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죽던 날

2023.6.8.

by 하얀밤


자물쇠가 뜯어진 일기장이

방바닥에 나뒹굴던

열다섯 살,

방과 후.


팔짱 끼고 앉은

엄마 아빠 사이에

기이하게 떨어진 일기장이

내장을 쏟듯

속지를 내보이고 있었다.


일기 속 나는

문제아, 불효자식, 사회부적응자였다.

그렇게 써서 잘못했다고 빌며

옥상에서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내 마음은

그날 한 번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다섯 살의 나는

쓰는 행위가 주는 힘을 알았기에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쓰면서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도망도 가고

용기도 내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울면서

찢어진 일기장을 이어 붙이던

용기 있던 열다섯의 나에게

목숨을 한 번 빚졌다.





매거진의 이전글헤드라잇 제안을 거절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