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단상

성시경과 세이노는 만난 적이 없을 텐데

2023.12.25.

by 하얀밤


일본어 공부를 나름 꾸준히 하고 있는 편이다.

작심삼일 정도는 콧방귀를 뀌는 마흔 넘은 나라는 사람은, 작심 한 달 정도 되어서야 약간 휘청했더랬다. 다행히도 지난 20년 간 '대~애충' 할 수 있었던 일본어에서 '대~애충'을 떼버리고 싶은 간절함이 생각보다 꽤 커서 아무리 피곤해도, 아무리 다른 걸 하고 싶어도 일단 일본어와 관련된 활동을 하려고 했다. 퇴근 후 집안일을 끝낸 뒤에 마냥 퍼져서 누워 있고 싶을 때에도 일본어 단어를 10분이라도 쓰며 익혔고,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 음악 듣고 싶은 걸 꾹 참고 일본어 듣기를 했다.


작심 한 달이 지나 이 활동들의 탱탱함과 팽팽함이 흐려질 무렵, 우연히 성시경 씨가 일본어 공부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는 일본 애니나 드라마를 덕질한 경험도 없는 것 같았다. 덕후들이 가진 기본 장착템 같은 리스닝이 안 되는 상태에서 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도 40대에!



40대라는 것에 한 번 크게 공감을 했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굳었어!'라는 말이 관습적인 빈말이라 생각한다. 직장에서 업무를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고 노하우가 생기는 걸 느끼며 살고 있고, 최근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한 일본어 공부에서도 이를 절절히 느끼고 있다. 한 달 동안 꾸준히 듣기와 읽기를 하니 일본어 읽는 속도가 확연히 빨라지고 일본 방송도 훨씬 잘 이해하게 되었다. 물속에서 듣던 웅웅 거리던 소리를 물 밖에서 듣는 기분이랄까. 차곡차곡 쌓았던 일본어와 관련한 순간들은 하나도 쓸모없는 것이 없이 무르익고 발효되었다.


어떤 배움이 그렇듯 일본어 공부에서 가장 힘든 것은 '꾸준함'이었다. 오늘은 일을 빡세게 해서 피곤하니까,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으니까, 어제 열심히 했으니까, 내일 늦게까지 일할 거니까(?) 등 꾸준함을 방해하는 생각은 참 다양하고 참신했다. 성시경 씨 또한 그런 순간이 없었을까.


성시경 씨가 술꾼인 줄은 몰랐다. 그가 술을 사랑하는 마음은 내가 잠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지 않을까. 나는 아침잠이 너무 많다. 나이가 들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계속 힘들다. 쌍둥이를 키우며 잠귀는 밝아졌지만 거기서 끝이다. 새벽에 깼다가 별일 없으면 바로 잠든다. 나는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아침에 쿨쿨 잘 잘 것 같다.

그의 말에서 '술'을 '잠'으로 치환해 본다.


"저 같은 잠꾼이!"
"아무리 졸려도 일본어 공부는 계속된다."
"아무리 졸려도 1시간!"


하.

성시경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나의 마음을 패널들이 대변한다.



누군가는 연예인이 운이 좋아 인기가 많아졌다고 이야기한다. 운빨로 잠시 인기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인기를 이어가는 건 절대, 절대 그저 되는 게 아닐 것이다. 성시경 씨가 좋은 대학을 나오고, 멋진 노래 실력을 가지고, 꾸준히 방송에 좋은 이미지로 출연하는 건 그만큼의 피나는 숨은 노력이 있었고, 지금도 있기 때문이다. 안 봐도 알 수 있다. 나이가 마흔이 넘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고, 그래서 누구를 탓할 게 아니라 내 탓이라는 걸 또 잘 알게 되어서 자책하는 순간도 많아진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세이노의 가르침> 속 구절.


노력이란 싫어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취미 생활일 뿐이다.
노력하라.
기회는 모두에게 제공되지만,
그 보상은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차등적으로 이뤄짐을 명심하라.

- 세이노 <세이노의 가르침> p170


싫어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는 게 노력이라는 말은 오히려 담백해서 더 충격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이 말은 이후에도 자주 떠올라 내 일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침에 몽롱한 기분으로 운전대를 잡으면 신나는 음악이 듣고 싶다. 내 취향의 플레이리스트는 재생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유튜브 뮤직 앱 아이콘을 누르려는 손가락을 과감히 물리는, 그 순간이 '싫다'. 음악보다 일본어가 재생되는 몇 분간이 '싫다'. 그러나 그대로 시간이 몇 분 더 흐르면 일본어를 읊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시동을 끌 때 차오르는 보람은 나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자기 자신을 사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좀 더 고귀한 스포츠가 아닐까."

- 세이노 <세이노의 가르침> p171


나를 사냥하는 데 성공한 아침 공기는 더 상쾌하게 느껴진다.

첫 사냥의 성공은 다음 사냥의 성공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작가 세이노와 가수 성시경이 만났던 것일까?

만나지 않은 그들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 진리는 한국 밖에서도 변함이 없다.

최근 읽었던 책 <고통의 비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고통은 그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처한 상황과 사회에서, 성장과 생존에 도움을 주는 수단이라는 의미가 전달되면, 견딜 만한 가치가 생기고 즐길 수도 있는 것이 된다.

- 몬티 라이먼 <고통의 비밀> p159


몬티 라이먼의 이야기를 성시경 씨의 입을 빌어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길게도 썼다. 나는 이 당연한 걸 못해서 작심 한 달 만에 흔들렸다. 이 흔들림을 바로 잡기 위해서 이 글을 썼다. 이 글은 나처럼 흔들리는 누군가를 위한 글이고, 누구보다도 나를 다잡기 위한 글이다.


막연한 길을 걸을 때는 길잡이가 필요하다. 나의 길잡이는 가수 성시경 씨다. 나보다 앞서 걷고 성공을 이룬 성시경을 닮기 위해 지금부터 노력하겠다. 성시경 씨는 일본어를 잘하게 되면서 방송 출연도 늘었고, 팬들과의 소통도 더 잘하고 있다. 인기가 더 올라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다르게 표현할 말을 못 찾겠다.

'너무너무 멋지다!'


그의 영상을 보고 한 자리에 앉아 단어 300개를 점검했다. 내 목표는 내년 12월에 JLPT 1급을 따는 것이다.(여름에 따려고 했는데 월별로 계획을 세워보니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아 겨울을 목표로 했다.) 1급을 따고 나면 현재의 내 시야에는 보이지 않는 길이 보일 것이다. 일본어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장착한 내가 어떤 길로 어떻게 들어설지, 그 설렐 순간을 기대한다.


분명, 지금보다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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