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격렬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를 읽고

by 하얀밤


김상욱 교수님이 좋아서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교수님의 책에 이 책이 좋은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었거든요. 그런 단순한 이유로 500페이지가 넘는 '물리학'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에 또 손을 댔습니다.


다 읽는 데 한 달 정도 걸렸습니다. 저에겐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교양 강의한 것을 모아놓은 것이라 해서 문과 출신인 저도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적어도 고등학교 이과 계열에서 배우는 지식 이상을 가지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개념들이 툭툭 튀어나와서 읽는 도중에 인터넷 검색을 하기도 하고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이 잠깐의 검색과 영상 보기로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지요. 그래서 책의 중반부터는 그냥 무작정 읽었습니다. 모르는 수식이 나오면 그냥 뛰어넘었습니다.


무작정 읽으니 오히려 책의 큰 줄기가 보였습니다.

다 읽고 난 지금은 과학책이 아니라 한 권의 철학책처럼, 삶에 대해 고찰한 작가가 혼신을 다해 쓴 소설처럼 다가옵니다.




물리학은 보편직인 지식을 추구하는 학문이라 합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바탕이 되는 원리를 찾는 물리학을 전공하는 김상욱 교수님, 최무영 교수님 두 분이 같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바로 '생명의 경이로움'입니다.

구성원이 많으면 그 사이의 상호작용 때문에 구성원 전체, 흔히 '계'라 지칭하는 대상에 집단성질이 생깁니다. 여러 구성원들이 서로 협동해서 생겨난다는 뜻에서 협동현상이라 부르며, 구성원 하나하나와는 관계없는 집단성질이 생겨나므로 이를 '떠오름'이라고 부르지요. 요즘은 '창발(創發)'이라는 한자어도 쓰더군요.

-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p80
그러면 협동현상의 가장 궁극적인 떠오름이 뭘까요? 나는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현상을 보이는 기본단위가 무엇인지는 어려운 문제지만 간단히 세포를 생각해 보지요. 세포는 여러 분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물과 흰자질(단백질)을 비롯해서 지질, 탄수화물, 무기물 등 여러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명백하게도 이러한 분자 하나하나에는 생명이란 없습니다. 그저 분자일 뿐인데 그런 분자들이 많이 모여 세포라는 집단을 만들면 그들의 상호작용, 곧 협동현상을 통해서 놀라운 생명현상이 떠오릅니다. 참으로 놀랍고 신비로운 일로서, 떠오름 현상의 궁극적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p81

최무영 교수님은 구성원 하나하나의 특성이 전체의 집단성질과 다르다고 이야기합니다. 생명이 없던 작은 단위들이 모여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 기적에 가까운 것이라고요.

저는 여기서 세포에 '우리 삶의 개별적인 사건'을, 생명체에 '의미'를 대입해 보았습니다. 파편 같은 삶의 장면들이 어느 순간 모여 커다란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지 않던가요. 바로 그것이 '창발(創發'의 순간이고 이로부터 생명의 존재 목적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깨닫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의무이다'라고 까지 생각을 확장해 봅니다.


이미 잉크가 퍼져버린 물이 결코 그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한 번 깨달은 사람은 결코 깨닫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더 지혜로워진 사람은 알게 된 것을 통해 고통을 느끼더라도 이전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열역학 두 번째 법칙에서 삶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건 제가 너무 감성적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것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보편 원리이기 때문일까요.

분자 하나하나의 운동은 완전히 시간 되짚기 대칭이 있는데 전체로 보면 시간 되짚기 대칭이 깨지는 겁니다. 결국 전체의 현상이 분자 등 구성원 하나하나의 상황과는 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구성원 하나하나를 이해한다고 해서 전체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여기에서도 여실히 나타납니다. 이는 열역학 둘째 법칙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이른바 시간화살이라고 표현합니다. 시간이 화살처럼 한쪽 방향으로 날아간다는 의미지요.

-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p147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대전환이 일어나야 할 만큼의 혼돈을 필요로 합니다. 모순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외면하며 살다가 결국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이 올 때,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과감히 문제 속으로 뛰어듭니다. 죽을 것 같을 때 비로소 차라리 죽겠다는 심정으로 문제와 부딪치는 거지요. 그렇게 성장하는 인간처럼 과학 이론도 발전해 왔습니다.

(고전) 물리학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에 들어오면서 고전물리학 자체 모순에서 비롯한 심각한 문제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것은 역사적으로 당시 시대정신하고 묘한 상관관계가 있는 듯합니다. 이른바 쿤의 관점에 따르면, 변칙 또는 비정상성이 급격하게 쌓여 결국 패러다임의 전환, 과학혁명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20세기 초에 과학혁명이 시작해서 유명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p171
'결정'이란 말에는 질서가 전제되어 있는데, 놀랍게도 이러한 '질서'에서도 '혼돈'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당구대도 흔들이도 운동이 결정되어 있지만 혼돈스러울 수 있지요. 이러한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결정론적 혼돈'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런 걸로 미루어 보면 질서와 혼돈은 단순히 서로 반대 개념이 아니라고 짐작할 수 있지요. 서로 맞물려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p296




인간이란, 그래서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이지 않은가요.

우주의 차원에서 너무나 미미한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발전하며 우주를 매우 정확하게 이해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나아가, 자신이 알고 배우고 깨달은 바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거기서 의미를 느끼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우리처럼 별도 그렇게 삽니다.

별에 대해 설명한 부분에서는 솔직히, 눈물이 찔끔 났어요. 어릴 때는 꿈같은 존재였지만 정체를 알게 되면서 이제는 하늘을 올려다봐도 그냥 빛나는 물질의 덩어리라는 과학적인 사실로서 먼저 다가오는 별.

별에 미안할 정도로 감성을 잃은 저에게 이제 별은 삶의 멘토처럼 다가옵니다.

별이란 참 격렬하게 삽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고통스럽게 태어나서 찬란하게 살다가 왜 이렇게 격렬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까? 별 사이 물질로 그냥 남아 있지, 왜 태어나서 존재의 번거로움을 겪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사실 인간도 마찬가지지요. 그냥 먼지로 남아 있지, 왜 굳이 태어나서 존재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야 하나요? 별의 삶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합니다. 사실 별이 이렇게 격렬하게 사는 것은 우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데 필요한 무거운 원소들은 바로 별이 공급해 줍니다. 그러니 우리는 결국 별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거지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산소, 그다음에 탄소, 수소, 질소, 칼슘 같은 것들입니다. 참 특수하지요.

이러한 무거운 원소들은 원래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겨났는가? 순전히 별이 만들어 준 겁니다. 그러나 별이 이렇게 존재의 고통과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격렬하게 살다 간 것이 우리를 위해서인 듯하네요. 별 때문에 우리가 태어나서 살 수 있는 겁니다. 반대로 보면 유감스럽네요. 별이 없었으면 우리도 존재의 번거로움과 괴로움이 없었을 텐데 말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의 모든 걱정, 근심과 괴로움이 있으면 저 별들에게 책임을 물어봐요.

-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p400

수고롭게 탄생해서 살다 간 별이 준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수많은 종 중에서도 생각을 할 줄 아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별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지 않을까요. 그러니 별처럼 살아야겠습니다. 고통과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이 세상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찾기 위한 모험을 쉬지 않을 겁니다.





저는 이 책을 철학책처럼, 소설책처럼 읽었습니다.

이 책은 과학 지식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과학 지식을,

저처럼 과학 지식은 부족하지만 사는 목적을 탐구하는 사람에게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근원적으로 생각해 보게 합니다.

어떤 목적으로 읽든 훌륭한 책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개정되기 전 책이고 지금 나오는 책은 2019 개정판이라는 것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몇 달 동안 물리학의 매력에 빠져 과학책을 연거푸 읽었더니 이제는 심리학 책이 읽고 싶어 집니다. 그래서 이번엔 ADHD에 대한 책을 읽어보려 합니다.


책 읽을 시간은 부족한데 읽고 싶은 책은 자꾸만 쌓여가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유난히 견과류와 잘 어울렸던 물리학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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