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게임하는 엄마
2023.7.16.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586 펜티엄 컴퓨터가 집에 들어왔을 때
아빠는 나와 동생들에게 뭘 바라셨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게임부터 깔았다.
남동생들은 킹오브파이터에 푹 빠져
김갑판인지 김갑환인지 하는 요상한 이름의 한국 캐릭터로
파이터의 세계에서 하루에 한 번씩 왕이 되었고,
나는 고인돌 1탄, 2탄에서 매일 한 번씩 엔딩을 봤다.
대학생 때는 PC방에 자주 갔다.
남자 동기들은 스타크래프트를 했지만
나는 벌레처럼 꼬물거리는 게 징그러워서
캐릭터가 귀여운 포트리스와 카트라이더를 주로 했다.
포트리스 금달(금메달 레벨)을 달고 서버에 입장할 때의
뿌듯함이 생생하다.
스핑크스 맵에서 재수 좋게 첫 턴을 받으면
캐논 캐릭터에 빨콩(빨간 대포알)을 장착하고
19도 풀샷 연속 두 발을 정확하게 날려
상대가 턴 한 번 못 잡게 하고 끝을 냈다.
(반대 입장이 되면 진짜 욕이 나온다.)
카트라이더는 직장인이 되어서도 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를 갖기 전까지 했었다.
자석 아이템을 1등에게 붙여 역전승을 할 때,
이 한 몸 희생한 길막(길 막음)으로
우리 편 1등을 앞으로 더 멀리 보낼 때,
그때의 쾌감은 겪어 본 사람은 안다.
음,
이쯤 쓰다 보니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신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게임은 즐거운 것이다.
그러나 게임이 주는 가장 큰 이점은
승리가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음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게임을 잘하려면 시간 투자만 해서는 안 된다.
초보 때야 레벨이 쭉쭉 오르지만
어느 정도 레벨이 올라가 실력자들과 싸울 때는
실패를 만회할 나만의 요령을 찾아내야 하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앞서 말한 정확한 빨콩 두 샷과 길막 스킬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우리 삶도 이와 같지 않은가.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단순하게 하던 일을 반복하기만 하면 같은 레벨에 머문다.
내 위치에서 레벨업을 하려면
나만의 노하우를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게임과 삶의 공통점을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 배우기를 원한다.
그래서 게임을 하게 허락한다
내가 건 조건은 단 하나다.
'오늘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말 것'.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이제 우리 집 아이들은
게임을 즐기기 전에 숙제를 먼저 해 둔다.
게임을 하기 위해 숙제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조건을 어기면 만 하루 동안 게임 금지이므로.
요 며칠 아들과 함께 게임을 하고 있다.
같은 종류의 아이템을 합쳐서 높은 단계의 아이템을 만드는
머지 게임류의 하나다.
레벨을 올려 보상을 받는 재미가 쏠쏠하다.
레벨이 오를수록 난이도가 올라가니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법을 함께 궁리한다.
게임을 하면서 미처 몰랐던 아들의 성향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템을 못 버리고 품는 편인데
아들은 자기 판단에 필요 없다 싶으면
과감히 버리고 새 기회를 노린다.
어리바리 어리기만 한 아이라 생각했는데
아들 믿고 플레이를 하니 훨씬 효율적이다.
게임을 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부모가 게임을 나쁘다고 해버리면
아이들은 나쁜 짓을 하고 싶어지는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부모 몰래 하게 될 것이다.
부모를 속였다는 죄책감은 또 얼마나 아이를 괴롭힐지.
이 시대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무조건 막는 것이 아니라
게임과 아이의 현실 삶이
자연스럽게 공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