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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의 서랍 Sep 28. 2020

당신의 내면에 둔감한가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나이가 들며 시간을 따라잡기 어려운 이유는 자꾸만 과거의 무게가 커지기 때문인 것 같다.

생각이 떠오르고 발목을 잡는 과거가 늘면 늘수록 현재의 속도를 따라 잡는 것이 어렵고, 겨우 따라 잡았나 싶은 순간도 곧 바로 과거가 되어 버린다.


시간은 누구나 알지만 시간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뇌리에 강렬히 남았다. 그리고 최근 자꾸만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있는 공간은 현재라는 것이다.

과거를 떠올리며 생각하기 보다 현재의 살아있는 시간을 마주 대하면 훨씬 시간을 타기 쉬워질 것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현재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 분명 더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나만이 볼 수 있다.

내가 느끼는 것은 나만이 느낄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듣는 것, 내가 마주대하는 것은 나만이 마주대할 수 있다.


모든 감각은 선택적 집중의 결과이기 때문에 나와 개개인의 모든 정보처리 후 습득된 어떤 것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태어난 환경과 살고 있는 몸과 선택적 집중이 다른 우리 개개인이 서로 공감한다는 것은 피상적일지라도 놀라운 것이라는 것을 느낀다.

누가 나를 이해해줄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다른 생을 살아가며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것만으로도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결국 자신을 위해 사는 인생이다. 그리고 나를 위해 타인이 있고, 세상이 있고, 공존이 있다는 걸 책으로 다시금 배운다.

몸과 마음과 관계가 건강한 사람들이 만든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라는 생각도 곁들여본다.


분명 인간은 동물적 본성으로 악한 면이 있다.

하지만 사자가 다른 동물을 잡아 먹는 것을 악이라고 규정할 수 없듯이 그 본능을 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잣대이고, 사람의 잣대로 보호받는 사람과 동물과 자연이 있을 것이다.

본능을 억누르고 타자를 보호하는 것은 일종에 숭고한 희생에 가깝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를 선이라고 부를 것이다.

악이라고 보여지는 행위를 하는 이들은 몸과 마음과 관계의 치유를 필요로 하는 이들로 보인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내면의 상처는 보이지 않기에 방치 하기 쉽고, 들어나지 않으며, 육체와 달라 치료과정에서 마취도 되지 않고 그대로 수술대 위에 올라야 한다.

그렇기에 고통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두고 싶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애초에 사고에 당하지 않는다면, 내면의 상처를 준 그 사고들에 치이지 않는다면 마취없이 치료할 상처에 없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면의 보호막, 안전벨트, 응급처치를 갖춰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보이는 것만 보고 살고 있는가.


우리가 보호해야할 존재들은 결국 영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부디 당신도 아프지 않기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아픔이 있다면 마취가 어렵다는 이유로 치료를 피하지 말기를, 상처보다는 흉터를 가지고, 타인의 아픔을 다독여 줄 수 있기를.


이 큰 세상을 내가 전부다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분명 당신의 내면을 바꿀 수 있고, 그 내면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오늘, 지금 현재로 돌아오라.

과거의 그 어떤 것도 그대로 과거에 두고 지금 햇살이 비추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떠다니는 현재로 다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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