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역사책을 본 동료가 마침내 내뱉은 말이다. 오전엔 그녀를 불러 내 모니터를 보게 했다. 나보다 열 살이나 더 많은 그녀는 새로운 것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옆에 앉자 나는 추석 연휴 동안 배운 노션으로 만든 나만의 다이어리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며 사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몇 달 전 내가 폰으로 메모를 하는 걸 보고 원노트에 관심을 보였던 그녀는 어느새 원노트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중이었는데 이번엔 노션에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신이 난 나는 원노트만큼 노션도 훌륭하다, 진입 장벽이 좀 높지만 사용 시 자유도가 높다 따위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쫑알거리며 내가 본 유튜브 강의 링크를 보내주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나른한 시간, 밀리의 서재를 켜서 일본어 문법을 보았다. 하루에 5분씩이라도 투자해서 머릿속에서 증발해 가는 문법을 다시 되잡고 싶었다. 간단하지만 막상 말로 하려면 쉽사리 나오지 않는 동사 변화형을 복습했다. 화면 가득한 일본어를 보며 그녀가 웃었다. 인자한 엄마처럼 언니처럼 웃고 있었다.
역사책은 실은, 책상 위에 올려만 놓고 펼쳐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업무 중에 잠시라도 책을 읽을 시간이 생기는 날은 보너스 같은 날이다. 혹시나 오늘이 그런 날일지도 몰라, 하는 심정으로 책을 가져가고 책상 위에 올려둔다. 보너스를 얻지 못해 서류 속에 묻히기 일쑤지만.
그녀에게 대답했다.
"늙고 싶지 않은 걸까요. 어쨌거나 저는 도태되고 싶지는 않아요."
언젠가 누가 나에게 노션에 대해 아냐고 물었을 때 '무슨 로션? 바디로션?'이라고 대답했었다. 나는 정말로 로션에 대해 묻는 줄 알았다. 업무 스케줄을 짜기에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말에 얼굴이 빨개지도록 머쓱했던 것이 몇 달 전이었나. 내 마음속에 노션은 꼭 정복하고 싶은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긴 추석 연휴 동안 여유 시간이 있어 노션을 공부했다. 처음 접하는 개념이 많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장 좋은 강사는 나에게 맞는 유튜브 강의와 인터넷 검색이라 생각하며 궁금한 것 위주로 배우다 보니 시작은 꽤 정신없었다. 난잡한 방식으로 하는 공부라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어느 순간, 배운 것들이 하나로 수렴되는 지점이 왔다. 연역과 귀납의 방식으로 마구 모은 정보들이 하나로 합쳐질 때의 쾌감은 대단했다.
노션의 내 홈화면은 자랑스러운 배움의 결과물이다. 나는 그것을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공감받고 공유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열심히 하든 나눌 사람이 없다면 배움의 의미가 있을까.
늙고 싶지 않냐는 그녀의 말은 내가 언제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의 파생형이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
20대, 30대에는 당연히 배워야 했었다. 배울 것들이 많았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드니 아는 것이 더 많아졌다. 가사든 업무든 반복되는 것들이 많아서 습관처럼 처리하면 되었고, 아무리 새로워 보이는 것들도 기존에 알았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여유로운 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그 여유가 나에겐 도태처럼 느껴졌다. 도태의 증거는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우리집의 어른과 직장의 어른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기존의 것들만 고수하며, 새로운 것들은 '젊은 사람'에게 맡겨버리는 사람들 앞에서 젊은 사람인 나는 내 젊음과 그들의 늙음을 원망했다. 나는 젊은이가 젊음을 원망하게 만드는 사람은 결코 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늙은' 그들 또한 늙음에 짓눌려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나는 '노화'와 '늙음'을 다르게 느낀다.
노화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영원할 것 같던 팽팽한 눈꼬리가 제법 아래로 내려왔음을 느낀다. 거울을 볼 때마다 눈꼬리를 쓸어 본다. 고가의 아이크림도, 그 어떤 유효한 성분의 화장품도 주름과 탄력 잃은 피부를 되돌릴 수 없음을 안다. 노화는 내 몸의 일부, 내 시간의 일부이다.
'늙음'은 나에게 정신적인 면을 묘사하는 단어로 다가온다. 눈에 보이는 신체가 아닌, 생각과 믿음이 느슨해지고 또릿또릿하지 않으면, '늙었다'라고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