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 나를 잃어서 오는 아픔

'몬티 라이먼'의 <고통의 비밀>을 읽고

by 하얀밤


한창 일하고 있는데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파서 학교 보건실에 누워있다고 했다. 집으로 바로 갈 수 없는 엄마의 대사는 언제나 비슷하다.


"괜찮아? 많이 아파? 일단 누워 있어봐. 더 심해지면 연락해."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말이다. 더 심해진다 하면 업무를 올스탑하고 조퇴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업무가 바쁜 시기와 겹쳐서 아이가 독감이면 어쩌나 덜컥 걱정이 된다. 아픈 아이도 나도 더 힘들 테니까.


위와 같은 생각들이 찰나처럼 지나가면 바통을 이어받는 생각이 있다.


'아들이 요즘 무슨 고민이 있나?'


나는 몸이 마음의 대변자라 믿는다. 황상민 박사의 황심소를 알게 되면서 나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한 마음의 아픔을 몸이 먼저 알아채고 앓는 것이 '통증'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두통이든 복통이든 나타나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거니까.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면 몸이 존재하는지를 잊을 정도로 몰입하는 경험도 해봤으니까.


우리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생각의 '시작'조차 맡겨버린다. 자기 아픔의 원인은 찬찬히 생각해 보면 스스로 알게 되는 때가 많다. 부담되는 행사를 앞두고 있다든지, 기분 나쁜 말을 들었다든지, 삶의 목표를 잃은 느낌이 든다는지.


아들 녀석은 왜 아프게 된 걸까? 질문과 동시에 답을 알 것 같다. 주말에 태권도 3품 심사에 나가야 하고, 다음 주에는 대외적인 합창단 공연도 한다. 변성기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선생님께서 알토를 맡기신 데 대해 불만을 가지며 어려운 안무까지 외우고 있다. 스트레스받을 만하다.


부랴부랴 퇴근한 품에 아들 녀석이 달려와 안겼다. 병원에 가고 싶단다.

병원에 가면 5분도 안 걸리는 진찰을 받고 네다섯 가지 약이 적힌 처방전을 받겠지. 해열진통제가 베이스로 깔릴 것이고, 의사의 판단에 따라 항생제가 들어갈 수도 있다. 해열진통제로 속이 쓰릴 때를 대비한 위장약, 항생제와 커플인 유산균 계열약이 딸려올지 모른다. 콧물이 있다 하면 콧물약이 들어가서 부작용으로 졸음에 시달릴지도. 기침이 난다 하면 진해거담제도 들어갈 거다. 처방전이 벌써 눈앞에 있는 것 같다. 이 약들로 7일 걸릴 감기가 1주일 만에 나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엄마는 반(半) 의사가 된다.


아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독감, 코로나 모두 검사결과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은 단순 감기라 하시며 독심술가처럼 내 생각과 같은 처방전을 주셨다. 아들의 입에 독한 약이 들어가는 게 영 못마땅하다. 그래도 저 약이 '아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면' 진짜 약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나는 의사를 미워하는 게 아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과연 당연한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뿐이다.


나에겐 8년 묵은 다리 저림 증상이 있다. 시작은 왼쪽 허리였다. 허리가 묵직하다는 느낌으로 시작된 통증은 8년 동안 서서히 범위를 넓혀가서 이제는 왼쪽 다리 전체에 신경이 어디에 어떻게 심어져 있는지 해부를 해보지 않아도 알게 해 준다. 희한한 '피부 감각 이상'도 있다. 피부 표면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화상 입은 살처럼 쓰라린데 막상 충격을 받으면 감각이 둔하다. 가구 모서리에 부딪쳐서 피멍이 들어도 아픔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피가 나도 모르고 지나갈 때가 있을 정도다.


2020년 전까지는 원인 규명을 위해 병원을 전전했다. CT, MRI 다 찍어봤으나 원인이 발견되지 않았다. 디스크가 어쩌고 하는 의사도 있었는데 어떤 진단에든 치료법은 비슷했다. 근육이완제나 진통제가 처방되고, 물리치료를 받게 했다. 견인 치료기에 누워 허리를 쭉 늘어뜨리며 한없는 무기력감을 느꼈다. 물리 치료사들의 얼굴이 낯익어지고 성격까지 알게 될 무렵 병원을 끊었다.


내 다리 저림이 마비까지 올 심각한 병은 아니라는 걸 직감하니 안도감과 동시에 우울감이 몰려왔다. 나는 내 통증이 오로지 몸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라 믿었기에 감정은 별개라 생각했다. 많이 우울할수록 다리 저림도 심해지는 패턴이 있음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황심소든 이 책이든 조금이라도 빨리 접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책 <고통의 비밀>은 우리 몸의 통증이 반드시 조직의 손상과 연관된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저자는 크리켓 경기에서 큰 역할을 해서 희열을 느꼈던 순간, 발에 박힌 녹슨 낚싯바늘이 주는 감각을 느끼지 못했던 경험을 통해 '통증'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통증을 느끼는 데 꼭 상처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상처가 있다고 꼭 통증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통증에 관한 거짓을 철저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의학 전문가가 그렇고, 녹슨 낚싯바늘로 인생 진로가 바뀌기 전의 나도 그랬다.

- 몬티 라이먼 <고통의 비밀> p25


좋아하는 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동안은 피곤함도 배고픔도 못 느낀다. 반면, 하기 싫은 공부를 할라치면 책상에 앉자마자 어깻죽지가 쑤시고 머리도 아파온다. 결국 통증은 우리가 그 상황에 어떤 '의미'를 담는가와 연결된다.


이와 관련하여 이 책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좀 길지만 옮겨 써보겠다.

1944년 늦은 봄, 미영 연합군이 독일군을 기습 공격하려고 이탈리아 로마 남쪽 아치오 해변에 상륙했다. 상륙에는 성공했지만 독일군이 먼저 병력을 이동시켜 고지대의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는 바람에 연합군은 고립된 상태로 독일군의 폭격 세례를 받았다. 안치오 해변이 피로 물들었고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물밀듯 밀려들었다. 당시 안치오 병원에서 의료진으로 일했던 헨리 비쳐는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나중에 통증 의학의 선구자가 된다.
(..중략..) 그런데 병원에 도착한 70퍼센트 이상이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고 모르핀 주사를 맞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아주 심하게 다친 병사들도 크게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보스턴으로 돌아간 헨리 비처는 자동차 사고나 산업 재해로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반대로 70퍼센트 가까이 크게 통증을 호소하며 모르핀 주사를 맞기를 원했다. 비쳐는 두 집단을 분석한 논문에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두 집단 간에 차이가 난 이유는 부상의 정도 때문이 아니라 부상 이면의 숨은 의미 때문이라고 했다.

전쟁터에서 다친 병사들은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꼈다. (..중략..) 그러나 보스턴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안전한 상황에서 안전하지 않은 상황으로 처지가 바뀌었으므로 통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몬티 라이먼 <고통의 비밀> p39


이제 내 통증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앞서 말한 다리 저림부터 가끔 불청객처럼 찾아와 일상을 마비시키는 편두통, 음주량과 상관없이 오락가락한 숙취의 정도까지 모든 것이 내 마음과, 내 삶과, 주변 환경과 연관되어 있었다.

이 메커니즘을 역이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조직 손상이 없는데도 느껴지는 통증을 마음의 경고등으로 보는 것이다. 통증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마음의 아픔을 알게 해주는 힌트이다. 작가는 통증을 수호천사라고까지 이야기한다.

만성 통증을 치유한다는 말은 위협과 위험을 예측하는 관점에서 보호와 안전을 예측하는 관점으로 나아간다 의미다. 즉, 통증은 조직 손상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길 원하지만 가끔은 정도가 지나친 수호천사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통증을 조절할 강력한 힘이 있다. 통증에 담긴 의미를 잘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확실한 치료법이 될 것이다.

- 몬티 라이먼 <고통의 비밀> p140


나는 내 다리 저림을 친구처럼 받아들인다. 없었으면 좋았을 친구이지만 있기에 고맙기도 하다. 내가 나를 잃어갈 때 이 친구가 고개를 든다. 두통도 마찬가지이다. 어른스럽게 산다고, 엄마처럼 산다고, 아내처럼 산다고, 딸처럼 산다고 지나지게 내 마음을 거스를 때 통증들이 나를 멈추게 한다. '올스탑, 여기서 잠깐 쉬면서 자신에게 집중해 봐.'

하고.


고통은 그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처한 상황과 사회에서, 성장과 생존에 도움을 주는 수단이라는 의미가 전달되면, 견딜 만한 가치가 생기고 즐길 수도 있는 것이 된다.

- 몬티 라이먼 <고통의 비밀> p159

나아가 저자의 말대로, 기꺼이 선택한 고통은 스스로를 더 성장하게 한다. 건강을 위해 근육의 고통을 참고 일 회 더 스쿼트를 하는 것, 실력을 쌓기 위해 읽기 쉽지 않은 책을 읽어내는 것, 아픈 자녀를 위해 밤을 새우는 것, 직업인으로서 즐겁지만은 않은 일을 해내는 것. 모두 나를 살게 하고 더 자라게 한다. 내가 의미를 부여한 고통은 더 이상 괴롭지 않다.


이 책은 과거보다는 현재를, 미래를 이야기한다. 나는 이 점이 참 좋았다. 내가 과거에 무슨 일을 해서, 누군가 과거에 나에게 어떤 짓을 해서 아프다고 생각하면 내 고통은 내손을 벗어나버린다. 내가 나를 놓아버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어찌 보면 진짜 고통은 '무지'에서 오는 것 같다. 그 무엇이든 실체를 알면 무섭지 않다. 최근 심해진 다리 저림은 민원 때문일 것이다. 민원에 시달린 이후로 더 피곤하고 더 졸리고 더 아팠다. 몸과 마음이 아우성치고 있으나 이를 배움의 계기로 삼겠다고 생각하니 조금씩 회복되는 것이 느껴진다. 의사에게도 약사에게도 가지 않았고, 비타민C 한 알 먹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만 있었을 뿐이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감정은 공포이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 H.P. 러브크래프트

- 몬티 라이먼 <고통의 비밀> p119


통증에 대한 가장 강력한 치료제는 '내가 나를 앎'이다.


이것이 저자가 말한 '고통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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