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J인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바로바로 날짜별로 시간별로 정리해야 한다. 나에게 정리는 거의 생존술에 가깝다. 떠오르는 것을 기록하고 계획에 포함시켜 놓아야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안 그러면 자다가도 벌떡 깬다.
노션은 나 같은 사람에게 어울려 보였다. 메모를 날짜별로 정리하여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건 기본이고, 메모를 페이지화 해서 그 안에 무한대의 페이지를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이 노션의 대표적인 특징이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네이버 캘린더와 구글 드라이브의 기능이 합쳐진 데서 한 발짝 더 진화된 신세계처럼 보였다.
일주일을 올인해서 나만의 노션 페이지를 만들었다. 노션은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 사용법이 있다는 말이 맞았다. 자기 입맛대로 꾸밀 수 있었다. 노션이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에 비유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 노션의 첫 페이지는 크게 캘린더, To do list, 회의용 자료 및 메모 페이지로 구성되었다. 거기에 다른 사람의 템플릿에서 가져온 개인 챌린지 리스트도 넣었다. 개인 챌린지에는 일본어 공부, 글쓰기, 운동 등이 포함되었다. 'MY HOME'이라 타이틀을 붙이고 집모양 이모티콘까지 달 때,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다.
대망의 노션 첫 사용날.
듀얼로 쓰는 모니터 화면에 꽉 차게 노션을 켜 놓고, 캘린더 일정을 확인하며 그날 완수한 일을 To do list에서 체크했다. 미리 걸어둔 조건에 따라 체크박스를 클릭함과 동시에 일정이 뿅, 하고 사라질 때는 조용히 탄성을 질렀다.
음, 그런데.. 다 좋은데.. 달력의 글자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글자가 크니 일정 이름 전체가 표시되지 않고 잘려 보였다. 뭐, 폰트 크기쯤이야. 소문난 훌륭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했다.
회의에도 들어갔다.
특정 날짜를 두고 각 부서에 예정된 일정이 있는지를 보고 조율하는 회의였다.
"잠시만요~"
뿌듯한 마음으로 노션앱을 실행했다. 옆 사람이 내 화면을 보는 게 느껴졌다. 의기양양하게 펼친 폰 화면 속 캘린더에는 날짜에 점만 콕콕 찍혀있었다. 점이 있는 날에 일정이 있다는 것 같은데... 일정명이 바로 표시되지 않으니 당황스러웠다. 일일이 날짜를 눌러서 구체적인 내용을 보는데 시간이 걸렸다.
"자, 잠시만요오...."
사람들은 잠자코 내 말을 기다렸다.
낯선 앱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노션을 불편하게 느껴는 건 순전히 내 잘못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것이니 문제는 당연히 나에게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런 굳건한 믿음조차 하루하루 반복해서 느껴지는 불편함에 서서히 무너져갔다.
나는 휴대폰으로 수시로 메모를 하는 편인데 노션앱으로는 탁! 열어, 탁! 기록하고 탁! 저장해야 하는 이 '탁탁탁!'이 잘 되지 않았다. 앱이 구동될 때마다 3~4초씩 걸리는 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글자 입력할 때도 딜레이가 컸다. 한 박자도 아니고 두 박자 늦게 입력되었다. '한글'을 쓴다고 치면, 'ㄱ'을 치고 있을 때 겨우 '한'이 완성되는 수준이었다. 캘린더에 일정이 바로 표시되지 않는 것도 볼 때마다 답답했다.
속력을 내려는 순간마다 과속방지턱에 턱턱 부딪히는 기분을 느끼기를 두 달째.
어느 날, 울컥하는 것이 올라왔다.
'도대체 노션이 뭔데! 왜 불편한데도 써야 하는 건데?'
나는 왜 그렇게 노션에 집착했던 걸까?
'사람들이 좋다고 한다'라는 말의 유혹은 그렇게나 컸다.
이런 훌륭한 것에 불편함을 느끼면 내가 뒤처지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인정하기 싫었다. 애써 사용하는 두어 달 동안 차곡차곡 쌓이는 데이터를 보니 불안도 몰려왔다. 이대로 더 사용하면 정보가 더 많이 쌓일 것이고 어쩔 수 없이 계속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멈춘다면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션 화면을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노션은 나에게 정말 좋은 것일까?"
좋다는 게 뭔지?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좋은 거 아니야?"
나에게는 아니다.
"그럼 나에게는 어떤 것이 좋은 거지?"
내가 사용하기 좋은 것. 더 가볍고, 더 빠른 것.
정답은 나왔다.
노션은 아니었다.
노션은 무겁고, 느렸다.
주말을 맞아 가볍게 기록하기 좋고, PC와 휴대폰의 동기화가 빠른 툴을 찾아보았다. 나는 갤럭시폰을 쓰기 때문에 폰에 최적화된 삼성캘린더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삼성캘린더는 PC버전이 없어서 구글캘린더를 사용하면서 폰과 동기화를 해야 했다. 폰에는 삼성캘린더를, PC에는 구글캘린더를 켜 놓고 실시간 동기화를 해봤는데 텀이 길고 잘 되지 않았다. 폰 위젯은 삼성캘린더가 예뻤음에도 불구하고, 내 사용 패턴에 맞는 구글캘린더로 모든 툴을 통일시켰다. 노션에 쌓아놓은 데이터를 구글 캘린더로 옮기면서 구글 캘린더가 캘린더로만 사용하기는 월등하다는 걸 체감했다.
구글 캘린더로 업무를 하면서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업무와 개인적인 일, 아이와 관련된 것을 카테고리로 분류해서 필요할 때마다 보이게도 숨기게도 할 수 있어 직장에서는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불편했던 캘린더 보기 문제가 해결되어 일정 내용이 한눈에 들어와서 좋았다.
구글 드라이브만 쓰다가 캘린더까지 사용하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사용하면 할수록 내 몸에 맞춘 옷 같았다. 빠르게 동기화가 되니 PC에 앉아서 내부메신저로 받은 내용을 캘린더에 일정과 함께 저장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며 폰으로 확인하고 생각날 때마다 수정도 할 수 있으니 내 생존술을 발휘하기에 금상첨화였다.
노션과 이별 후, 다시 노션을 떠올려 본다.
노션은 나쁘지 않았다. 나처럼 정해진 일정을 살면서, 하루 단위의 메모를 수시로 하는 사람에게 맞지 않았을 뿐이다. 노션은 긴 시간 동안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하거나, 장기간 많은 내용을 페이지화 해서 누적해야 할 때 빛을 볼 수 있다. 나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빛의 방향에서 어긋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