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내가 사라지는 날이 온다 해도

'가와무라 겐키'의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을 읽고

by 하얀밤


서른 살의 한 남자가 악성 뇌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언제 죽을지 모를 상황에 처했다. 남자는 착하디 착해서 의사 앞에서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상상 속에선 진료실을 뛰쳐나가 동네를 달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의 방에는 그와 똑같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악마라 했다.


악마가 제안을 했다.

세상에서 무언가 하나를 없앨 때마다 하루치의 생명을 연장해 주겠다고. 믿기 힘든 이야기였으나 남자는 동의했다. 죽음을 앞둔 상황이 이미 그에겐 비현실적이었다.


파슬리 같은 건 없어져도 상관없지 않을까, 그는 생각했다. 악마는 남자의 말대로 해줄 듯하다가 악마답게 자기 마음대로 전화를 없애 버린다.


악마는 전화에 이어 영화, 시계를 차례대로 없앤다. 주인공은 하나씩 잃을 때마다 하루씩 생명을 얻었지만 이내 깨닫는다. 사라지는 사물과 함께 추억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추억 또한 그의 일부였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소중함을 깨달은 그는 사소해 보였던 것들이 사라져도 될 만큼 정말 사소했던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고민에 빠진 그의 옆을 마지막까지 지켜주는 건 고양이 '양배추'뿐이었다. 양배추는 그의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키우던 고양이였다. 어머니는 돌아가시며 양배추를 그에게 맡겼다.

고양이를 안은 주인공을 물끄러미 보던 악마가 고양이를 없애자고 한다. 마치 처음부터 그러길 바랐던 것처럼 악마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워 보였다.


양배추가 사라지는 것은 어머니와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아름다운 기억의 소멸과 맞바꾼 생명 연장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아버린 주인공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드디어 죽음을 직면할 수 있게 된 주인공은 자신의 장례식장을 예약하러 간다. 담담하고 사무적으로 관의 재질과 시신 보관용 드라이아이스의 가격을 계산한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사이가 틀어진 무뚝뚝했던 아버지에게 유서 같은 편지를 부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실은 영화를 먼저 접했다. 나의 최애 만화 <바람의 검심>을 실사화한 영화에서 주인공 켄신 역을 멋지게 해낸 '사토 타케루' 배우의 영화를 찾아보다가 이 영화까지 보게 되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나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같은 일본 특유의, 독특함의 선을 약간 넘은 듯한 제목이 미묘한 매력을 풍겼다.


영화 속에서는 사물이 하나 사라질 때마다 그 사물과 관련된 사람의 기억까지 사라진다. 전화가 사라지자 전화로 인연을 맺었던 전 여자 친구가 주인공을 잊게 되고, 영화가 사라지면서 영화를 매개로 절친이 되었던 친구도 주인공을 잊게 된다. 소설보다 훨씬 자극적으로 전개된다.


사물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좀 더 개연성 있게 묘사한 건 영화가 아닌가 싶다.



영화에 이어 소설까지 읽고 나서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추억이 사라져서 슬펐다, 생각보다 물건들이 소중했다는 일차적인 감상을 넘은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그 뭔가를 찾기 위해 띠지를 붙였던 부분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문장들이 퍼즐처럼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얼마든지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가와무라 겐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p213
"하지만 그냥 살기만 하는 건 의미가 없잖아요. 어떻게 사느냐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요."

- 가와무라 겐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p216
나답게 살았어야 했을 인생을 살아가지 못한 인생

- 가와무라 겐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p220


이제야 이 소설이 주는 진짜 의미를 알 것 같다.

하루를 더 살기 위해 무언가를 '없앤'다는 것은 결국 무언가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내 힘이 아닌 무언가에 의존해서 하루를 더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루를 살더라도 나답게 살아야 한다.

이 깨달음을 주인공이 얻으면서, 독자도 깨닫게 된다.


삶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뜬 사람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드넓은 하늘에서 지구를 본 순간, 사람의 가치관은 반드시 뒤바뀐다. 사소한 일상 따윈 잊어버리고, 이 대지에 살아 있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 가와무라 겐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p20
모토폴리에서 바깥세상으로 나갔을 때, 그 관계를 지탱해 준 것이 모노폴리의 규칙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채고 말았다.

- 가와무라 겐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p85

익숙했던 시각에서 벗어났을 때 세상의 통념이 보인다. 바깥세상에 나와봐야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들이 게임 속의 폐쇄적인 규칙이었음을 알게 된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나답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된 이상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설령 '앎'이 고통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모름으로 인한 고통보다는 가치 있게 느껴진다.


주인공은 죽음을 직면함으로써 비로소 자신답게 사는 것이 진짜 삶임을 알게 되었다.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은 것 같은 나는 소설을 통해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가는 동안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도 하나의 통념에 불과함을 느꼈다. 살아있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고 죽음을 친구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다. 구차한 표현 같지만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나에게 사과나무가 의미 있다면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이다.


구차하게 악마에게 목숨을 구걸할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산다면 악마는 힘을 잃고 자연스레 사라지리라는 것을 주인공은 이미 깨닫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의 이 모습은 당신이 상상하는 악마의 모습이에요.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분명 당신의 모습이었다는 뜻이지."

- 가와무라 겐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p218


고양이를 없애지 않은 주인공은 분명 남아있는 시간을 살아온 시간보다 더 밀도 있게 보냈을 것이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시간을 자신의 무늬로 채웠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살 것이다.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는 날이 온다 해도 내 무늬로 채운 유형의 무형의 것들이 남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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