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단상

나는 계속 '일잘알'소리를 듣고 싶다

2023.9.13.

by 하얀밤


"여러분들 앞에서 말하는 건
언제나 긴장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하하하.."



내 말에 사람들이 같이 웃어주었다. 몇몇은 응원의 박수도 쳐주었다. 심장 박동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평소 동료로 지내던 사람들이 청중이 되어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 여전히 낯설지만 이제는 말하기를 위한 '대본'까지 준비하지는 않는다. 그날그날의 분위기, 모인 사람들의 성향, 내 기분에 맞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직장에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되는 대로 어떻게 되겠지 했다가 된통 망한 이후로 마이크 잡을 일이 생기면 미리 준비를 했었다. 농담까지 적은 구체적인 대본을 만들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실제처럼 말하기 연습도 했다. 무리 대비를 해도 변수는 있게 마련이어서 말하기는 언제나 나에게 큰 벽이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피할 수가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피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자꾸 했다. 그렇게 보내는 동안 마이크에 점점 익숙해지는 걸 느꼈는데, 어제 드디어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즉흥적으로, 대본 없이 솔직하게 말을 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오늘은 후배에게 조언도 했었다. 업무의 프로세스를 헷갈려해서 전체적인 흐름을 차근차근 알려줬다. 계획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결재받는 시기와 결재라인 등을 설명해 줬는데 내 말이 끝나자 나에게 "역시 일잘알이세요!"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일잘알'?


그 업무는 내가 약 10년 전에 여기 부딪치고 저기 부딪치며 익힌 일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전체적인 흐름을 알려주지 않아서 혼자 단계를 만들어가다가 전임자와 전전임자가 놓쳤던 것까지 알아버렸다.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전임자들에게 원색적인 욕까지 먹었다. 그들에게 나는 자기를 쪽팔리게 하는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맡은 업무를 제대로 하고 싶다. 이건 점잖은 표현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내 도장이 찍히는 일로 뒷담화를 듣는 것이 싫다. 내 손을 거쳐간 일은 제대로 해내고 싶었다. 누구의 뒷담화보다 제일 두려운 것은 내가 스스로를 욕하는 것이었다.


여기는 해마다 업무가 바뀐다. 20년 차가 되어가니 꽤 많은 종류의 일을 거쳐왔다. 서류 싸움도 해 봤고, 공사도 해 봤고, 직원 교육도 해 봤고, 그 외에 자잘한 여러 일들을 경험했다. 어느 직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막상 일을 맡으면 전임자의 인수인계가 끝나는 순간부터 각자도생이 시작된다.


각자도생의 장에서 일을 하며 '도저히 못해먹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도 했지만 다른 재주가 없었기에 꾸역꾸역 했다. 그런데 이 꾸역꾸역이 흩어지지 않고 장독 안의 김치처럼 서서히 발효되었다.


이제는 웬만한 일은 처음 접하더라도 흐름이 보인다. 파편 같던 배움과 갈등들이 모자이크의 조각처럼 모여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완성시키고 있다. 일이 돌아가는 큰 물결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어떤 업무가 와도 막연한 두려움 느끼지 않게 되었다.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경력이 쌓여도 일을 겁내고 쉬운 일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연차가 10년 이하일 때는 쉬운 업무를 맡았다는 것에 안심을 할 것이다. 남들 일할 때 편하게 있는 것이 위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년, 30년 차가 되었음에도 후배가 물어보는 것에 대답을 못하면 좀 쪽팔리지 않을까. 여기서도 본인은 딱히 불편함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후배들은 안다. 후배들이 보기에 그는 '쉬워 보이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사람들은 '쉬워 보이는 사람'을 굉장히 예리한 눈으로 찾아낸다. 겉으로는 하하 호호 웃어도 그 사람들 대하는 마음속에는 신뢰나 존경심이 없다. 나 또한 그런 선배들을 보고 있기에 후배가 나에게 업무에 대한 조언을 받으러 왔을 때 너무나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각자도생 20여 년에 대한 가장 큰 보상이었다.


물론, 지금도 실수를 한다. 경력이 늘어날수록 실수하는 것이 더 부끄럽다. 실수하면 며칠 동안 우울하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스스로를 책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려 애쓴다. 실수는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한 내 허점을 알게 해주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에 틀려야 오답노트를 만들 수 있다. 오답이 두려워 문제로부터 도망가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내 오답 노트로 나를 돕고 후배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


그러면 나는 나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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