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아무리 새로운 걸 떠올려도 머릿속에는 나 혼자 라면 끓여 먹는 장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고 싶었다.
오랜만에 하는 이른 퇴근인데 미용실에나 가 볼까. 노안이 진행되어 흐려진 눈이 편안하도록 안경을 맞추러 갈까. 뭘 한다 해도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밖에 있는 시간에 나 혼자 일 분 일 초라도 더 오래 집에 있고 싶었다. 밖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벗어던지고 손을 씻고 라면 물을 올렸다.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내리쬐는 거실을 보며 '휴직 중에 자주 봤던 조도와 고도의 햇빛이군', 하고 회상에 잠기려는 찰나, 라면물이 끓기 시작했다.
라면물이 끓기 전 한 젓가락 넣은 새콤한 김치가 경쾌하게 물 위를 부글부글 떠다니면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4등분한 면을 넣고 젓가락으로 살짝 휘저은 다음에 계란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나를 조심스럽게 흘리듯이 넣는다. 끓는 물속에서 익은 쫄깃한 노른자의 식감을 떠올리니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라면물도 정확하게 550ml, 끓이는 시간도 정확하게 5분이었다. 몇 시간 우린 사골국 못지않게 정성스레 끓인 라면이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며 다소곳이 식탁 위에 올라왔다. 이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호로록.
아이가 없던 시절의 맛이 났다.
호로록.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이 먹는 것의 최하위였던 시절, 그때는 몰랐다. 혼자 먹는 라면의 맛이 그 어떤 음식의 맛보다 최상위에 올라오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면발 하나하나를 음미하다가 국물만 남을 때 즈음, 신에게 바치는 성스러운 제물 같은 찬밥을 준비했다. 꼬들한 찬밥이 국물에 적셔지는 모습이 어찌나 뿌듯하던지. 별 생각 않고도 시시덕거릴 수 있는 유튜브 영상에 눈을 대고 밥을 건져 먹었다. 불러오는 배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행복한 맛이다.
띡띡띡띡, 띠리링.
현관 디지털키를 누르는 소리다. 혼자 있는 시간이 끝난다는 신호다.
현관문이 철컹 열리는 소리는 확실하게 현실로 나를 복귀시킨다. 유튜브를 끄고 허리를 곧추 세웠다.
가방을 멘 딸이 들어와서는 깜짝 놀랐다.
"어, 엄마. 웬일이야?! 라면 끓여 먹네?"
"응, 먹고 싶어서."
"한입만!"
"다 먹었다."
"흐잉.."
"저녁에 끓여줄게."
"아싸!"
실은,
라면을 빨리 먹고 잠시 누워 있고 싶었다. 오랫동안 한 곳에 꽂힌 책갈피때문에 자국이 생길 것 같은 책도 읽고 싶었다. 듣다가 만 노래도 마저 듣고 싶었고, 찜했던 영화도 보고 싶었다. 이 모든 걸 다 하려면 2박 3일은 필요해 보인다. 일장춘몽같은 라면 타임은 어쨌거나 끝이 났다.
나의 '아이 없이 홀로 있는 시간'은 끝이 났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좋은 만큼, 홀로 있는 시간이 그립다. 누군가 나에게 무슨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묻는다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 혼자 보내는 일주일'이라 말하고 싶다. 꾸미기도 싫고 일찍 일어나기도 싫고 끼니를 제때 챙겨 먹기도 싫다. 그냥 머리 질끈 묶고, 화장도 하지 않고 집에서 뒹굴뒹굴거리고 싶다.
아이가 싫어서도 아니고, 바깥이 싫어서도 아니다. 엄마로서의 삶,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싫은 것도 아니다. 단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의무가 상충되는 시간을 참 오랫동안 보내왔고, 지금도 보내고 있다. 의무에 충실한 만큼 그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