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싶었던 강좌가 열렸을 때, '나는 쌍둥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라서 안돼. 다음에, 언젠가는.'하며 넘겼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 '나는 쌍둥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라서 안돼. 다음에, 언젠가는.'하며 만남을 미뤘습니다.
저는 쌍둥이를 키우고 있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관련된 일이나 가사를 거의 제가 도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일을 허투루 하지 않고 꼼꼼하게 처리하려고 합니다. 퇴근 후에 할 가사를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노력은 계단보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정도입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 시계를 보면 10시가 훌쩍 넘어 있습니다. 퇴근하자마자 소파에 가방만 던지고 집안일을 시작하는데도 왜 그 시간이 되는 건지, 매일 같은 패턴을 반복하면서도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도 압니다. 어떤 집이든 집안일은 다 비슷비슷할 거니까요. 다른 날보다 서둘러도, 일손을 돕는 전자제품을 사용해 봐도, 저녁밥을 배달을 시켜 먹어도 시곗바늘은 약속한 것처럼 숫자 10의 언저리에 닿아 있습니다.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누우면 키가 제 턱을 넘어서는 쌍둥이들이 쪼르르 다가와 양쪽 팔에 하나씩 매달려 쫑알쫑알 댑니다. 자러 가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랑곳 않습니다. 서로 살을 비비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몸과 마음을 다해 아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이기에 저도 싫지만은 않아서 부딪치며 흔들리며 대답하며 해탈한 사람처럼 누워 있습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부터 끝말잇기, 이야기 이어가기 게임까지 하다 보면 밤 11시가 넘기도 합니다. 서둘러 아이들을 잠자리로 보내보지만 둘 중 하나는 끝내 제 옆에서 잡니다. 덩치가 작지 않은 아이와 같이 자면 아이 팔이나 다리에 맞기도 하고, 발차기에 이불이 휙 날아가기도 해서 깊은 잠을 자기 힘듭니다. 깊은 잠을 자기 힘든 건 모든 엄마들의 고충이겠지만요.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까지 읽고, '와, 쌍둥이 엄마가 일까지 하면 참 힘들겠구나'하고 생각할 겁니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참 많이도 말하고 다녔습니다. 이렇게나 힘들다고, 이렇게나 쉴 틈이 없다고요. 그들은 안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습니다. 힘듦을 인정받으니까 저는 확실하게 힘든 사람이 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힘든 사람이 되니 힘든사람이라는 틀을 정교하게 빚어낼 수 있었고 그 틀은 제 몸에 꼭 맞는 듯했습니다. 불편하긴 해도 틀 속에 눕는 달콤함은 발버둥 치는 것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달콤함을 경계하게 만든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올해 우리 부서에 새로 들어온 부원인그 사람은 저와 나이도 비슷하고 제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도 키우고 있습니다. 앞머리에 롤을 만 채로 출근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비슷한 처지에 있음을눈치챘습니다.사이가 가까워지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느낌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두 발을 쉴 새 없이 휘젓는 오리가 우리와 뭐가 다르냐며 웃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저의 분주함과 고단함을 증명해 주는 존재였습니다. 제가 만든 틀이 맞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인 것 같아 참 든든했습니다. 틀에 몸을 구겨 넣을 때에도 나만 이런 게 아니라 생각하니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팔과 다리를 접어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플러스알파'를 알기 전까지는요.
그녀는 직장 내 연수 업무를 담당하면서 연수방식이 기존의 것에서 더 나아가길 원했습니다. 직원들이 연수를 위해 모이는 시간을 헛되지 않게만들자고 하며 외부의 유능한 강사를 불러보자고 했습니다. 그 생각에 찬성하면서 예산도 강사비를 늘이는 쪽으로 수정하여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유능한 강사를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업무 스킬 발전에 관심이 많았기에 좋은 강의를 많이 들으러 다녔기 때문입니다. 혼자 듣기 아까웠던 강의의 강사를 우리 직장으로 초빙하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의 호응도가 높아졌고, 부서일이 잘되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녀의 '플러스알파'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서서히 커진 의문은 이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 의문은 제 모습을 돌아보는 것에 이르게 합니다.
출근길에 달고 오는 헤어롤로 통한 사이였으나 우리의 방향은 그 지점부터 Y자로 갈라졌습니다. 저는 제 틀에 기꺼이 맞추어 누웠고, 그녀는 틀을 짓지 않고 일어서 걷고 있었습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면서도 저보다 한 시간 덜 자고, 갑자기 직장일이 떠오르면 주말에도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그녀를 보며 요즘 핫한 '워라밸'이란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녀는 직장과 집을 명확히 구분시키려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편안하고 안정되어 보였습니다. 일을 일상에 자연스레 들이고, 일과 함께 걸으며 일도 본인도 함께 발전시키고있었습니다. 아이를 기르고 가족을 돌보는 것과 별개의, 자신만의 영역을 꾸준히 확장시키는 걸 보면서저것이야말로 진정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룬 '워라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녀처럼 직장일을 위해 잠을 줄이고 주말도 반납하는 것을 결심했냐고요? 아닙니다. Y자로 갈라진 지점에서 우리가 걷는 이유도 달라집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분야와 직업이 연장선상에 있습니다.(이 부분이 참 부럽습니다.) 저는 제 직업을 좋아하긴 하지만 온몸을 푹 담글 만큼 즐기지는 못합니다. 16년이라는 경력이 아깝지 않도록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고, 후배들을 가르칠 수 있는 이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도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업무에 녹여내기 위해 배우기도 합니다. 경력이 부끄러운 사람이 되는 건 죽어도 싫거든요.
그녀의 모습은 저에게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활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집니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쌍둥이를 키우는 고단한 워킹맘'이라는 타이틀을 이마에 붙이고 학습된 무기력과 자기 연민에 빠진 저에게 손을 내밀어봅니다.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하나를 시작하면 그것이 둘이 되고 둘은 곧 셋이 될 거예요.'라는 메시지가들리는 것 같습니다. 둘, 셋을 만들 무언가를 제가 찾아야 하고, 찾을 수 있고, 현실에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봅니다.
점심시간, 책상에 엎드려 잠시 눈을 붙이는 그녀를 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을 챙기고 출근 준비까지 한 제 컨디션도 그녀와 비슷합니다. 얕은 호흡에 들썩거리는 어깨에 응원의 담요를 덮어주고 싶습니다. 저를 돌아보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듬뿍 담아서요. 올해 운수에 귀인이 온다고 적혀있던데 이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