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단상

적은 수의 사람과 깊이 사귄다

2023.9.10.

by 하얀밤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요즘, 어쩌다 보니 오랜만에 오랜 인연을 이어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날들이 잦았다. 한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실은 국민학교), 한 사람은 아이 친구 엄마였다가 친하게 된 사람, 나머지 한 사람은 직장에서 알게 된 사람이다.



#1

초등학교 동창은 근 10여 년간 연락이 끊겼다가 약 5년 전부터 우연히 다시 소식을 주고받으며 지금까지 몇 달에 한 번씩 만나고 있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워킹맘이다. 일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가정과 직장을 오가는 바쁜 일상을 보내는 건 같다. 만나면 애들 때문에 못 먹었던 매운 음식을 먹고, 최대한 길에서 버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가까운 카페로 간다.


이 친구와는 어린 시절을 공유하기 때문에 가족과 관련한 깊은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다. 우리는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비슷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산 것도 비슷하다. 나는 첫째, 친구는 막내지만 모두 맏이의 역할을 하며 살아왔다.


우리는 부모와 형제의 기대에 맞춰 희생하며 무너진 젊은 시절과 극복한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일 개는 빨래와 매일 하는 밥 같은 이야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지 등 앞으로 잘 살 수 있는 방법, 잘 살아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상식을 넘어선 이야기를 한다. 남들이 손가락질할 이야기도 서로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다. 상식이라는 게 있긴 해?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어! 그게 우리다.




#2

아이 친구 엄마였다가 친구가 된 사람은 5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엔 아이 얘기를 하다가 말을 텄는데 비슷한 직군에 있다 보니 일이야기를 하며 더 친해졌다. 아이 나이, 직업이 비슷한 사람을 찾으면 이 동네에 얼마나 많겠는가. 우리가 친해진 결정적인 이유는 생각하는 바가 통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놀이터에서 다른 엄마들과 친해질 수 없었다. 학교에서 끝마치지 못한 과제를 집으로 보냈다며 "늙은 선생이 미친 X"이라고 하던 엄마의 말 끝에 눈빛을 주고받고는 함께 슬글슬금 자리를 떴다.


자기 아이가 잘못했는데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학교로 달려가 진상짓을 하는 학부모가 미래에 자기 아이로부터 받을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학원을 보내야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엄마들이 사활을 걸고 아이를 보내려고 하는 영재교육원의 실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등까지 부모의 지휘 아래 두각을 드러내던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 지쳐 무너지는 것에 대해 공감한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아이들이 회복탄력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다. 어떤 '이상한 교사'든 '이상한 친구'든 아이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것과 차라리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것에 공감한다.




#3

직장에서 알게 된 사람은 딱 1년 함께 근무한 사이인데 비슷한 영혼을 가졌음을 알아보며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남편이 늦게 퇴근해서 가사와 아이 돌보기를 전담하는 워킹맘이면서도 자기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이 나라고 말하니까 좀 민망하긴 하지만) 공통점이 우리를 더 끈끈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엔 워킹맘이긴 해도 남편이나 조부모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많았기에 우리 고통은 우리가 서로 알아줬다.


업무적으로도 발전하고자 하는 의욕이 비슷했다. 나보다 그녀의 성취가 더 컸다. 그녀는 커다란 일을 마주해도 겁내지 않고 해냈다. 나는 그녀와 함께 하는 1년 간, <쌍둥이 독박 육아 워킹맘>이라는 장황한 틀을 정교하게 만들고 그 안에 에 갇히게 한 장본인이 나 자신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는 나를 알에서 깨어나게 했다. 그녀도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해준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 때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도 그녀를 통해 알았다.





이들은 내가 부담 갖지 않고, 긴장하지 않고, 나를 애써 꾸미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몇 달에 한 번씩 만나도 푸근하고 편안하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다.


어제 뭘 먹었는지, 요즘 재미있는 넷플릭스 드라마는 무엇인지, 잘 나가는 맛집이 어디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하하 호호 혹은 소곤소곤하는 사람들 틈에 잘 끼지 못해도 외롭지 않은 이유는,


마음이 통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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