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이 남 눈에 비친, 남을 위한 '나'만 생각하며 계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달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정신력에는 총량이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직장일과 인간관계에 치이다 보니 아이들에게 가야 할 관심이 의도치 않게 줄어들었지요. 유치원이 문 닫기까지 종일반에 있다가 잠에 취해 하원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던 길. 뺨을 얼얼하게 만들던 초저녁의 겨울바람. 잠결에 찬 바람을 맞고 바들바들 떨던 아이들. 낙엽처럼 비틀거리는 쌍둥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제 마음에도 구멍이 뚫려 찬바람이 휘휘 불었습니다.
한겨울로 넘어갈 즈음 초등학교 취학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꼭 휴직을 하라고 직장 선배들이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갓난쟁이 때 했던 육아 휴직이 '休' 글자가 들어가는 게 우스울 정도로 하루가 고되었기에 육아 휴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초등 입학 때 하는 휴직은 다르다고 입을 모아 말해서 한 번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직장 생활이 진절머리 나도록 싫기도 했고 아이들을 제 품에 제대로 품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휴직을 결심했습니다.
총 2년의 휴직 기간 동안 앞 뒤 1년을 경계로 분수령이 있었습니다.
첫 1년은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마음이 쓰라릴 정도로 아쉬웠습니다. 애초에 1년만 휴직하기를 계획했기에 365라는 숫자를 역순으로 카운트하며 지냈습니다. 364, 363, 362... 지옥 같던 직장으로 돌아갈 날이 돌아온다는 생각은 매 순간 저를 괴롭혔습니다. 해가 지고 다음 날이 되는 자연의 순리가 원망스러운 날들이었지요.
아이들이 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챙기고 밥을 지어 먹이며 요리 솜씨도 늘고 집안일을 하는 노하우도 쌓여갔지만 정작 저 자신은 메마른 나무 같았습니다. 속에 물 한 방울 없이 화로에 던져질 날만 기다리는 나무 말입니다.
발 둘 곳 없는 가시밭을 걷듯 하루를 불안해하기만 하며 허비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책장에는 휴직 때 읽을 거라고 사둔 책들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알록달록 예쁜 책등이 무색하도록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물리적 시간이 늘어나는 건 마음이 살찌는 것과 하등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장으로 억지로 돌아가야 할 날짜를 받았으나 손엔 총 한 자루 없는 군인처럼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지내던 어느 날, 분홍빛 캔디를 연상시키는 멜로디가 귀에 흘러들어왔습니다. 더운 여름날 한 입 떠먹은 상큼한 샤베트같은, 부드러운 실크 같은 멜로디.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였습니다.
저는 음악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자우림, 패닉, 전람회를 좋아해서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는 이어폰을 귀에 달고 살았었지요.(지금 청력에 문제가 약간 있는 것 같은데 원인이 여기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대학 시절엔 NELL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터널 같던 고시 공부 시기를 버티게 해 준 건 NELL 음악이었습니다.
그 외에 또 어떤 가수를 좋아했냐면... Coldpaly, Greenday, Savage Garden, Maroon 5 등등 음... 떠오르는 대로 적어봐도 아이돌과는 거리가 머네요.
직업을 가지고 결혼을 한 이후로는 Jason Mraz,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를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음악은 저에게 숨과 같은 존재였는데 아이를 낳은 이후로는 들을 시간이 없어 좋아하는 가수도 더 늘지 않고 노래도 거의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 귀를 오랜만에 활짝 열어준 곡이 아이돌의 곡이라니.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당시 방탄소년단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었기에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인기 많은 이유가 있구나 하면서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오전에 해야 할 집안일을 끝내면 오전 11시 정도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은 점심만 먹고 하교하기에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습니다. 그때 유튜브를 처음 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저는 꽤 보수적이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검색을 포털 대신 유튜브에서 한다는 기사를 읽어도 저와는 상관없는 얘기라 생각했습니다. 유튜브를 폰에 깔지도 않고 지냈는데 어느 날 무엇에 홀린 것처럼, TV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누르듯 유튜브를 깔았습니다. 앱 첫 화면에 어지러이 뜬 동영상 썸네일들, 튀어 보이려고 애쓴 듯한 제목들이 난잡하게 느껴졌습니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라 검색을 하고 처음으로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를 봤습니다. 몇 명인지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멤버가 동시에 나오고 화면 전환도 빨라서 제가 뭘 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이 끝이 나더군요. 방탄소년단의 다른 뮤직비디오도 재생시켜보며 아이돌 음악과 제가 얼마나 거리가 먼 지를 확인하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여기서 멈췄다면 저는 아미가 되지 않았겠지요.
인연은 유튜브의 놀라운 기능인 연관 동영상 재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방탄소년단이 어느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는 영상이었습니다. 멤버 하나가 울먹이며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라, 지금껏 봐온 흔한 수상소감과 너무 다르지 않나? 계획 하에 훈련된, 춤추는 인형 같던 아이돌 가수가 '사람'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집 평범한 아들로 보였습니다. 온기가 마음 한가운데 은근하게 퍼짐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입가에 엄마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졌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 멤버는 뷔였습니다. 뷔다운 수상소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방탄소년단 덕질에 입문하는 걸 'Rabbit Hole'에 빠지는 것에 비유합니다.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요. 저는 그날부로 Rabbit Hole에 빠져버렸습니다. 방탄소년단의 매력이야 무궁무진하지만 특히 그들의 꾸밈없고 솔직한 모습과, 살면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담은 노래 가사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들도 밥을 해 먹고 잠을 자고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는 것, 그들도 긴장하고 실망하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사람이라면 당연한 그 모습들이 바깥세상과 스스로를 단절시킨 채 불행한 인간 코스프레를 하며 사는 저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메시지는 상상 그 이상의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볼 때마다 그들은 끊임없이 다가와 말을 걸어오고 제 마음을다독여줬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요.
방탄소년단을 알게 된 후로 어두운 터널 같은 휴직 기간에 빛이 새어 들어왔습니다. 제가 아미가 되니 엄마 바라기인 우리 집 쌍둥이도 자연스레 아미가 되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정국이 형님처럼 운동 잘하는 멋쟁이 남자가 되는 꿈을 키웁니다. 딸은 뷔 팬입니다. 저는 멤버 일곱이 다 좋습니다. 아미라 하면 누구를 제일 좋아하냐고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굳이 고르라면 지민, 슈가입니다. 지민의 춤 선은 춤에 'ㅊ'도 모르는 저조차 넋을 잃게 만듭니다. 머리카락 한 가닥 한 가닥이 함께 춤춥니다. 슈가는 그냥 정이 갑니다. 방탄소년단 노래의 대부분을 프로듀싱하는 능력자이면서도 누워서 쉬는 걸 좋아하는 걸 보면 인간미가 느껴집니다.
휴직 첫 해에 방탄을 알았다면, 둘째 해는 방탄을 즐겼습니다. '나를 사랑하라, 힘든 시간이 뼈와 살이 된다'는 그들의 메시지는 제 깨달음과 맞물려 환상의 톱니바퀴를 만들어 냈습니다. 우울하고 속상한 때가 오면 감정에 오래 압도되지 않고 한 발 물러나 그 순간이 지니는 의미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휴직을 연장하면서 얻은 마음의 여유도 큰 몫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방탄소년단의 존재는 저를 돌아보는 촉매제가 되어주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과 새로 출시되는 방탄소년단 굿즈를 구경하고, 고르고, 온라인 콘서트를 보며 아미밤을 흔드는 게 낯설지 않습니다. 차를 탈 때면 방탄소년단 노래를 습관처럼 재생합니다. 아들은 <소우주>를 들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는 걸 느끼고, 딸은 <Magic Shop>을 들으며 긴장되고 힘든 순간들을 이겨 나갑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곡인 <Answer:Love myself>를 들으며 제가 살아온 삶과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딸 방에는 방탄소년단 굿즈 전용 선반이 있습니다. 5층 선반을 언제 다 채울까 했는데 이젠 새 굿즈를 살 때마다 비집어 공간을 만들어야 하네요. 아이들과 취미를 공유하면서 대화도 자연스레 이어갑니다. 점점 사춘기 티를 내는 딸과 저를 이어주는 끈입니다.
아이들은 방탄소년단을 보며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더 놀라운 것은 대한민국이 처음부터 세계에서 인정받는 훌륭한 나라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세대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일본, 미국에 대해 선망하는 바가 없습니다. 우리 한글과 한국 문화가 최고라 생각합니다. 아래 세대의 생각과 가치관이 바뀌는 걸 보니 신기합니다. 이 변화의 물꼬를 트는데 방탄소년단의 역할이 컸다는 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대중 가수로서의 역할을 넘어 이 나라 아이들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어 부모로서도 너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