 겪을 때는 충분히 감정을 느껴주지 않았다. 그 서러운 마음은 무의식 깊은 곳에 갇혀있다가 술을 마실 때 올라오곤 했다. 다음 날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또 일상생활을 할 때 슬픈 마음은 억눌러놓기를 반복했다.


근 1년간 내가 마주한 감정은 정말 다양한데 그중 슬픔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에는 연인과 이별 후 거의 매일 울며 지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과거에 있었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음악을 들으며 불쑥 불쑥 올라오는 감정을 느끼며 있는 그대로 느껴줄 수 있었다. 참지 않으니까 한바탕 울고 나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또 즐거운 순간도 찾아오고 웃는 날도 생겼다. 나중에는 슬픈 감정을 느껴주면 금방 지나가고 감당하기 힘들기만 한 감정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감정은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거나 관계를 통해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감정이 외부에서 왔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누구 때문에 이렇게 서러운 거야. 이러이러한 상황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는 거야. 그러나 감정은 어떤 사람이나 상황이 계기가 되어 깊은 곳에 갇혀있던 문이 열려 쏟아져 나왔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 순간이 기회인 것이다. 내면 깊은 곳에 갇힌 감정을 표현하고 이런 마음이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리며 치유할 기회가 찾아온 거다.


오전, 오후 일정을 마치고 카페에 가서 책을 읽다가 강의 시간에 맞춰 집으로 향했다.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틀었다. 날씨가 점점 풀리고 있다. 상쾌한 저녁 공기를 폐 속 깊이 들이마셨다. 갑자기 울컥하고 눈물이 솟구쳤다. 음악 속 가사가 불쑥 와닿기도 하고 문득 떠오른 생각으로 인해서 일 수도 있다.


내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살다 보면 나와 닮은 누군가를 언젠가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다른 별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하지만 아무리 멀리 있어도 연결될 거라 믿으며 지냈다. 내 마음이 외로움으로 가득했던 이유는 어쩌면 외부에서만 찾으려고 애썼기 때문인지 모른다. 내 마음이 어떤지 내가 다독여주고 돌보아주지 않고 외면했기에 슬픔은 나날이 커져갔다.


이별한 누군가는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어렸을 때 키우던 강아지..

영영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서럽고 슬프기만 하다. 애절하고 그립고 아프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마음으로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마음의 온도가 올라간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는 것을 믿는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마음을 전할 수는 있다.

오늘도 고요한 가운데 슬픔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진심을 전해본다.

.

.

.

오늘 마주한 슬픔에게

슬픔아. 거기 네가 있었구나.

떠나고 싶지 않았구나.

내가 널 자꾸 미워하고 수치스러워하고 떠나보내고 싶어 해서 두렵고 서러웠지?

슬픔아 미안해. 넌 나쁜 아이가 아닌데,

네가 있어서 감정도 솔직하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아프고 서럽고 슬픈 마음을 공감하고 느끼고, 치유할 수도 있었어.

슬픔아, 네 덕분이야. 너의 아픔이 있기에 사랑도 느낄 수 있었어.

미안해 슬픔아. 너를 아끼고 사랑해.

내게 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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