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단상

민원인도 공무원도 사람이라서

2023.11.16.

by 하얀밤


민원을 받았다.


민원을 받는 건 공무원의 의무이겠으나, 달갑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건의'라는 성격에 집중하려고 해도 막상 업무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뭘 잘못했나'하는 마음에 긴장부터 된다. 잘못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여부를 떠나서 우울함을 느끼는 건 인지상정이다.


민원인과의 첫 인연은 3주 전쯤부터 시작되었다. 대표 번호로 걸려온 전화가 내 책상으로 돌려졌다. 전화를 돌려주는 사람의 '민원이 들어왔어요'라는 말에 허리를 곧추세웠다. 연결음이 들리는 동안, 지금부터는 사실에 입각한 말을 해야 한다, 감정이 실린 말을 하면 안 된다 등의 주문 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했다.


민원인은 현재 진행 중인 업무에 대해 잘잘못을 따졌다. 말 그대로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협의 중인 사안이었고, 또 추가 협의가 예정되어 있는 일이었다. 민원인은 이미 이 일이 종결된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것이 앞으로 충분히 반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결론에 대해 말해보라'는 요구를 거듭했다. 아직 협의 중인 일에 대해 내 개인적인 의견을 낼 수 없어서 '협의 중인 사안입니다'라는 답변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말을 잘못하면 우리 부서 전체에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스레 내뱉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피해를 보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큰 오해였다.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해 '진행 중'이라는 상황의 의미와 이 일의 성격과 흐름에 대해 설명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굳이 화를 낼 이유가 없다는 것을 민원인도 판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전체 일의 흐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저는 관심 없어요. 제가 알 바 아닙니다."

"설명을 들으시면 지금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아실 수 있을 텐데요."

"도대체 저에게 왜 이러시는 거예요? 다른 데는 전화하면 째깍 수정하던데!"

"그러니까 제 말을 좀 들어보세요."

"아니요, 저는 더 이상 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다.

내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는 그날 저녁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입맛을 잃었기 때문이다.


민원인은 그날로부터 2주가 지난 시점에 또 전화를 걸어왔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그에게 나 또한 같은 답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도저히 못 참겠다며 상위 기관에 민원을 넣겠다고 했다. 협박받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위협을 느낀다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내 말에 더 발끈해하며 전화를 끊었다.


긴급 내부 협의를 했다. 상위 기관에 민원을 넣어도 결국 우리에게 연락이 오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설명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가 처리해야 할 일을 왜 이렇게 크게 만드는 걸까.


나는 민원인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아니, 이미 알고 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싶은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기관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을 인정해 주기를 원하는 것이 그의 진정한 목적이다.

그러니 업무의 성격이나 프로세스에 대해 아는 것은 그의 관심 밖일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심이다. 자신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을 해결하는 것으로 목적이 전도되었다.


2주간 강제 다이어트를 한 내 배가 제법 많이 들어갔다. 동료들은 나를 안쓰러움 반, 응원 반의 눈빛으로 본다. 이쯤 되면 민원이 진행 중인 상황을 응급상황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민원인의 전화 수가 내가 처음 발령받았던 20년 전보다 훨씬 늘어났기 때문이다.




일상에 경고등이 들어오면 마음을 봐야 한다.


민원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마음은 '믿음'이라 했다.


그는 자신이 공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으며, 자신으로 인해 무언가가 변화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즉, 자신의 의견으로 뭔가가 바뀌는 상황이 일어났을 때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며 인정받았다고 믿을 것이다.


나도 그의 믿음을 충족시켜 주고 싶다. 움직이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런 사람이 세상을 변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하지만 그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읽어주면 어떨까. 나는 전화선 너머 있는 AI가 아니다.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시스템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다. 또한, 내 의견은 사견이 아니다. 내 말 한마디로 우리 조직에 큰 타격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협의하는 자리에서 그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뿐이다.


식상한 이야기 같지만 그도 나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사회의 일원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하고 있다. 어른으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맡은 역할에 맞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이런 당연한 것을 전제로 하지 못하여 벌어지는 이 상황이 안타깝다.


어쩌면 그와 나는, 사적인 자리에서는 마음이 잘 맞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나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전화 선 너머 만난 그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서로를 대하면 웬만한 문제는 해결될 텐데.

이 민원이 빨리 종결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쓴 커피를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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