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라고 이름 붙이기 전에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을 읽고

by 하얀밤


쌍둥이를 키우는 건 힘든 일이었습니다.

처음 아이를 키워보는데 한 번에 둘을 키우게 되니 두 배가 아닌 세 배, 네 배로 혼란이 따랐지요. 특히 저를 힘들게 한 건 럭비공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아들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이나 그네를 타고 놀 때 어느샌가 화단 속으로 사라지고, 고양이굴이라며 흙을 파고 있고, 경비 아저씨가 예쁘게 가꿔 놓은 텃밭의 식물을 건드리곤 했습니다. 제가 소리를 지르고 말리면 오히려 경비 아저씨께서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는 다 그런 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찌나 아이 이름을 자주 불러댔는지 지나가던 낯선 할머니가 아들을 보고

"네가 그 OO이냐?"

하시며 이름을 알 정도였죠.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첫 상담을 하던 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혹시 ADHD인건 아닐까요?"

선생님은 아이가 무척 활발한 편이긴 하지만 좋아하는 일에는 집중을 잘하니 걱정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다음 해에도, 유치원으로 올라간 그다음 해에도, 저는 매번 상담 때마다 담임 선생님께 같은 질문을 했고 비슷한 답을 들었습니다. 그 선생님들이 저를 안심시키지 않으셨다면 벌써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제목인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은 많은 부모의 마음을 쿵, 하고 흔들어 놓을 제목입니다. 아이가 활발하고 고집이 센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 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며 대중매체에서 '금쪽이'에게 붙이는 온갖 장애진단들을 떠올립니다. 내 아이는 아니길 바라면서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사고들은 병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병명이라는 건 똑똑한 의사 선생님들이 붙여주시는 거니까 당연히 실재하는 거라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붙이는 병명과 그에 따라 처방되는 약물의 근거가 '추측'에 불과하다면 어떨까요. 그렇게나 많은 전문가들이, 그렇게나 자주, 그렇게나 뇌의 기능에 대해 그럴싸하게 이야기하는데 이 모든 것이 뚜렷한 과학적인 근거가 없이, 그럴 것이라는 '추측'일뿐이라니. 저에게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속은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이 책,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은 미국에서 대안학교를 4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선생님이 쓴 책입니다. 공립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소위 '문제아'들이 저자가 운영하는 프리스쿨에서 제대로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해내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프리스쿨에 오는 아이들 중 저자가 '리탈린파'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리탈린'은 ADHD에 처방되는 대표적인 약입니다. 아이들이 약을 먹게 된 계기는 다양합니다. 부모가 스스로 병원에 데려가서 먹인 경우, 학교에서 약 먹기를 강력하게 권고한 경우.

어떤 경우건 간에 아이가 받아들이는 상황은 비슷합니다.


브라이언이 리탈린을 끔찍이 싫어한 가장 큰 이유는 약효가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하루 종일 간신히 억눌렀던 흥분이 화산처럼 폭발해서 방방 뛰며 집 안을 뒤집어놓았고, 날씨가 좋을 때는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다가 저녁 먹을 시간에야 들어와서 밥도 깔짝거리며 잘 먹지 못했다. 리탈린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 하루종일 속이 메스꺼워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한다. 밥맛이 싹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리탈린이 브라이언에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었다. 브라이언은 또래와 달라 보이는 것이 두려운 한참 민감한 나이였다. 그런 아이에게는 리탈린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증거였던 것이다.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뜻이었고, 브라이언의 표현을 빌리자면 혼자 "병신"이 된 것이다. 브라이언은 결국 자신을 싫어하는 아이로 변하고 말았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p112


아이들은 약기운이 있는 동안 감정이 억눌리고 신체적으로도 불편을 겪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여기서 놓쳐선 안 되는 부분은 아이들이 '약을 먹는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른도 그렇지 않나요. 특정 병명이 나에게 주어지고 그에 따른 처방약을 먹을 때, 느껴지는 무기력감.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내 몸에 대한 두려움.

아이들은 오죽할까요.

또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약을 먹이고 난 뒤에 부모님들이 가지는 생각입니다.


「사이언스 뉴스」에 짧게 요약되어 실린 조사결과에 따르면, 리탈린을 먹는 아이들은 스스로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어떤 아이는 그 상처가 심각했다. 아이들은 많은 경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좋은 알약'을 먹어야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리탈린을 먹이는 부모는 가정불화에 대처하는 것을 피하고 자녀의 행동 이면에 있는 감정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들은 자녀의 문제 되는 행동을 약물이 고쳐줄 것이라 기대했다.

젠슨은 조사결과에 대한 또 다른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주의력결핍장애로 추정하고 진단을 내리게 되면, 아이의 역기능적 행동과 괴로움에 일조하거나 이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들을 더 이상 살피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p117


아이가 약을 먹게 되면서 부모는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진단을 받고 병명이 주어지고, 약까지 먹으니 아이의 문제행동을 약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전문가가 개입했으니 아이의 문제 원인에 대해 살펴보기보다는 현상을 다루는데 집중하게 되지요.

이 모든 것이 '추측'에 의해 일어난다는 전제만 빼면 완벽한 전개입니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성향에 맞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이라고, 이 책을 통틀어 끊임없이 말합니다. 프리스쿨을 거쳐간 아이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울적함도 끊이지 않았다고 감히 고백합니다. 저자의 멋진 교육 방식이 대한민국의 현실과 너무 멀게 느껴졌거든요.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중요한 목적은 모든 아이들이 자기만의 사연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연은 타고난 기질, 성별과 인종과 사회계급, 부모의 태도와 신념, 보육 및 교육 기관, 아이를 둘러싼 문화 등등 각기 다른 여러 요소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아이가 자기를 억압하거나 자기의 욕구를 외면하는 환경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더라도, 그 고통의 원인은 어느 한 가지 요소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인은 오직 그 아이의 사연을 부분이 아닌 전체로 이해해야만 보일 것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또 무엇이 부족한지를 보여주는 신호는 마치 꿈속의 이미지처럼 아이의 사연 속에 암호화되어 있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p318


아이에게 있을 사연을 파악하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아이에게 꼭 맞는 일대일의 교육과정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 공교육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좋은 대학 입학이라는 공통 목표를 향해 일목 요연하게 설계된 교육 과정 속에서는 아이의 개성을 발휘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이 하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인력도 부족할뿐더러, 무엇보다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를 저지할 힘을 가진 구성원이 없습니다.


프리스쿨에서는 아이가 다른 아이를 괴롭히거나 수업을 방해할 경우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는 아이를 다른 아이들이 깔고 앉아버립니다. 깔린 아이는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 항복을 하지요. 또, 하루 어느 때든 괴롭힘을 당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한 학생이 수업을 멈추고 전체 회의를 소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괴롭힌 아이를 대상으로 전체 회의가 열리면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에게 줄 벌을 함께 고민하고 실제로 실행합니다.


이런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학폭 신고가 오가고 아이는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겠지요. 약처방을 받을 만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를 도울 방법이 현재의 학교에는 없는 듯합니다.


마무리가 너무 우울한가요.

지금 제 기분도 그렇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희열, 설렘이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현실의 무거움에 눌립니다.


마지막 희망은 가정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를 문제아라 하더라도, 부모가 아이를 믿어줘야 합니다. ADHD로 진단받는 아이는 생각의 속도가 빠르고 영특한 경우가 많습니다.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분야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집중력을 발휘할 때도 있고요. 아이와 가까이 있는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포인트가 분명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가 문제행동을 많이 한다고 병원 가기를 권해도 병원보다는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줄 수 있는 상담센터를 먼저 찾을 수도 있습니다. 약처방은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어야 합니다.


진단과 약처방을 피하기 위해 부모가 겪어야 할 고통이 얼마나 클지 저는 짐작조차 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가 자신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현재로선 부모 밖에 없다고 진심을 다해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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