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에게 '쿨한' 엄마 되기
황상민 <부모 심리 아이 심리>를 읽고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어느덧 저도 중년이 되었습니다. 중년이 되면 얼굴에 하나 둘 자리잡기 시작하는 주름마다 노련함이 깃들고, 마음에는 봄햇살 같은 푸근함과 관대함이 가득할 것만 같았습니다. 언젠가 TV에서 본 것 같은 커피 한 잔을 들고 여유 있는 웃음을 짓는 여성처럼, 낙엽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남성처럼 살아갈 줄 알았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제 모습은 오늘도 억척스러운 아줌마입니다. 숨 막히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누군가를 향하지는지도 모를 '살려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다가, 나를 살게 할 자는 나밖에 없다며 다시 억척스러워지는 그런 아줌마입니다. 문득 이 '억척스러움'이 어디서 왔는가 생각해 봅니다. 무엇이 저를 이렇게 만든 걸까요.
'아이'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아이를 낳지 않은 제 또래들은 퇴근 후에 운동을 하고 드라마를 보고 맥주도 한 잔 합니다. 조용한 카페에 앉아 책도 읽습니다. 미혼인 대학 동기는 휴가 때마다 자연스레 연락이 끊깁니다. 그녀의 행선지는 체코, 아이슬란드, 호주, 그리고 제가 상상도 못 한 지구 상의 어딘가입니다. 그녀는 반짝이는 리본처럼 팔랑팔랑 잘도 날아다닙니다. 날아가는 그녀를 바라보는 제 양팔에 아이가 하나씩 안겨 있습니다. 한 팔에 아이 한 명씩을 안고 날개 옷을 입고 하늘로 올랐다던 전래동화 속 선녀는 옷소매 속에 마동석 뺨치는 근육질 팔을 숨기고 있었을 것입니다. 현실 속 제 팔은 얇디얇아서 아이를 제대로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날아가는 친구의 반짝임을 한 때는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라는 인간은 아이를 낳고 길러봐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저는 본래 아주 게으른 사람입니다. 아침 늦잠은 기본이고 뭘 배우든 기초를 쉽게 습득하는 편이라 금방 시시해하면서 중급으로 갈 즈음에 포기합니다. 전문가라 칭해도 부끄럽지 않은 것은 생계 때문에 10년 넘게 유지한 직업과 관련된 분야뿐입니다.(이것만해도 얼마나 다행인지요.) 만약, 제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밥벌이를 하는 직장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성찰할 기회를 잃고 이 나이 되도록 왜 손에 잡히는 실한 알맹이가 없냐며 불안해하고 조초해하며 살아갔겠지요.
아이의 출생과 동시에 저는 새로운 인생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결코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 되는 교육과정을 만 10년 동안 차근차근 밟았습니다. 이 학교에는 온통 필수과목만 있는 것 같습니다. 꾸역꾸역 학점을 이수하는 동안 예고 없이 치러지는 시험에 울기도 웃기도 많이 했습니다. 정답 없는 문제에 허겁지겁 답안을 채워 넣으며 진땀 흘렸던 적이 몇 번이었는지 이젠 셀 수도 없습니다.
이 학교의 커리큘럼은 아이의 사춘기를 기준으로 초급과 중급으로 나뉩니다. 약 10년의 초급 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중급 과정의 문을 열었습니다. 시간에 등 떠밀려 자동으로 진급되었다는 게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쉴 새 없이 뛰는 넓은 운동장에서 육아 용품을 들고 고군분투했던 것이 초급 과정이었다면, 중급은 제법 정돈된 교실에서 시작합니다. 이젠 차분히 책상에 앉아서 머리와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면서 직접 먹이고 씻기는 손은 줄었습니다. '손을 주는' 줄타기가 한결 수월해지니, 이제는 '마음을 주는' 줄타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마음이란 게 도통 눈에 보이지가 않으니 내가 얼마나 주고 있는지, 얼마나 줘야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줄 위에서 위태롭게 비틀거리다가 아껴두었던 책을 펼쳤습니다. 황상민 박사님의 <부모 심리 아이 심리>입니다.
구입 당시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서 교우관계니 학업이니 게임 습관이니 하는 것들이 먼 나라 이야기 같았습니다. 언젠가 도움이 될 날이 있음을 기약하며 책꽂이 잘 보이는 곳에 꽂아 두었던 이 책을 드디어 읽었습니다. 표지를 넘기자 머리말부터 마음을 일렁이게 합니다.
자녀는 분명 많은 부모에게 부담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삶을 위한 축복과 같은 존재이다. 왜냐하면, 부모들이 자녀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삶에 대한 불안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되는 것은 자녀를 통해 인간이 제대로 사는 길을 배우는 것이고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축복과 같은 경험이다.
<부모 심리 아이 심리> p9
'부담', '불안', '기대'라는 말이 다른 단어들 사이에서 양각으로 떠오릅니다. 네, 그렇네요. 저 자신조차 속이고 모른 척하고 있었던 불안과 기대들이 일상 속 구체적인 장면으로 드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인물과 배경과 상황이 손에 잡힐 듯 명료한 이 각본 없는 드라마 속 주인공은 아이와 저입니다. 결말을 알 수 없는 막연함 속에서 엄마 역할을 맡은 제가 수시로 아이에게 제 불안과 기대를 투사합니다. 제가 아이에게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 아이의 문제인지 제 문제인지 구별하기 힘들어집니다.
부모 스스로 당신의 삶의 문제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 해결하지 못할 때, 자녀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분명 자녀는 당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고 또 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당신의 자녀를 구분하지 못하는 부모였다.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고민들은 자녀의 행동을 바꿈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녀의 성격이나 행동, 그리고 문제 상황은 부모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 자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자녀 자신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무엇보다 자녀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부모 심리 아이 심리> p7
아이는 저와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제가 품고 낳은 자식이지만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아이는 제 것이 아닙니다. 특히나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마주하는 문제들은 제가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엄마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문제도 길게 보면 아이가 언제든 다시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주도권을 아이에게 주고 부딪쳐보는 기회를 주는 게 나을 때가 많습니다.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의 과제는 아이가 부모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타이밍을 찾아 적절한 깊이로 개입하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요. 몸은 어른이 되었으나 마음이 어른이 되지 못해 겪는 고통을 아이가 겪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거창하게 결심을 해도 막상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한 발짝 물러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아이와 저 사이에 가상의 중재자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의 문제를 혼자 현명하게 해결하기를 원하는 부모라면, '부모-아이'의 문제 상황에서 스스로 황 교수의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설정하면서, 아이의 문제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보고 그것에 맞는 대응방안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부모 심리 아이 심리> p69
사춘기 아이는 이미 내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임에는 틀림없지만 사춘기에 들어선 내 아이는 외계인이라 생각하고 아이의 행동을 보십시오.
<부모 심리 아이 심리> p92
'아이 - 부모 - 황 교수님(가상의 중재자)'의 삼자 구도를 만들어 봅니다. 아이가 숙제를 빼먹었을 때, 아침밥을 먹지 않겠다고 할 때, 추운 날에 얇은 외투를 입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 주말에 가족과 놀러 가지 않고 친구 집에 가겠다고 할 때, 욱욱 올라오는 제 거친 말과 행동을 중재자가 눌러줍니다. 이 상황이 정말 문제냐고, 문제라면 이 문제는 누구의 몫이냐고요. 신기하리만치 대부분의 상황에서 아이는 '괜찮습니다'. 제가 괜찮지 않을 뿐입니다. 아이는 숙제를 빼먹고 혼나는 경험을 숙제를 하는 계기로 삼고, 아침밥을 먹지 않은 만큼 어디선가 영양분을 섭취합니다. 삼자 구도 속에서 신기할 정도로 대부분의 문제가 '제 문제'임을 알게 됩니다.
이제 저의 목표는 '엄마는 쿨해' 유형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책 속에는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여러 가지 유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유형들 중 마지막 유형이 '엄마는 쿨해' 유형입니다.
'엄마는 쿨해' 유형의 부모는 기본적으로 '부모는 부모의 삶이 있고, 아이는 아이의 세계가 있다'라고 본다. 부모 자신의 삶뿐 아니라, 아이가 만들어 가는 아이의 삶도 인정한다. 아이의 나이가 어려서, 또는 무엇을 몰라서 등의 생각을 가능한 한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이가 몇 살이든 관계없이 그 나름의 특성이나 행동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한다. 여기에는 아이는 부모 마음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자녀의 인생이 부모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 많은 일반 부모들의 입장에서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쿨한 부모들 가운데에는 자신의 삶이 너무 바빠서, 또는 다른 일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에 자녀에게 쿨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
쿨한 부모들은 무엇보다 '아이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잘 살만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충실하다. '아이가 원하는 만큼만 잘 보살펴 주는 것이 부모 역할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많은 책임감과 자율성을 부여하고 또 그렇게 한다. '엄마는 쿨해' 부모는 부모의 세상과 아이의 세상이 1:1로 독자적으로, 서로 유대 관계를 가지려 한다.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서로 연결점이 있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각자의 삶을 살지만, 서로 함께 챙겨나간다.
<부모 심리 아이 심리> p238
부모의 삶과 아이의 삶을 구별하고, 각자의 삶을 인정하는 것. 아이가 알아서 잘 살만큼만 키우는 것. 이 두 가지를 목표로 삼고 싶습니다. 마지막의 '서로 함께 챙겨나간다'는 문장에서 뭉클함까지 느낍니다. 마냥 돌봐야 하는 존재에서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챙기는 존재의 위치에 자녀를 두게 되면 얼마나 든든한지요. 서로의 버팀목이 되려면 아이도, 저도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길러야 합니다.
위로하고 응원하는 피로 이어진 아군이 자식임을 잊지 않고, 불쑥불쑥 올라오는 제 어리석음을 다스리기 위해 이 책을 항시 가까이 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